매번 새로운 꽃꽂이
매달 오르는 성산일출봉.
길섶 수선화 필락말락할 때 왔었다.
수선화 한창 만발했으려니 하고 며칠 뒤 다시 왔더니 이미 끝물, 꽃 져버려 수선 포기는 추레했다.
이번엔 연보라 갯무꽃 온데 흐드러졌다.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에 위치한 문스톤비치에서 삼겹살 생각나게 해 설핏 웃었던 그 꽃.
해안가 따라 무성하게, 즐비하게, 소담하게, 탐스럽게, 풍성하게, 함빡, 으로도 표현 부족해 안타까웠던 그날의 갯무꽃.
그만큼 수북수북 보기 좋게 가꾸어 놓은 건 아니나, 배경이 일출봉 푸른 해벽 장쾌한 바닷가라 나름 근사했다.
일부러 코스 벗어나 우도 전망대 쪽부터 다녀오길 잘했다.
갯무꽃 흔감한 기분으로 완상하고 성산 정상 향해 나있는 층계를 올랐다.
번번 소재 바꿔가며 꽃꽂이 새로 해놓고 꽃잔치 펼치는 성산 일출봉.
초입 솔숲에 이번엔 개나리꽃 샛노랗게 만발해 있었다.
양지녘 햇병아리 떼처럼 옹기종기 무리 져 핀 개나리꽃.
어릴 적 이웃 동네에 개나리로 생울타리를 친 초가집이 있어, 그 집에서 개나리꽃 필 때 가지를 꺾어왔다.
병에다 꽂아놓은 개나리꽃이 지고 나면 연두색 갸름한 햇잎이 나왔다.
잎새만이 아니었다.
물속에 잠겼던 가지 끝에는 실뿌리가 하얗게 내렸다.
그 개나리 줄기를 화단에 옮겨 심은 다음 물만 잘 주면 건강한 개나리로 자라났다.
개나리는 생명력이 강해 삽목으로 번식시키기 용이한 식물이라 우리 마을은 집집마다 개나리 철되면 개나리꽃이 흔했다.
샛노란 개나리와 짝지어 피는 꽃은 선명한 붉은색 명자나무꽃이었다.
산야에는 할미꽃 반지꽃 양지꽃 냉이꽃 같은 풀꽃 피어났고, 새색시같이 수줍은 진달래 산기슭에 아직 불붙기 전이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개나리요 진달래다.
나 보기가 역겨워... 육지에서 흔한 그 토종 진달래꽃도 자주 보기 어렵고 영실의 봄을 장식하는 건 철쭉이나 털진달래.
어느새 으름 덩굴져 휘감은 촉수 허공 헤매고 해송 줄기마다 끄트머리 짬에 송화 부풀어 올랐다.
목월시인이 노래한 대로라면 꾀꼬리 소리 영롱한 윤사월에 송홧가루 날리는데 요샌 절기도 제멋대로다.
보통 윤사월은 양력 오뉴월, 보리 수확할 철이다.
가파도 청보리축제 소식 뜨기 시작하니 아무래도 보리추수까지는 멀었건만, 송화는 곧 연미색 꽃가루 부드러이 흩날릴 듯.
소나무 발치엔 포기 소복한 진보랏빛 반지꽃도 피어있다.
만화방창 만물이 깨어나 용솟음치는 봄은 봄이다.
꽃타령에 이어 눈에 띄는 오만 물상 참견하면서 유유자적 오르는 층계길.
전에는 중국 관광객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작년부터 올해 들어 유달리 유럽 여행객들이 많이 늘어났다.
영어권이 아닌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이 흔히 들린다
매일이다시피 강정항에 입항하는 대형 크루즈 덕이리라.
한꺼번에 3천 명을 섬에 쏟아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이 든 층에서 즐기는 크루즈여행이라는 편견을 깨고 의외로 젊은이들 참여도 역시 높다.
K-컬춰 K-뷰티 영향이 한몫한다고도 하는데 체류시간이 짧아 지역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아무튼 이날도 유럽인들 말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등경바위 지나 장군바위 등을 거칠 적마다 잠시 멈춰 뒤돌아서면 한라산은 대기질 관계로 안 보여도 그 아래 봉긋봉긋 솟은 오름들이며 바다 건너 우도 친근하게 다가섰다.
일출봉 오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왕복 삼사십 분 정도가 소요된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느낌 다르므로 매번 감흥 다른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
그렇게 놀멍쉬멍 오르다 보면 금세 정상이다.
아직은 눗누런 굼부리, 오월이나 되어야 연둣빛 지나 녹유(綠釉) 빛깔 깊어질 터이다.
이날은 여늬때와 달리 산정 계단에 앉아 포스팅 하나를 작성해 올릴 만큼 꽤 한참 머물렀다.
근자 들어 걸핏하면 게재 직전의 글을 몽땅 날려버리는 실수가 잦아 뇌를 식힐 겸 작업환경을 바꿔본 것.
일차 얼개를 짜본 터라 그 기억을 되살려 원래 흐름을 따라가면서 거기에 대강의 살을 입히면 되나, 항차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이기 마련 아닌가.
처음 글만큼의 흡족스러운 완성도는 번번 기대하기 어려워 찝찝한 채로 서둘러 마무리시킨 포스팅이다.
오후 들며 기온 썰랑해졌지만 그러고도 하늘과 바다 경계 희미한 수평선 바라보며 무념무상 멍 때리면서 머리 가벼이 소제했다.
포기하기가 쉽지 않음은, 욕심 때문이다.
자유롭기 위해, 정신건강울 위해, 애집 내려놓고 아쉬움의 찌꺼기 훨훨 털어 비워내고는 사뿐히 내려왔다.
까짓 거 그보다 더한 것도 잃어버린 적, 놓아버린 적 그간 적잖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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