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19. 2024

강을 건너면 배는 잊으라 했으나

카미노 스토리

강을 건너면 길손은 나룻배에 마음 두지 않고 떠나간다.

강을 건너는데 쓰인 고마운 도구였을 따름인 배다.

역할 다한 나룻배는, 버려두고 떠난 객을 서운타 하지 않으며 잊혀짐도 야속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捨筏登岸,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버려두고 언덕을 오르란 법문을 처음 들을 당시는 '사벌등안' 뜻이 지나치게 매몰차다 싶었다.

요긴히 써놓고 나서 필요 없다고 거침없이 내버리라느니 잊어버리라느니 하는 말이 심히 야박스럽게만 들렸다.

그렇지만 맞는 말이다,


강을 건너게 해 준 뗏목이 고맙다고 짊어지고서야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길을 걸을 수 없으니까.

또한 두고 간 뗏목은 강을 건널 또 다른 사람이 긴히 이용하게 될 터이다.

인간사에서야 은혜 입고도 모른 척 돌아서면 배은망덕하다고 욕 들어먹기 십상이지만 여기서는 집착을 놓아버리라는 의미다.

카미노를 걷다가 오래전에 들은 그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제법 경사진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려면 아쉬워지는 등산 스틱이다.

짊어진 짐무게가 있으니 스틱에 의지하면 다리의 피로도를 낮출 수 있고 무릎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본다.

카미노에 나서는데 스틱은 필수 준비물이라고 다녀온 이마다 강조했으나 짐스러워 애당초 과감히 필수품목에서 제외시켰다.

실제 평지를 걸을 때는 전혀 쓸모가 없어 불편한 가욋짐일 뿐이었다.


그러나 산길을 오를 때는 필요성을 느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부러진 나뭇가지나 고사목 삭정이를 투박하고 거칠지만 지팡이 대용으로 주워 들곤 했다.

가끔은 제법 지팡이 티가 나는 나무를 얻기도 하는데 그 경우 예외 없이 손때로 반들반들 길이 들어 있었다.

카미노를 걷는 동안 이처럼 임시 지팡이와 짧게나마 인연 맺어 그때그때 톡톡히 덕을 봤다.

나무 지팡이는 거의 반나절이나 혹은 몇 시간 짚고 다닌 연후엔 다음을 기약하며 챙겨두지 않고 미련 없이 버려졌으니까.

그렇다고 배은망덕하게 내동댕이쳐버리진 않았다.


고마웠다며 작별 인사를 나눴고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거둬서 도움 길 바라면서 시선 닿는 풀섶에 걸쳐놓거나 카미노 표지석에 세워뒀다.

내가 그랬듯이 내 뒤에 오는 어떤 사람인가가 그 지팡이를 주워 임시 길동무 겸 의지대로 삼았을 것이고 또 그다음에도....

언덕길 오를 때 힘이 되어준 나무 지팡이 한 컷 담아 온 걸 보니 매우 힘겨웠던 여로에서 퍽이나 큰 도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강을 건너면 배는 잊어버려라 했지만 사진을 보니 까마득 잊힐뻔한 나무 지팡이에게도 다시금 거듭 감사를.






작가의 이전글 21세기 딴 세상 깡깡이 마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