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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0. 2024

성산포 오조리에서 바지락 캐기

문주란이 군락 이룬 구좌 하도리 토끼섬에 가볼까 하고 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초여름 같은 날씨를 보이는지라 하마 군자란 하얀 꽃 피었을까 싶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군주란 자생지로 이름난 그곳이다.

토끼섬은 제주 올레길 21코스가 지나는 하도리 도로변에서 빤히 보이는 작은 섬이다.

지난겨울 그 길을 걷다가 문주란 섬이란 말을 듣고는 향기로운 그 꽃이 필 때를 기다려왔다.

버스가 일출봉 앞을 스쳐 오조리로 가는 도중, 순간 목적지가 바뀌었다.

바닷물 쑥 빠진 오조 포구 갯벌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엎드려 있는 게 눈에 든 찰나, 하차하기로 작정한 것.

재작년 인근에 사는 해 뜨는 집 시인을 인터뷰하러 왔을 때 앞바다에서 바지락을 캔다는 얘길 들었던 차.

감칠맛이 일품인 바지락의 제철은 산란기 전인 3월부터 5월까지이다.

단백질도 많고 철분과 아연이 풍부한 건강식품인 바지락.

간 기능을 돕는다는 타우린 성분도 다량 함유했다고 한다.  

옳지, 물때가 좋으니 바지락 캐기 현장체험을 해보자 싶어 일단 갯벌로 들어갔다.

호맹이도 없고 장갑도 없긴 하지만 만일 바지락을 캔다면 비닐봉지는 간식 담은 걸 비우면 된다.

등산화를 신은 터라 물이 빠진 끝까지도 충분히 걸어갈만했다.

서해안처럼 쑥쑥 빠지는 갯벌이 아니라 모래와 뻘이 섞인 바닥이라 물 없는 곳을 골라 디디면 괜찮았다.

마침 갯지렁이를 잡던 낚시꾼 일행이 갯일하러 온 사람답지 않은 내 차림을 보더니 목장갑을 건네줬다.

아무 준비 없이 들어선 내게 그들 중 하나가 드라이버같이 생긴 꼬챙이를 주며 이렇게 파보라고 시범을 보였다.

쪼글뜨리고 앉아 작고 동그란 구멍이 난 곳을 헤집자 바지락 하나가 톡, 시선에 들어왔다.

히야~ 신기방기한 노릇,


첫 술부터 배부르다 폼을 잡자마자 득템을 한 이 행운.

신이 나서 본격적으로 바지락 채취에 나섰다.

한 시간쯤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그새 수도 없이 일어섰다 앉았다 하느라 다리가 저릿거렸다.

쟁여놓고 먹을 일도 아니니 얼마나 더 욕심내랴.

옆집 현주씨랑 저녁 한 끼 바지락 칼국수(인스턴트 라면이긴 하지만) 끓일 양으론 충분했다.

한 사발 정도의 바지락을 캐고는 귀가를 서둘렀다.

 

충청도 서해안은 너른 갯벌에서 바지락을 키워내고 갯고랑에서는 망둥이 주꾸미가 살쪄갔다.

유년기 거의를 농촌이자 어촌인 서해 바닷가의 외가에서 지냈다.

당시 대호지 앞바다는 인천과 통하는 뱃길이자 철 따라 실치(뱅어)와 황발이 게며 바지락을 어촌에 풍성하게 선사했다.  

사리 때가 되면 댕기머리 길게 늘어뜨린 마을 언니들은 구럭과 호미를 챙겨서 부지런히 갯벌로 나갔다.

오후 무렵 빈 구럭에 가득 채운 게와 바지락을 들고 오는 언니들을 보자 나도 따라가고 싶어 안달을 부렸다.

외숙모는 깊은 갯고랑이 있어서 위험하다며 가지 못하게 한사코 말렸다.

생질이 하 졸라대자 하는 수없이 허락하며 외숙모는 언니들에게 꼬맹이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기어이 언니들 따라 갯벌로 바지락을 캐러 갔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차진 갯벌을 통과해 멀리 저만치까지 물이 빠진 바다 품속으로 들어가야만 바지락을 캘 수 있었다.

모래와 뻘이 섞인 물가에 앉아 동그란 구멍이 난 곳을 겨냥해 호미질을 하면 영락없이 물을 찍 내뱉는 바지락이 드러났다.

구멍 하나에 반드시 바지락 하나, 얘네들은 자기가 구축한 집에서 철두철미 홀로 거하는 독거족이었다.

오조포구에서도 꼭 같았다.

혹시 잘못 이해할 수도 있어 동네 아짐에게 물어봤지만 역시나 같은 대답이었다.

작고 동근 구멍을 파헤쳐 보면 거의 헛방 없이 바지락 한 개가 나타나곤 했다.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다리 저린 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조개잡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원체 번식력이 좋다니 망정이지 많은 어민들이 무시로 파내는데도 다시 물이 빠지고 나면 신통하게 갯벌에 널리는 바지락.

게다가 관광객까지 가벼운 갯벌체험의 장이라며 숱하게 몰려든다.

초보자라도 바지락 캐기는 아주 쉽다.

능청을 떠는 건지 멍청한 건지 얘네들 생태는 도시 이해불가에 속한다.

나 여기 숨어있어요, 은폐는커녕 광고하듯 표티나는 구멍 하나 슝 뚫어놓고 슬쩍 엎딘 바보 바지락이다.

조물주도 무신경하시지만 그렇더라도 삼라만상 제각기 본능적으로 저 살궁리는 하게 마련인데 대책 없이 참으로 답답한 녀석인 지고!

눈부시게 진화해 나간 인간에 비해 어찌해 조개류는 일보의 진척도 없이 예나 이제나 매양 그 타령으로만 살아갈까.

엉거주춤 네 발에서 차츰 두 발로 직립보행하게 된 인간에 비해 선사시대부터 지금껏 변함없는 패턴 고수하고 있는 패각류.

조개 종류는 잽싸게 내빼거나 숨기 어려운 특성을 지녀 태생적으로 거의 식물성향에 가깝다.

따라서 천적들에게 쉽게 노출되면서 앉은자리에서 꼼짝없이 식량감으로 포획되고 만다.

하여 수렵채취 시대를 산 원시인 집단거주 지역 어디나 조개껍데기를 쌓아놓은 패총이란 유적지를 만들지 않았던가.

시답잖은 잡상에서 깨어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듯 여섯 시 반경부터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해안과 달리 아주 서서히 바닷물이 올라와 널찍이 드러난 갯벌을 표 안 나게 조금씩 채워나갔다.

바다는 밤새 출렁출렁 흔들리며 갯벌에 무수히 긁히고 찍힌 사람들의 자취를 지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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