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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1. 2024

도내 유일, 고려 시대 현무암 석탑

마을 근처 낮은 언덕 위에 있는 조천연대에서다.

삼양 해안누리길을 걷다가 연대가 있기에 주저 없이 올랐다.

마침 삼양 역사길 탐방에 나선 문화학교 수강생 팀을 만났다.

지도교수가 저 멀리 보이는 원당봉을 가리키며 산세에서 유추되는 이미지를 각자 말해보라고 했다.

일행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답변하는 학생이 없기에 곁다리 군식구가 느낌을 말했다.

영락없이 임산부 모양인데요.

직감적으로 누워있는 임부 형태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  

젊은 학생들이라 어쩌면 그런 말 하기가 저어 되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면서 내가 답했고 교수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면서 교수가 원당봉에 얽힌 설화를 들려주었다.

원나라 11대 순제는 슬하에 아직 태자가 없었다.

'북두성의 명맥이 비치는 삼첩칠봉에 탑을 세워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고승의 말에 따라 삼 첩 칠봉을 찾고자 사방 천지에 사람을 풀었다.

당시 원의 지배를 받던 탐라국 해안에서 삼 첩(三疊)인 원당봉과 그 북쪽에 작은 봉우리 여섯(합해서 七峰)이 모여있는 걸 발견했다.

고려에서 공녀로 원나라에 가 제2왕비가 되었던 기황후의 간청으로 순제는 원당봉 자락에 원당사를 건립했다.

원 순제는 기황후의 뜻에 따라 사자를 파견해 삼 첩 칠봉 주봉인 원당봉에 오 층탑을 세우고 불공을 드리자 아들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그 연유로 이곳은 아들을 원하는 이들의 기도처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조선 중기 폐쇄되었고 건물은 화재로 소실, 제주도내의 유일한 고려 불탑인 오층 석탑만 남게 되었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두고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했는데 대체로 키다리라 안정감은 떨어졌다.

기단은 뒷면을 뺀 삼 면에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으며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창 같은 감실(龕室)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의 불탑사는 원래 원당사지로 5층 석탑만 전해 내려오는데, 이 절터에다 나중에 불탑사를 지어 비구니 수도처로 삼았다.

사천왕이 지키는 절문을 지나면 곧장 마주 보이는 대웅전 단아하고 우측에 날렵한 처마 선의 종각은 동종을 품고 있었다.

불탑사는 유독 정원과 후원이 정갈하게 가꿔져, 신록 깊어가는 아름드리 고목들 자태 매우 웅숭깊었다.

팽나무와 백일홍 나무 수형은 분재처럼 멋스러웠으며 은행나무와 주목은 당당하면서도 의젓한 귀골 타입이었다.

제주시 삼양 1동, 불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오 층 석탑은 대한민국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었다.

사각사각 발바닥 간질이는 화산 송이 고르게 깔린 절마당.

 잎잎이 반짝이는 신록에 밝고 환한 송이 길의 조화가  하도 아름차, 뒷짐 진 채 한동안 거닐다 왔다.


삼양동에서 제주시내를 거치고 한라산 넘어 서귀포에 당도하니 한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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