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26. 2024

땅끝에서 너도나도 인증샷

카미노 스토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카미노의 종착지인 동시에 땅끝으로 가는 출발지였다.

이렇듯 끝은 또 다른 시작점이기도 하다.

길은 다시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서쪽으로 약 1백 킬로 떨어진 작은 어촌 피스텔라를 스페인의 땅끝이라 부른다.

그 까닭인지 Fisterra/Finisterre라는 지명은 Finis(끝) terre(땅, 흙)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식으로 땅끝마을 맞다.

야고보가 이베리아반도에 와서 처음 선교를 한 곳이자 순교한 야고보를 실은 배가 닿았던 장소라는 피스테라다.

인류는 꿈꾸는데 그치지 않고 용기 있게 길의 끝을 확장해 나갔다.


섬나라도 아닌 스페인 사람들은 이미 옛적에 땅이 끝나는 곳에서 거침없이 바닷길을 열었다.


해양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그 후 길은 바다에도 열리게 됐고 점차 하늘로도 열리더니 이젠 무한대의 우주로까지 열렸다.


땅끝 피스테라는 곶이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해안지대인 곶(串:cape).


열두 폭 치맛자락이듯 겹겹의 만이 빚어내는 해안선마다 물빛 얼마나 유현하던지....


미동부에서 보았던 대서양도 이리 아름다웠던가?


황막한 메세타 지역을 지나서인가, 오랜만에 바다를 만나니 유다른 감회에 코끝이 싸해진다.


망망대해 태평양과 달리 산자락에 정겨이 스며든 바다 눈부시게 사뭇 청청하다.

청정해역 남해바다 포구마을 같은,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서 보았음직한 아기자기 어여쁜 마을들.

파스텔 톤의 연미색 연분홍 겨자색 담벼락에 적황색 지붕이 산뜻하게 조화 이뤘다.

피스테라에서 등대로 가는 완만한 언덕길은 5킬로 정도로 편안하게 걷기 좋은 거리다.

트레킹은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어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 경관을 여유 있게 새겨가며 걷는데 묘미가 있다.

하늘빛 물빛, 바람소리 새소리, 풀 내음 흙 내음 전신으로 느껴가며 자연과 하나 되어 걸을 때의 충만한 행복감이 곧 열락 아니랴.

왼편 쪽을 따르는 짙푸른 바다, 꿈결이듯 해무 속에 고요한 바다는 몽롱해서 더 환상적이다.

대서양으로 뻗어나간 바다는 잉크 물 번진 청남빛,

솔숲 아래켠 해안절벽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 또한 일품이다.

땅끝마을 등대가 육지의 끝 바다 앞에 서있다.

카미노 표지석 제로(0) 지점에서 너도나도 기념사진 찍으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한 감회에 젖었다기보다 피스테라 풍광에 취한 저마다의 표정은 한껏 고조돼 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 과연 몇 번이나 이런 환희심 맛볼 수 있을까 싶다.

점점 구름이 짙게 몰려든다.

노을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이지만 일몰까지 머물기에는 아무래도 주저하게 된다.

느릿느릿 마을로 내려온다.

어쩌면 카미노의 완성은 땅끝 피스테라일까.

그러나 아직도 길은 더 이어져 나갈 테고 카미노의 종결은 글쎄?

작가의 이전글 산티아고 대성당이 품은 미술품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