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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6. 2024

땅끝 바닷가 별장에서의 이틀

카미노 스토리

End of the Earth'라는 피스테라에서 짐을 푼 알베르게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했다.

안팎 인테리어를 푸른색으로 통일시킨 깔끔한 숙소는 현대풍 별장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이층 창가에 서면 저 아래 어항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해초 내음 품은 바닷바람 시원하게 스쳤다.

하루 묶을 예정이었으나 이곳에서 하루를 더 쉬었다 가기로 순식간에 계획을 수정할 만큼 장소가 퍽 매혹적이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바라보고 있는 쪽에 위치한 피스테라는 대서양과 접한 스페인의 땅끝마을.  

샌 기예르모 수도원 유적과 해안을 지키는 낡은 성곽과 파쵸 언덕의 등대가 있는, 작지만 역동적인 구였다.

마을에서 가장 번창한 바닷가 카페촌으로 내려갔다.

음식을 주문한 해안가 레스토랑은 신통스럴 정도로 가격대까지 착했다.

대게, 조개, 생선 등 해물요리 명성이 자자한 터라 메뉴판 사진을 주욱 훑어보고 나서 주문을 했다.

원래 비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촌에 왔으니 여러 해물류도 골고루 섭렵해 볼 작정이었다.

메뉴를 선택하며 매번 다른 음식을 시켰는데 그때마다 자동으로 와인 한 병이 곁들여졌다.

어항인 피스테라는 소문난 관광지임에도 바가지 상혼은커녕 20유로 수준으로도 거하게 성찬을 즐길 수 있었다.  

입가심으로 녹차 아이스크림도 따랐으니 한국의 터무니없이 높은 유흥지 물가로는 십만 원 이상의 계산서가 나올 법했다.

쉼 없이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끼룩대는 갈매기 노래 생음악 삼아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즐긴 오찬.  


바다 빛깔 오묘한 낮 시간대의 정취도 멋스러웠지만 일몰 후 검푸른 밤바다를 바라보며 음미한 와인의 향이라니...

아홉 시도 훨씬 지나서야 지는 해, 노을빛 화려하던 바다는 서서히 어스름에 잠겨 들었다.

어느 유럽이나 그러하듯 마을 실루엣 또렷하니 조명 빛 더불어 표정도 새로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삼라만상 모든 물상은 낮과 달리 저마다 놀라우리만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건너편 성곽과 야자수 늘어선 주택가가 마치 중세 시대 연극 무대 세트인 양 비밀스러이 떠올랐다.

해변으로 견인된 배나 감청빛 밤바다에 뜬 몇 척의 선박이나, 힘차게 물살 가르던 한낮의  고단함으로 깊이 잠들었다.  

보름달 휘영청 천공을 밝히자 뒷산 중턱을 감싼 운무 스멀스멀 마을로 내려오는 게 훤히 보였다.

피안의 세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지만 몽롱하니 부드러운 파도 소리와 달리 밤공기 점차 찹찹하게 스며들었다.

아쉽지만 돌아가야 할 시간. 예약해 둔  협소한  알베르게 침상과 달리 편안해서 수면시간 내내 아늑하기만 했다.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바다로 나가보니 부지런한 태양은 어느새 구름장 뚫고 나와 수면에 금가루 흩뿌렸다.

애견 데리고 친구랑 해변 산책에 나선 유러피안 모습은 평화로운 액자 속 그림 같아 보였다.  

새날 하루는 마을 곳곳을 둘러보는데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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