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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1. 2024

쿠사마 야요이-환각과 환상 사이

한라산 자락 산록남로에 위치한 본태박물관을 찾았다.


문득 마음이 끌려 한 점씩 소장하게 된 오래된 석물들이 제 터처럼 자리 잡은 후원.


클래스가 다르다는 걸 절로 느낀 건 이 공간에서다.


현대가 며느리인 행자 씨의 박물관은 다다오의 건축미나 여러 거장들의 미술작품들로만 빛나는 걸까.


그보다는 정적이고 정겨운 이 후원들이 있으므로 하여 그녀가 누리는 심신의 아늑함이 더 가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극히 개인적 견해이지만 여기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 곳이 몇 있다.


본태 이름대로 고즈넉한 후원과 산방산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루프탑의 조망권과 한지창에 빛 스며들던 명상실이었다.



마침 쿠사마 야요이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여섯 해 전이다.

로스앤젤레스 더 브로드 뮤지엄에서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을 본 적이 있다.

더 브로드에서도 예약 손님이 길게 늘어서 무척 오래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비 오락가락하는 날씨인데도 오늘 역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거울 방은 전에 본 그대로였다.

별로 어지럽지는 않았다.

당시 80대이던 야요이는 이제 90대 중반으로 가고 있다.

세계적, 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그녀이나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면에 내세운 푸근하고 수더분한 호박 작품이 안정감을 안겨줘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작품 경향은 여전히 강박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끈질기게도 일평생 따라붙는 고질이다.

하긴 착란증 승화시켜 독보적 작품을 내놓으며 세계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르긴 하는 그녀이지만.

그 때문일까.

현재 나이와 그녀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뱃멀미를 하듯 속이 다 울렁울렁 메슥거렸다.

거울방은 몽환적이긴 하나 기이하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드는데, 다른 설치작품들은 괴기스럽고 혼란스러워 토할 거 같았다.

마약을 하면 이러할까,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질 어찔 마치 넋 나간 사람 같아진다.

예술 감상의 목적은 이건 아닐진대....

착란 증상과 강박 트라우마가 있는 일종의 정신질환과 평생 함께 한 그녀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1929~).

그녀는 1948년 엄격한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전통 일본화를 도제식으로 배우면서 미술을 시작한다.

스물세 살 당시 마쓰모토에서 열린 첫 전시회 때 정신과 교수인 시호 박사로부터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녀의 병명은 강박신경증, 편집증, 불안신경증으로 이미 열 살 무렵부터 그 증세가 나타났었다고.

무한이란 개념은 이런 광기를 근간으로 펼쳐지는 그녀 작품 속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강박과 환각을 치유하고자 무의식의 예술 행위를 선택했다.

1957년 그녀는 미국 뉴욕으로 떠나 그곳에서 16년 동안 팝아트 작가로 활동한다.

뉴욕에서의 아방가르드 생활은 그녀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 결국 1973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갔고 현재까지 그곳과 작업실을 왔다 갔다 하며 지낸다.


"내 인생은 수천 개의 점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점이다."

"내 예술은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환각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설명하는 야요이의 언어다.

본태박물관 제5 전시관 기획전시실.

전시회 주제는 Seeking the Soul이다.

영혼을 탐색하고 규명해 보기 전에 우선 내 정신줄부터 단단히 챙겨야 할 거 같다.

마음 근육이 웬만해서는 불감당이다.

무한 반복되는 형태, 아주 작은 점이거나 크고 작은 원이거나 끝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기세다.

그림으로 그리고 설치미술 작품을 만드는 자신만이 아니라 관객 또한 우주 공간 어느 한 점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 것 같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볼록거울의 천장과 벽면은 새하얗고, 거울은 굴절되고 왜곡된 채 자아를 비춰준다.

서로 비켜갈 수도 없이 비좁은 통로는 직각으로 꺾여 들기를 거듭하다가 불현듯 야자수 거리로 내몬다.

어리둥절의 연속, 하도 느닷없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기묘한 트릭에 번번 걸려 넘어지고 말겠다.

이번엔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겹쳐진 옆얼굴들이 등장한다.

멀리서 봤을 때는 애벌레나 지렁이, 기생충이나 지네나 뱀이 연상됐는데 바짝 다가서니 눈 동그랗게 뜬 여성 프로필이 늘어섰다.

회화 역시 끝 모르게 이어지는 점과 선, 여차하면 개미지옥에 빠지는 개미가 될 판이다.

야요이 그녀가 피에로처럼 붉은 바탕의  도트무늬 옷에 빨간 머리를 하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돈다.

아무래도 선입견이 작용하지 않았겠나 싶지만 사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나도 그만 돌 거 같은 기묘한 이 느낌은?

나만 어지럽고 메스꺼운 걸까? 나만 별난 건가?

전시실을 서둘러 훑은 다음 프런트에 나와 안내인에게 물어봤다.

관람객 중 그와 비슷한 기분을 토로하는 이가 제법 있었다니 안심은 됐다.

기가 다 빠져나간 듯 다리가 풀리고 울렁증이 심해 재빨리 출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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