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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6. 2024

강인한 제주 여성의 혼이 담긴 해녀박물관

몇 번 그 앞을 지나다녔으나 비로소 들어가 본 해녀박물관.

제주해녀박물관은 제주 여성의 상징인 해녀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이다.

우리나라 김치문화와 마찬가지로 해녀문화 전체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더불어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제1 전시실은 해녀들의 의식주가 담긴 생활상을 다룬 공간이다.

물허벅, 태왁망사리, 불턱, 원담, 도대불, 방사탑 외에 제주 음식과 세시풍속인 해신당과 굿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제2전시실은 해녀의 일터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해녀 작업도구 및 해녀복 변천사와 어업공동체인 잠수회 일지, 항일 운동에 관한 기록물과 일제강점기 야학당 사진도 보였다.

제3전시실은 해녀들의 물질 작업장인 바다다.

어로 현장 사진과 모형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인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을 비롯 전통 어로방식과 돌 염전 패널이 전시돼 있다.

제4전시실은 어린이 해녀 체험관으로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밖으로 나오면 맞은편 언덕 위에 제주해녀항일운동비 탑이 올연히 솟아있고 세 분의 항일운동가 해녀 흉상이 서있었다.

박물관 앞의 뜰은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항일 운동인 1932년 1월 시위에 참여한 해녀들의 2차 집결지였다.

뜨락 옆 산자락 숲그늘에는 작은 목선 세 척이 기우뚱 앉아서 쉬고 있다.

해녀박물관 안팎의 전시물은 모두 해녀들이 기부한 것이라고.


패총 유적으로 미루어 해녀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잠녀라는 기록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그녀들, 거친 바다에 나가 공동으로 어로작업을 한 해녀들은 단합이 잘 됐다.


온평 바다 해녀들이 해산물을 판 기금으로 공동체를 위해 온평초등학교를 짓기도 했다.

이 같은 해녀문화를 중심으로 어촌, 민속, 어업 자료들을 집대성시켜 전시함으로 교육적 가치를 함양할 목적으로 세운 박물관이다.



얼마 전 팔순 가까운 지역원로 문인을 만났을 때 들은 제주여인의 특성이다.

노인 되었다고 손주나 거두며 사는 할망도 없을뿐더러 매일 노닥거리는 유한마담 같은 부류는 화류계 아니면 찾아볼 수 없노라 단언했다.


끼리끼리 모여 고스톱 치면서 판판 놀기나 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제주 할망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한가로이 놀 새가 없으니 춤추고 노래하는 여인들의 놀이문화란 게 생겨나질 않았다는

말에도 수긍이 갔다.

사대육신 멀쩡한데도 편히 앉아 자녀들로부터 봉양받는 걸 미덕으로 당연시 여기지도 않는다는 제주 할망들이다.

여력이 남는다면 오히려 자손들에게 주면 주었지 뭔가를 받을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

몸 움직일 수 있는 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옳지, 자식에게 부담 끼치는 건 통하지 않는 제주라고 하였다.

일손이 부족한 봄철엔 감자나 마늘을 캐고 고사리철엔 고사리, 미역철엔 미역이나 톳 따러 다니느라 바빠 놀 새가 어딨느냔다.  

가을 들어서면서부터는 밀감 따느라 허리 펼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니 사철 내리 일거리가 줄을 선 제주라서 가능할까.

사실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찾기 이전, 건강과 여건이 허락해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78세인 그녀는 일찍이 남편 여읜 독신이지만 홀로 살며 나는 나, 자식은 자식이라 선 긋고  여전히 현역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노익장이다.

그러면서 직접 감귤 농사를 짓느라 전지도 해주고 비료와 농약 사다가 손수 뿌려준다고 했다.

자기 생활을 가지고 있는 자제 불러 도움받을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는데 이르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녀 삶의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지만 주야장천 놀러나 다닌 자신이 돌아 보여 적이 민망스럽기는 했다.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등재 인증서/ 제주 해녀 헌장


외딴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나려면 억척스럽게 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고 돌밭을 가꾼 제주 여인들.

제주지역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해녀들의 근면 강인한 정신은 지금까지도 연면히 살아있음을 본다.   

여전히 장터 난전에 쪼그리고 앉아 몇 푼어치 나물이나 과일 등속을 파는 할머니들을 종종 접한다.

허름한 차림새의 할머니들이나, 그들은 실제로 통장에 돈이 두둑하게 든 부자 할망들이라고 한다.

하나같이 갈퀴처럼 억세진 손마디며 햇볕에 그을어 시커먼 얼굴 가득 계곡을 이룬 주름살 판을 친다.

쪼글뜨린 채로 평생을 일만 해 허리는 굽고 다리는 0자로 휘어 엉거주춤, 걸음걸이도 어기적거린다.

뒷모습 바라보자니 애가 쓰이고 안타까운 자식이 한 마디 한다.

어머니 이제 좀 쉬세요, 그간 진짜 열심히 사셨잖아요.

죽어지면 제풀에 썩을 육신, 아껴 무엇하나.

잠잘 때라면 모를까 게을러빠지게 왜 눕냐.

죽으면 자동으로 영원토록 누울 몸이란다.

신조가 그러하다.

아니 신념으로 굳어 숫제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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