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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6. 2024

흑백 대비, 흰모래와 까망 현무암

제주의 3대 해수욕장 중 나름 으뜸으로 치는 바다는?

단연 금능이다.


<어린 왕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섬 비양도가 저만치 앉아있는 바닷가 마을 금능.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모자같이 생긴 삽화부터 첫머리에 나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어린 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에게 소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비행사가 그려준 양을 보고 어떤 양은 병들었다, 어떤 양은 숫양이다, 또 어떤 양은 너무 늙었다며 번번 퇴짜를 놓는다.  

그러다 대충 그린 네모난 상자를 내밀며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어린 왕자의 얼굴이 그제사 환해지며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라며 반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던가.

비행사는 여섯 살 때 꿈이, 멋진 화가가 되는 거였다.

무한한 상상력에 따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그렸다.

아이다운 감각으로 그린 그 그림을 어른들은 그저 모자라고 했다.

그건 모자를 그린 것이 절대 아니었다.

코끼리를 삼킨 무서운 보아 뱀을 그린 것인데 하나같이 그림을 본 어른들은 모자가 뭐 무서우냐고 했다.

아이는 하는 수없이 보아 뱀의 속이 보이도록 그림을 다시 그렸다.

어른들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면 상세한 설명이 따라야 이해된다는데 저으기 실망해 아이는 화가의 꿈을 접고 만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그림을 모자라고 하지 않고 단번에 본질을 읽어냈다.

원하던 양을 그려준 비행사와 오래전 꿈을 알아봐 준 어린 왕자, 둘은 사막에서 친구가 된다.

처음 보자마자 단박 반해버린 해변이 여기다.

각자 개인적 취향이사 다르겠지만 아무튼 금능은 내가 가장 아끼는 바다라 자주 들리는 곳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경으로 떠있는 비양도 멋스러운 실루엣뿐인가.

연한 옥빛에서 민트 블루, 터키석, 사파이어로 깊어지는 미묘한 바다 색조.


투명한 아콰마린 원석처럼 아름다운가 하면 커팅 절묘한 블루 사파이어 빛일까.

야자수 줄지어 선 해변에 고운 은모래 부드럽지만 새카만 화산석 흘러내린 물가엔 연초록 파래 하느적거린다.

한낮의 태양 아래 윤슬 반짝이며 켜켜이 밀려드는 물살 순해서 평화롭다.

비양도와의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 색깔 더없이 오묘하다.

물빛이 말해주듯 처음엔 물이 아주 얕아 은모래 그대로 비치지만 저만큼 멀어진 바다는 짙은 사파이어 빛.

살짝 발 담그면 발목에서 찰랑대는 물살 부드러이 간지를 거 같다.

물빛은 바다 깊이와 정비례하며 점차 푸르러지기 마련.

한참 나아가야 가슴 선 넘어서는 바다라 물놀이에 적격인 바다가 금능해수욕장.

층층이 신비로운 물빛에 취해 시간 흐름도 잊었다.

신. 비. 롭. 다!

부드럽고 고운 흰 모래톱과 새까만 현무암이 빚어내는 흑백의 하모니, 그 격조있는 대비.

조. 화. 롭. 다!

거센 해풍에도 굿굿하게 서있는 허리 늘씬한 야자수는 또 어떤가.

볼 적마다 예가 캘리포니아야? 하와이야? 남태평양 어딘가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국의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지유분방한 백인들까지 금능에 오면 글로벌 시대를 실감케 된다.

게다가 너른 해변에 수심 얕은 바다라 물놀이하기 안전하며, 서로 잇닿아 있으나 분위기 사뭇 다른 협재해수욕장까지.

이처럼 좋은 여건 다양하게 구비한 바다도 흔치가 않다.


여기서 내가 그중 아끼는 자리는 현무암 바윗전이다.

5억만 년 전 아득한 고생대의 환상이야 어림없지만 적어도 쥐라기 시대 어렴풋 꿈꾸며 그리게 하는 그런 자리다.

척추 긴 공룡이 우거진 양치식물 사이를 겅중거리며 치달리지 싶기도 하다.

어느 분화구에서는 연기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우렛소리 같은 굉음이 아득스레 들려올 듯도 하다.

현무암 자체는 기공이 많으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한 표면이라 몹시도 질감이 거칠다.  

흘러내린 마그마가 뒤엉켜 굳으며 갈라 터지고 쪼개지고 금 간 상처투성이지만 밟아도 끄떡없다.

전혀 미끄럽지 않은 바위라 운동화 차림새면 조심할 필요는 없으나 넘어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는다.

용광로 작업 뒤에 남겨진 쇠찌꺼기(슬래그)나 숯 굽는 가마에서 갓 끄집어 내 식힌 참숯덩이와도 같다.

작은 주상절리나 튜물러스 형태를 무수히 품은 화산암의 특성 덕에 울퉁불퉁 거죽이 꺼칠해서다.   

원시성, 야생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 느낌 또한 좋다.

이미 신생대 시기에 물속에서 마그마 솟구치는 수성 화산활동이 일어나며 섬의 기반이 다져졌다는 제주.

역시 아득한 옛적, 두 번째 분출기 때 최초로 용암대지가 만들어졌다던 그 원시 제주 땅에 지금 이렇게 앉아있다.

헤아리기조차 버거운 먼먼 세월의 뒤편, 제주에서 비교적 젊은 화산체에 속하는 비양도마저 몇 천년 전에 생겼단다.

그때의 용암 자국일지, 한라산이 뿜어낸 마그마가 흘러내린 흔적일지, 나 알지 못하나 어떤 인연으로 오늘 여기 앉아있는지.....

무량한 일월 겹겹으로 흐르고 흐른 뒤, 나 이곳으로 이끈 분명한 섭리의 끈 틀림없이 이어져 있으리니.... 그게 뭘까?

가끔은 현무암 까만 바위에 걸터앉아 시절인연을 묵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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