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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6. 2024

가는귀

먹다 먹다 별 걸 다 먹어 어쩌다 가는귀까지 먹고 만 것인가.

틴에이저나 아프리카 계 사람들처럼 쿵쿵 울려대는 음악을 즐긴 것도 아니다.

차가 들썩거릴 만큼 고음으로 노래를 틀어놓는 라틴 계도 물론 아니고
자나 깨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내는 청소년도 아니니 소음성 난청이 올리야 없다.

그럼에도 귀에 선뜻 상대의 말이 들어오지를 않는 이 변고.  

갑갑하고도 난감스러운 일이 아니랴.

살다 보니 그만 내가 그 짝, 사오정이 따로 없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으니 말이다.

남들 다 웃는데 왜 웃는지를 모르겠다.

무슨 소린데? 통역을 의뢰한 다음 뜬금없이 뒷북치기도 싱거운 노릇이고

겸연쩍기도 한터라 그냥 대충 넘어가기 일쑤다.



십 년 넘도록 이리 지내자니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참 한심스럽다.

결국은 내가 갈데없이 가는귀를 먹고 만 꼴이 되어버렸다.

물론 벌써 노인성 난청에 이른 것도 아니다.

청력 전부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말 중에도 오직 영어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그간은 피장파장이라며 호기롭게 뱃장을 내밀었다.

언어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나만 힘든가?

내 말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는 즈이들도 내심 답답하겠지.

굳이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고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가는귀먹은 걸 기꺼이 인정하며 살아왔다.

음악가의 무기인 청력을 잃고도 명곡을 남긴 베토벤이었지 않은가.

별 걸 다 걱정,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며 자신을 살살 토닥거리며 지냈다.

 

나이 들어 가로 늦게 미국에 와서 도무지 뚫리지 않는 언어장벽 앞에 전전긍긍 중이다.

세월도 제법 지났건만 어느 하세월에 뚫리려나, 그리 나쁜 머리는 아닐진대 도무지 영어가 늘지를 않는다.

그간 내 일터에서야 늘상 쓰는 기본 대화만 통하면 되니까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되었지만 밖에 나오면 완전 꽉 막힌 벽창호가 되고 마는 나.

홈그라운드인 일터에서는 수년간 안면 익힌 사이들이라 대개 나의 영어 형편을 알다 보니
내 수준에 맞게 쉬운 말만 골라 쓰는 배려를 하지만 문밖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은 나에 대해 백지상태라 내 입장을 고려해 줄 리 없다.

하여 나가서 부딪쳐야 하는 세상은 완강한 적지나 다름없는 셈이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내가 대인기피증을 염려해야 할 지경으로 긴장부터 된다.

말문만 트이면 얼마든지 절친이 될 따스한 이웃들이 주위에 숱하건만 이눔의 말이 웬수다.

 

미국 사람들이 유창한 영어로 말을 빨리하면 그야말로 돌돌돌돌 말이 굴러간다.

그럴 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신나게 얘기 나누며 저희끼리 박장대소를 해싸도 나는 멀뚱한 채 겉돌아야 하는 아웃사이더, 국외자다.

누가 일부러 돌려놓으려고 그러는 거라면 아니꼽다고 먼저 팽 돌아서버리면 그만이다.

흉을 보는 것도, 무안을 주거나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내 쪽에서 알아서 저절로 나가떨어지게 되고 만다.

그때마다 멋쩍은 혹은 애매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나 솔직히 씁쓸하다.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한다.

그러면서 번번이 겪는, 다수의 무리에서 격리되어 혼자가 되어야 하는 소외감,  단절감,  고립감은 은근 고약스럽다.



영어는 알면 알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언어라고 한다.

얄팍한 내 실력으로야 언감생심, 하여 완전 절벽으로 까맣게 귀먹지 않은 것만도 감사히 여긴다.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어느 분의 토로처럼 특히 요즘같이 하루 다르게

신조어에 유행어가 생겨나는 판에는 그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교민 2세들조차 비록 원어민 영어를 구사할지라도

완벽한 미국인이 될 수 없는 까닭이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서로의 정서와 문화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듯

나는 김치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속속들이 한국인이다.

Z란 알파벳의 발음조차 나는 여전히 제트, 신나는 마징가 제트다.



하물며 고작 이민 십사 년 차인 내가 무슨 욕심을 부리랴.

더구나 성격상 되지도 않은 콩글리시를 씨부리는 건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따로이 노력을 기울여 영어공부를 한 것도 아닌 데다 문맹 탈출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본 적도 없는 뱃심 한번 두둑한 내가 아니었던가.

결국 감나무 아래서 홍시 떨어지기만 기다려온 나였다.  

뒤늦게 이제 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 영어 기초라도 다져보려 기를 쓰며 부지런을 떤다.

생각같이 진도도 안 나가고 여전히 입은 떨어지지 않으니 발전이 없나 싶지만
낙숫물이 바위 뚫는다고 점차 나아지겠지 자기 최면을 걸고 또 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다는데 하다 보면 뭐가 돼도 되겠지 느긋하게 마음먹고
날마다 보무도 당당히 신나게 학교에 간다.

언젠가 가는 귀도 치유되리라 믿으면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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