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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7. 2024

그들의 망향가

산책 다니는 길목을 가로질러 내가 흘러내린다.


실개천보다는 너른 냇물이다.

냇물 위로는 1945년에 만들어졌다는 표식이 박힌 시멘트 다리가 걸려있다.

나보단 좀 나이가 들었으나 아직은 정정한 다리다.

사시장철 맑은 물이 흐르는 교각 바로 아래쯤은 수심이 꽤 깊어 보인다.

그 냇물 흘러 흘러 강을 지나고 언젠가는 대서양 너른 바다에 이를 것이다.



 마을을 감싸 도는 하천이니 생활오수가 섞였으리라는 선입관에다, 가뭄에는 더러 바닥을 드러내기도 하는 얕은 내라서 설마 거기에 물고기가 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른 봄 그 냇가에서는 개구리 떼가 밤새 왈왈거리기도 한다.(미국 개구리 소리는 도시 암팡지질 않다.)

유월이면 다슬기 먹고 자란다는 반딧불이가 그 강기슭에서 날아오르고, 청둥오리며 구스가 물속을 자맥질하는 걸 보면 먹잇감이 있음에 분명한데.

그럼에도 물고기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한 건, 그 수면이 항상 너무도 평온하고 고요한 때문이었다.



그날도 다리를 건너다 별생각 없이 무심히 흐르는 냇물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물살이 심하게 흔들렸다.


물고기 기척이었다.

이어서 날렵하게 몸통을 틀어 물속으로 스며드는 허연 잉어의 등줄기가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팔뚝 만했다.

 파동이 인 중심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 잉어가 여러 마리인 데다가 주변에는 자잘한 치어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새 새끼까지 치며 한살림 실하게 차렸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흙탕물 일구면서 자발없이 나대는 새끼들과는 달리 어미 잉어는 태가 아주 의젓하니 점잖았다.



아마도 큰 물이 든 장마 때 어느 집 정원의 연못물 넘치며 게서 키우던 잉어들이 물살 따라 떠밀려 온 듯했다.

교각 아래 움푹 패어 웅덩이진 곳의 물빛은 유독 불투명한 녹빛 짙은 걸로 봐서 그들의 적당한 은신처이자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만도 했다.

점점 그들도 환경에 익숙해져 가며 물 가장자리로 자주 소풍을 나왔다.

이제는 인기척에 놀라 숨어버리지도 않거니와 별로 낯가림도 하질 않았다.


한결 유유자적해진 셈이다.

잉어 가족들과 만날 기대로 한동안 다리를 오가는 일이 꽤 즐거웠다.



얼마 전 봄비치고는 심한 폭우가 내리 이틀 연달아 퍼부었다.

다리목까지 차오른 황톳물이 소용돌이치며 넘실넘실 급하게 흘러갔다.


문득 잉어들이 걱정됐다.

밀려든 탁류에 허둥대다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며 그만 이산가족이나 되지 않았는지.

잉어들은 한동안 다리 아래서 나름 안정을 찾아가다가 그만 황톳물결에 밀려 먼 강으로 떠나버렸으리라.

제 의지나 뜻과는 상관없이 그저 큰 물살에 떠밀려서. 불가항력의 운명에 떠밀려서.

보다 너른 세상에 닿게 되어 잉어들은 정말 행운이다 자위할까.

낯선 곳에서의 적응기를 그들이 잘 견뎌내고 있는지도 역시 궁금하다.



시대의 격랑에 휘말려 유랑객이 되어야 했던 비운의 한말 역사만이 아니다.

이민사회를 둘러보면 각각의 사연을 안고 흘러온 여러 유형의 군상들과 만나게 된다.

근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넉넉한 자산을 지니고 여유롭게 시작하니 그렇지도 않지만
도도한 외환위기의 격류에 밀려 엉겁결에 이국생활을 하게 된 이들의 나날은 참담 그 자체.

 이민생활 십 년 차 안팎인 사람들이 주로 그들이다.

의료기기 수입상을 하다가, 여행사를 하다가, 자동차 부품 납품을 하다가, 벤처기업을 하다가, 다들 수직 상승한 환율에 손을 들고 말았다.

고심 고심 끝에 택한 돌파구가 무작정 상경 대신 무작정 도미로, 일단 미국행 비행기에 타고 봤다.



체면에 걸리고 알량한 자존심에 걸리는 한국 땅보다 낯 모르는 이역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하여 한국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허드렛일들을 닥치는 대로 한다.

속 사정은 각자 다르지만 결국은 시대의 탁류와 정통으로 맞부딪치면서 피해자가 된 그들이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이도 있고 유탄에 부상당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결국 그 여파로 증권가가 된서리를 맞자 가정파탄, 가족해체의 비극이 곳곳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혹자는 명퇴자 명단에 오르며, 다니던 회사가 도산해 졸지에 실업자가 되면서 미국을 마지막 비상구로 택한 사람들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내몰리듯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삼사십여 년 전 이민사는 청운의 꿈을 품고 유학길에 오른 사람이거나 강한 신념으로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려 용기 있게 미국으로 향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망명객 비슷하게 한국을 뒤로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들 모두는 이제 시련과 역경을 헤치고 이 땅에서 굳건하게 뿌리를 내렸다.

요즘의 조기유학생 또는 어학연수생이나 주재원들도 상황에 따라 여기에 정착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나 한국을 별로 그리워하질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넉넉한 형편대로 정신적 여유를 갖고 살뿐더러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과는 달리 엉거주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괄호 밖의 척박진 삶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입장들이 숱한 현실이다.

완강한 탁류에 떠밀려 닿은 낯선 강이다.

아무리 큰 물이 놀기 좋다 해도 살붙이끼리 비비대며 모여 살던 예전 냇가를 그리워할 것만 같은 잉어들이 그래서 다시 생각난다.

 먼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망향가를 부르는 애틋한 심사, 그대는 알까.

2009.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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