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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7. 2024

카르페 디엠

-하나-



어느새 벌써?

그간 할머니 호칭에 익숙해 있었고 경로우대증 사용하며 노인대접은 당연하다 여겼다.

은발로 변해가는 귀밑머리 넘겨가며 아직 그럴 때가 아님에도 노인네 행세를 했는데 역시 시기상조였던가.

유엔이 생애주기를 다시 재정립하여 다섯 단계로 나눠 발표한, 새로운 연령구분 기준을 보았다.

1-17:미성년자 / 18-65:청년 / 66-79:장년 / 80-99:노년 / 100세:장수노인.


그렇다면 고작 년 나이다.

고령화시대에 70대는 아직 한창때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백세시대란 사망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으로 90세가 넘는 경우를 가리킨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평균수명이 작년은 88세였으며 올해 90세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니 명실상부 백세시대 맞다.

시류에 어거지로 떠밀려 어쩌다 파파 노인층에 편입돼 얄궂게 지내온 듯 해 억울한 감마저 든다.

은퇴노인, 사회적 역할을 잃고 이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로 곱다시 세뇌를 당했던 셈이다.

충분히 일할만한 기력과 체력 왕성해도 뒷방노인 취급되며 현역에서 자동 물러나야 했으니까.

보고 듣고 걷고 숨 쉬며 활동하는데 여타 불편 없으니 얼마든지 일할 수 있지만 '어르신~' 하면서 그간 수고 많으셨다며 암묵적 권고사항이듯 그만 쉬시라 주저앉혔다.

고령화시대 유휴인력 활용차원의 소소한 일감도 젊은이 일자리 넘보는 염치없는 작태로 자칫 매도되기 십상.

솔직히 은퇴 이후의 삶은 온갖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생의 황금기다.

가보고 싶던 곳 여행도 다니고 즐기고 싶던 취미생활도 하고 사회봉사활동도 하면서 근사하고 품위있게 지낼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워낙 빠르게 급변하는 세태인지라 미쳐 은퇴준비 하지도 못한 채 엉겁결에 맞이한 노년.


그렇듯 모든 은퇴자가 다 노후대책 완벽한 것도 아니며 벌어둔 자산 충분하거나 연금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천태만상인 인간사, 복지의 그늘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한없이 고달픈 빈곤층 노인이 적잖은 현실이다.  

거기다 건강까지 시원찮으면 시름은 더 깊어질 밖에.


해서 현실도피하려 '어서 그만 가야지'를 입버릇처럼 되뇌기도 한다.

아무리 이승이 낫다 해도 병고나 빈곤으로 하루하루가 힘겨운 이들에게 Carpe diem은 강 건너 불이요 뜬구름 잡는 기호일 수도 있을 터.


무엇보다 심각한 건, 노령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출산율 바닥이라 인구절벽이 당장의 위협으로 다가섰으니.....



 -둘-



관점에 따라선 이전투구 벌이는 심란스런 사회상인데 음풍농월이나 하는 작태가 어이없겠으나.

정신건강 지켜나가려 부조리한 세상사 짐짓 외면하고 자연과 함께하므로 가능한 한 외부 스트레스를 줄인다.

오늘도 자욱하게 낀 안개에 홀려 새벽같이 기상, 숲을 헤매다 돌아왔다.  

첩첩 높고 깊은 산중이라면 더 멋지겠으나 마을 뒷산일망정 안개 낀 숲은 몽환적이었다.

무엇보다 한국 와서 봄이면 무시로 뻐꾸기 소리, 딱따구리 소리를 듣는 아침이라 심한 동계로 가슴 벅차올랐다.

꺽꺽 목쉰 소리로 두 음절씩 뽑아내는 꿩소리까지 들리자 왼쪽 심장 아래쪽이 그만 아릿해졌다.

그렇다.


날마다 나를 밖으로 불러내는 자연은 나를 늘 설레이고 두근거리게 만든다.

숫된 시절, 그리움 담긴 연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답신을 기다리는 마음 같은 설렘을 안겨주는 자연이 기다리기에 나의 나날은 언제나 화양연화일 수 있다.

물론 100% 만족할 수준은 아니나 스스로 시간관리, 심신관리, 행복관리 잘해나가며 나름의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동시에 되도록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집중하며 카르페 디엠!!! 자기 주문을 수시로 최면 걸듯 어 본다.

나 자신 어느 결에 자꾸 옛날얘기에 몰두하는 양태를 보이며 과거회상을 넘어 과거지향 나아가 퇴행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도드라져 감을 알아챈 지도 오래다.  

자칫 뒷걸음질 치다가 돌에 걸려 넘어질까 우려됐고 그런만치 놓치지 않으려 한 첫째가 자신의 심신건강에 대한 책무감이다.

능력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녀들에게 짐이 덜 되도록, 나아가 매사 만족스러이 지내야 할 의무에도 충실하려 노력한다.

당당하고 의연하게 나잇값 하며 기품있게 살고자 하면서도 농담 던지듯 유치하고 미숙한 철부지 아이처럼 딴청도 부려봤다.

자주 카르페 디엠! 주문 걸며 씩씩하게 걷지만 누구나 종국엔 혼자가 될 밖에 없는 존재라는 자각 때론 시립게 다가오기도.

혼자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 혼자일 때 강한 사람이 진정한 강자이자 승자라 했으니 심약해지지 말자며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한 심신의 근육단련을 해나가고는 있는 중이다.



-셋-



누구든 주어진 생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므로 자기 삶은 자기 뜻대로 실하게 가꿔나가며 누구나 자유로이 살고자 한다.

자유로운 상태란 무엇에도 걸림 없이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른다.

바깥세상의 영향을 되도록 덜 받고 외부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릴 때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그러나 절대자유, 완전한 자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법칙의 구속이 있는 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상호의존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 제약과 관습에 매이며 자기 행위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것들, 이를테면 본능을 억제하고 충동을 참을 수 있기에 과소비를 줄인다거나 단식을 한다거나 평생 금욕생활을 하는 행자도 수 있다.

그렇듯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자유로운 인간인 동시에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며 항상 깨어있는 사람으로, 생각의 자유를 충분히 행사하고 누리살아갈 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에의 의지는 있다.

단지 조건을 따지며 당장의 안락을 놓치기 싫어서, 게을러서, 용기가 없어서, 사람들은 제약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따름이다.

주먹 가득 무언가를 쥔 손을 풀어버리면, 허심하게 놓아버리면 그때 우리는 자유케 됨에도.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은 잘 알다시피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현재를 즐기라는 뜻의 라틴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이 학교를 떠나며 제자들에게 남긴 말로도 유명한, 현재 이 순간을 즐겨라! 다.

호라티우스가 쓴 시구인 Carpe diem은 인간의 자유정신을 고양시키는 상징어로 나에게도 깊이 각인됐다.    

젊었을 때는 의무에 매여 실았으니, 이제야말로 자유정신을 바탕으로 현재에 충실하게 즐거이 사는 길이 최선이며 합당히 누릴 권리다.

이제는 자신만을 챙기며 살아도 이기적이라는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시기에 이르렀으니 나를 위한 시간으로 현재를 오롯이 쓰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나이 상관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좋아하는 일에 즐겨 몰두하고자 하는 열정과 탐구심도 상존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충족시켜 나갈 수 있다면 생물학적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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