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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7. 2024

이호해수욕장 친구인 비행기 소리

이호해수욕장 앞에서 차를 내렸다.

첫발을 내딛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별안간 천둥 치듯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바짝 귓가를 스쳐간 둔중한 굉음이 들려온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비행기가 바로 내 머리 위를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주공항과 이호해수욕장이 지척거리에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사전 검색하지 않고 백지상태로 불쑥 찾아 나서는 스타일이다.

꼼꼼스레 계획하기보다는 그날 아침의 기상도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라 정해진 패턴도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둘 다 장단점은 있게 마련, 하여 이런 유형은 주요 포인트를 놓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편견 혹은 고정관념 같은 선입견 없이 새로운 풍물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고수해 온 방식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굴레에 걸려들면 어느 정도는 개성적 시각이 훼손되고 의식의 자유로움도 반감된다는 점 감수해야 되므로.  

 


큰 도로에서도 한 조각 바다가 보이는 이호해수욕장 입구로 향하는데 언젠가 본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여기는 난생 첨으로 와본 곳, 잠시 멈춰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데자뷔를 일으키게 한 장소는 캘리포니아 카멜 해변이다.

아마도 야자나무 늘어선 색다른 풍치도 이에  한몫했지 싶다.

분위기상 서로 유사하게 닮아있어서 순간적으로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된 셈이다.

그만큼 이호해변과 카멜 해변은 주변에서 풍기는 느낌이 엇비슷했다.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따라 남하하다 보면 빅서 못 미쳐서 만나게 되는 작고도 어여쁜 도시 Carmel by the Sea.

도시에서 카멜 비치로 들어가는 길이 여기처럼 양편에 사이프러스 울창하게 들어차 있다.

같은 침엽수일 뿐, 소나무 숲이 길가에 푸르게 우거진 이호해변과는 달리 물론 사이프러스 나무이긴 하지만.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펼쳐진 송림 안은 야영장소인지 텐트촌을 이루고 있었다.

모래사장 한켠에는 바다의 날 행사가 있었던 듯 가설무대가 짜여 있고 스테이지에서 쿵짝대는 음악소리 요란했다.

오분 간격쯤으로 바투게 이륙하는 비행기 소리까지 뒤섞여 약간은 어수선한 바닷가.

그래도 공항과의 거리가 가까워 제주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녀가는 해수욕장이라고는 한다.

무엇보다 이곳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색과 흰색의 조랑말 등대를 배경 삼아 숱하게 사진에 남겨 낯도 익다.

트로이 목마를 닮았대서 목마 등대, 올레길 표식인 제주 간세 조랑말에서 따온 간세 등대로도 불리는 두 개의 등대다.  

이곳 정식 명칭은 이호테우해수욕장.

위치가 이호동에 자리했으니 마을 이름 이호, 제주도 전통배인 테우를 합쳤는데 어쩐지 이국적 뉘앙스를 풍긴다.

테우는 앞바다에서 그물질하거나 해초를 채취할 때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배다.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배의 일종으로 떼배라고도 한다.

주로 가까운 바다에 나가 자리돔, 멸치를 잡거나 해산물을 옮기는데 쓰였다.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를 실어 나르기도 했는데 이 일대에 동동 뜬 테우들이 하도 많아 '이호테우 해변'이라 불렸다고.

본격적인 해수욕 시즌이 아니라서 햇살 눈부셔도 대체로 한산한 비치.

현무암 가루와 섞여 거무스레한 해변의 결 부드러운 모랫벌에 누워 선탠하는 외국인들이 가끔 눈에 띄었다.

야트막한 바다에서는 아이들이 참방대며 물놀이하느라 한창 신바람 났다.

넓은 백사장이 끝나는 방파제 앞에는 두 개의 쌍원담 모습도 또렷이 볼 수가 있다.

원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제주의 전통 고기잡이 방식으로 원담 가장자리에는 파래가 새파랬다.

이호동 쌍원담은 제주 해안에 있는 원담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주로 멸치나 숭어를 잡아 지역 주민끼리 나눴다고 한다,

선상 낚시로 싱싱한 횟감을 낚기도 하고 윈드서핑 등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어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다는 이곳.

간세 등대를 가까이 보러 가다가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갖춘 일단의 스쿠버들이 옥빛 물속에서 훈련하는 모습도 만났다.


빛 하도 투명해 한참을 스쿠버들 구경하느라 간세 등대 앞 방파제 난간에 앉아있다 보니 차츰 윤슬이 은가루에서 금가루로 빛났다.

일몰 풍경과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고 하는 이호테우 해변이나, 낙조는 저만치 둥그스름하게 솟은 오름에 올라가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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