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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7. 2024

초당옥수수 시식해 보니

이거 맛보셨어요?

옆집 현주씨가 찐 옥수수 두 자루를 갖고 왔다.

초당옥수수를 학교에서 지인 통해 샀는데  방금 쪘다며 따끈따끈한 걸 전해줬다.

말만 들었지 구경하기도 첨이지만 그녀도 초당옥수수를 처음 사봤다고 한다.

따라서 둘 다 초당옥수수를 처음으로 접하는 셈이고 시식해 보기도 첨이다.

여기서 '시식'은 맛을 보려고 시험 삼아 테스트한다는 시식이 아니라 처음 먹어본다는 뜻이다.

제주살이 시작하며 밭농사를 짓는 분이 초당옥수수 모종을 심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초당옥수수는 생으로도 먹을 수 있다 했으나 옥수수를 어찌 날 거로 먹는다지? 의아하기만 했다.  

옥수수는 통상 솥에서 쪄내거나 바비큐에 곁들여 숯불에 구워 먹긴 해도 날 옥수수를 먹는다는 얘긴 금시초문.

그러나 별로 옥수수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아 일부러 사볼 생각까지는 한 적이 없다.

아무튼 현주씨 덕에 색다른 그 옥수수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이다.  

마침 저녁때라 식사 대신 따뜻할 때 옥수수로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다.

옥수수는 아주 달았다.

당도가 월등히 높아 초당(超糖)이라는 이름이 붙고도 남을만했다.

초당이란 말은 흔히 볏짚으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을 이르는데 이 옥수수의 '초'는 Super란 의미.

탄수화물 함량은 적은 편인 듯 물기가 많아 아삭거리는 식감도 좋았다.



어릴 적 여름방학을 맞으면 그날로 득달같이 외가로 달려갔다.

당진읍에서 외가가 있는 대호지까지는 삼십 리 길, 당시는 버스도 없어 타달타달 걸어가야 했다.

유년기에는 엄마를 따라서, 중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읍내로 유학 온 외가 동네 언니들 따라서.

그때 산길 들길 논두렁길 걸으며 온갖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을 자연스레 알게 됐고 사계의 변화를 감으로 배웠다.

글쓰기의 바탕인 서정의 원천이 돼주었으며 글의 소재나 부제로 동원되기도 하는 추억 창고인 그 시절.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이면 외갓집 남새밭에는 오이 토마토 참외 옥수수 탐스러이 여물어가며 날 기다렸다.

외삼촌은 생질에게 잘 익어 때깔 좋은 토마토만 골라 내 몫으로 따주며 흐뭇해하셨다.

지금이라면 그렇지도 않겠지만 외숙모는 토마토를 썰어 그 시절 귀한 설탕까지 얹어 주셨다.

차디찬 우물물에 띄워둔 참외 시원하게 식어갈 때 큰 마당가 오동나무에서는 매미소리 차지게 들렸다.

두엄가 텃밭에선 짙푸른 부추 무성해졌고 애호박을 매단 호박덩굴 쭉쭉 뻗어나갔다.  

햇밀 빻아 만든 밀가루로 수제비를 뜨며 턱밑 땀을 훑던 외숙모, 부추와 애호박만 숭숭 썰어 넣어도 구수한 그 맛 일품이었다.   

밀짚 지펴가며 가마솥에서 포실하게 쪄낸 감자와 함께 한옆에선 옥수수자루도 익어갔다.

바구니 그들먹하게 담긴 옥수수는 우리들 놀잇감 되어 하모니카 삼아 불거나 가위바위보~하면서 한 줄로 빼먹었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 꾀꼴~~~ 그런 노래도 고개 까딱대며 불렀다.

미 동부 뉴저지로 이민을 간 첫여름, 블루베리가 익어가는 유월이었다.

메릴랜드에 사는 이종사촌 네를 방문했더니 바비큐 끝에 미국 옥수수를 은박지에 싸서 구워냈다.

큼다막하고도 놋노란 옥수수는 기막히게 달았다.

그전까지 한국에서 먹어본 옥수수와는 당도에 있어 비교 자체가 불가였다.   

오죽하면 설탕물에 절였다 구웠냐고 물어볼 정도로 옥수수 알알이 무척 다디달았다.

게다가 옥수수 알갱이가 아주 연하고 부드러웠다.

원래부터 여름 한철 별미로 즐기는 옥수수이나, 맛의 특징도 없는 밍밍한 옥수수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쫀득해서 좋다고들 하는데, 알 딱딱하기만 한 찰옥수수는 더더욱 무슨 맛으로 먹는담! 하던 나였다.

그런데 미국 옥수수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옥수수 맛의 신세계를 펼쳐줬다.

게다가 가격이 어찌나 착한지 농장을 지나다 사면, 들기도 무거운 양의 큰 양파 망 한 자루에 3불이었다.

십 년 전이긴 하나 당시 아주 실한 옥수수가 열댓 개는 들어있었는데 그에 반해 초당옥수수 가격은 퍽도 쎘다.

열 개들이를 만 팔천 원 줬다니 한 개 당 가격이 거의 2천 원, 전에 미국에서 샀던 거의 몇십 곱절로 엄청 비쌌다.

당시 미동부에서 맛본 옥수수는 달달하고 부드러워 입맛에는 맞았지만 혹시 GMO 식품일까 싶어 자주 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는 전혀 그런 맛을 내지 않았으니까.

Farm Belt라 불리는 곡창지대인 미 중부지방에서는 콩과 옥수수밭이 바다처럼 끝 모르게 펼쳐져 있다.

대부분 제3세계 식량으로 수출되는 대두와 옥수수로, 우리나라 역시 메주콩이나 가축사료 감으로 대량 수입해 들였다.

장공장을 운영하신 시어른은 70년대에도 미국 수입콩을 사들여 창고에 가득 쟁여놓고 썼던 기억 선연하다.

한국콩에 비해 알 굵은 수입콩 속에는 강냉이로 불리는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있어 일일이 골라내던 인부들 모습도.

요즘 시장에서 판매하는 두부는 세 종류, 국산콩과 미국콩 그리고 중국콩으로 만든 두부다.

미국 농장지대에서 콩농사 짓는 걸 보아온 터라 주저없이 가격 차이 많은 미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집어든다.

현재 한국 콩 생산량이 어느 정도인지 대강 아는 바, 그 많은 콩나물콩이며 장류 제품마다 국산콩을 강조하는데 과연?

그보다는 차라리 미국산이라고 떳떳이 밝힌 제품의 두부가 한결 신뢰할만하니까.

하여단 옥수수, 식당에서 샐러드에 섞어 쓰는 통조림으로 나오는 깡통 옥수수 이름도 스위트콘이긴 하다.

공장에서 나오는 가공식품 말고 진짜 미 동부에서 생산되는 단옥수수도 스윗콘이라 불린다.

이번에야 알았지만 스윗콘은 유전자 조작법이 아닌 기본적인 품종개량법, 즉 전통 교배 방법을 이용하여 개발한 품종.

미국 살 때 꺼린 그 점이 오류였음을 진작 알아보고 거기 있을 때 맘껏 사 먹을 걸, 초당옥수수 맛본 다음에야 그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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