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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8. 2024

부연 한옥집

옆집은 한해걸이로 사람이 바뀌었다. 내용을 알고 보니 독채 렌트를 놓는 집이었다. 그러니 이삿짐이 그리도 자주 드나들었나 보다. 이번엔 세입자가 나가자 곧바로 안팎 수리에 들어갔다. 이탈리안인 집주인이 부산하게 들락거리며 일꾼들을 부렸다. 이 더위에 장미를 심고 페인트칠을 하고 카펫과 전등을 새로 교체했다.



앞뜰 잔디에 물을 주러 나가자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앞으론 자기 아들 내외가 살 거라서 보수공사를 한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다한 어버이만이 지을 수 있는 흐뭇한 표정이었다. 부모노릇 흡족하게 한 다음에 절로 지어지는 그런 표정을 본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    


시어른이 차양 공사를 마친 후 찍어둔 사진


74년도 대구 봉덕동 한옥 주택가에 우리 집을 갖게 됐다. 사월 어느 날 처음 그 집을 구경하러 갔다. 그때 라일락이 만개해 있었다. 마당 한켠에 드리운 라일락은 바람이 일 적마다 꽃보라를 일구어댔다. 집 안팎을 두루 돌면서 마음에 드느냐고 시어른이 물으셨을 땐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예상밖의 큰 집을 마련해 주심도 감사했지만 재산 가치에 앞서, 그 집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너무도 좋았던 까닭이다.



너른 대청마루에 상량문 뚜렷한 아름드리 대들보, 부연으로 치켜올린 높직한 기와지붕. 특히 백 년 생은 됨직한 우람한 라일락에 정신없이 매료되었다. 거기서 십 년을 살고 부산으로 옮겨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 집은 팔 수가 없었다. 라일락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나이 들어 다시 그 집에 돌아가 살게 되면 그땐 꼭 추녀 끝에 풍경을 달 생각이다, 란 글도 썼었는데....


시어른이 손수 등기까지 마친 문서를 우리 손에 전해주러 오신 날 비가 내렸다. 깔끔한 타일 토방에 빗방울이 들이치자 추녀를 올려다보시며 차양을 다시 해야겠다고 하셨다. 기존의 함석 차양도 녹슬지 않았는데 무엇을 바꾸시려나? 새파랗게 젊은 우리는 집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며칠 후 대패질된 각목과 슬레이트가 마당에 잔뜩 부려졌다. 쌓인 자재를 보니 간단한 공사가 아니구나 싶었다. 대개 차양막을 한다면 투명 플라스틱 정도를 쓰는데 튼실한 슬레이트로 덮을 계산이라면 대공사일 터다. 목수 페인트공 등 인부 여러 명이 시어른의 감독 아래 일 주간 작업을 했다. 그렇게 견고한 차양막이 완성되자 시어른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바로 옆집 저 아저씨처럼.     



한옥은 나무와 흙 같은 자연재료로 만들어진 친환경 건축물이다. 겨울엔 햇살이 방안 깊숙하게 들어오고 여름엔 청마루 틈새로 서늘한 바람이 올라온다. 물론 외풍이 세고 오르내림이 불편한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한옥은 멋스러움으로 여타 결점을 상쇄시킨다. 암막새 숫막새를 문 잿빛 기왓골도 운치 있고 완자창호와 대청마루는 정갈스럽다. 한옥에서 가장 유려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처마 곡선이다. 일반 한옥은 서까래가 짧아 추녀가 일자 식으로 단출하다. 반면 부연 한옥은 이중으로 겹쳐 댄 서까래가 네 귀를 공중으로 날렵하게 물어 올려 처마선이 맵씨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중후해서 부연집은 멀찍이서 바라보면 의젓한 품위가 느껴진다. 서까래를 덧달아 낸 이중처마 형식으로 처마 곡선이 우아한 이 건축법은 주로 사찰이나 궁중에서 쓰였다. 그러나 점차 여염집으로도 퍼졌는데 봉덕동엔 그런 집이 많았다. 사실 차양을 단 다음 우리집 앞태는 처음만 못해졌지만, 들이치는 비도 막아주고 그늘도 만들어 주는 이중효과는 있었다. 이 집은 훗날 증권바람에 휩쓸린 남편이 날려버렸다. 하지만 첫정이 든 집이라서 그 주소는 내 모든 비밀번호로 남아 지금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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