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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6. 2024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들을 기리며

순국선열들의 넋을 추모하는 날.

전쟁과 평화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현충일이다.


어언 예순아홉 번째 맞는 현충일.

동작동 국립묘지나 대전 현충원에서는 예년과 다름없이 조포 소리와 분향 내음이 번지리라.

아직도 중동과 러시아에선 전쟁의 광기 계속되는 지구촌.

여전히 포연이 가라앉지 않는 이 세상이다.



 


다음은 2005년 미주 톨릭신문 기고문이다.



                    <고라니 다리가 셋>


일간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안경을 낀 반듯하게 잘 생긴 백인 청년. 나이 스물하나 인 그는 그러나 한쪽 눈과 다리를 잃고 귀환한 부상병이다.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따분해 비디오 게임처럼 신나고 재미있는 전쟁놀이를 꿈꾸며 자원입대한 군. 이라크 전에 파병된 지 몇 달 만에 그는 폭탄 공격을 받고 피투성이가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수차례 수술에 따른 심한 고통 때문에 진통제가 과다 투여되고 그로 인해 날마다 공포스러운 환각을 경험한다.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며 온몸은 찢겨 만신창이가 되곤 한다. 각막에 박힌 탄피, 잘려나간 다리. 병상에서 그는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대야 했다. 끔찍스러운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그는 말한다. 전쟁은 결코 비디오 게임이 아니었노라고.


지금 미국은 미증유의 재난인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남긴 상흔 수습에 골몰하고 있다. 그 통에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틀림없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골 아픈 문제꺼리가 있다. 이라크 전이다. 아울러 점차 세를 확대해 가는 반전시위 또한 묵과할 수 없는 행정부의 짐이다.


지난 8월 초,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어느 평범한 어머니가 시위에 나섰다. 여름휴가를 즐기던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힌 그녀는 신디 시핸. 자신의 아들이 젊디 젊은 청춘으로 죽어야 했던 이유를 알고 싶다며 대통령과의 면담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표성 없는 주장은 수용할 수 없다며 면담 요구를 일축해 버렸다. 텍사스의 뙤약볕 아래 1인 피켓 시위로 시작된 농성은 날이 거듭될수록 많은 동조자가 불어나며 힘을 늘려갔다.


크로퍼드 목장의 길섶에 꽂힌 수백 개의 하얀 십자가. 거기에는 이라크에서 숨진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농성장을 언론이 주목하면서 세간의 관심은 크게 증폭됐다. 그녀와 생각을 같이 하는 호응자는 물론 격려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주위에 밀려들었다.  그녀는 평화의 어머니, 반전 운동가라 불리며 전국적인 반전시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각처를 돌면서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와 전쟁의 부당성을 외치는 그녀.  아주 평범했던 한 주부는 그렇게 전사로 변모해 갔다.


제풀에 지쳐 거둘 줄 알았던 1인 시위가 전국적인 반전 시위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이라크 전의 홍보에 주력했다.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미명. 아무리 명분 있는 전쟁임을 강조한들 대관절 싸움질에 무슨 명분이 주어지며 폭력에 내세울 명분이란 게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초반엔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파병이 시작된 이라크 전이다. 9.11 테러의 배후이자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트집을 걸며 전쟁을 벌였으나 샅샅이 뒤져도 WMD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프칸 전 때와는 달리 전황은 지지부진인 가운데 전사자가 속출했다. 결국 명령권자의 무모한 오판과 세계를 제패하려는 오만함으로 무고한 생명만 희생돼 갔다. 설상가상으로 엄청난 전쟁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자 국민들도 점점 전쟁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다.


쏟아부은 전비도 전비이지만 집계에 의하면 이라크 전선에서 사망한 미군 숫자는 2천을 넘어섰으며 2만여 명이 부상 입은 상이군인으로 살게 됐다고 한다. 부시 정부가 2009년까지 십만 명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킬 방안을 마련해 둔 것처럼, 이라크 전은 이미 일 년 전에 종전 선언을 한 것과는 달리 여전히 불타오르는 전쟁으로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폭탄이 터지고 있는 이라크가 아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고 그럴듯한 명제를 대부분 앞세우곤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도사린 것은 대립 상태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탐욕의 결과물인 것이 전쟁이다. 민족상쟁의 비극인 육이오가 김일성의 탐욕스러운 공산화 야심 때문이었듯 이라크의 석유가 이번 전쟁의 숨겨진 목적은 아니었던가.


대한민국 중허리를 가로지른 철책선 인근에는 다리가 셋뿐인 고라니가 심심찮게 목격된다고 한다. 도처에 묻힌 지뢰 탓이다. 아니, 평화의 길 마다하고 상생 공존을 거부하며 유아독존하려는 전쟁광들 때문이다.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졌다가 겨우 목숨 건져 절뚝거리는 짐승은 무슨 죄로 날벼락을 맞았나. 마태복음 26장의 말씀처럼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하게 마련이다.


2005 미주 가톨릭신문 시사만평 게재



그때나 이때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고라니 다리가 셋, 으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후의 메모다.


애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두 미국인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한참 전의 이 사진은 미국에서 찍었다.


길거리 장이 선 날이라 붐비는 랭커스터 블러바드 벤치에 앉아 오후 시간을 즐기는 백인.

한 블록 지나 한적하니 인적 없는 공원에 나와있는 백인은 이라크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참전 군인이다.

전쟁은 활기차게 달리던 건각을 앗아갔고 행복할 삶의 웃음을 앗아갔다.

미친 짓거리 전쟁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한반도에 갑작스레 포화가 터졌던 1950년 유월.


예고도 없이 도둑고양이처럼 덮친 북의 남침도발로 일요일 서울은 삽시에 혼란에 빠졌다.


그 후 3년 1개월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대한민국.


그나마 유엔 참전국의 도움으로 공산세력의 적화의도를 막아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소집하여 북한은 즉시 군대를 38선으로 철군시킬 것을 요청하는 결의를 채택함과 동시에 유엔 회원국들에게 한국을 도울 것을 요청하였다.


6월 27일 미국 대통령 트루만은 해군 · 공군에 한국군을 지원하도록 명령하였다.


6월 28일 동경에 있던 미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가 내한하여 전선을 시찰하고 미 국방성에 지상군 파견을 요청했다.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자유우방국 16개 국 군대가 참전하게 되었고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의 지휘를 받았다.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과 치열하게 맞선 낙동강전투,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전세는 역전되었으나 결국 중공군 개입으로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육이오 전쟁으로 대한민국 국군은 전사 14만 7000여 명, 부상 70만 9000여 명, 실종 13만 1000여 명을 내 전체 손실이 98만 7000여 명에 이르렀다.


유엔군은 약 15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가장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군은 36,574명 전사, 10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이 포로가 되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의 아들은 142명. 그중 서른다섯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더 많이 가졌기에 더 많이 누리려는 생각보다 더 많이 나누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그들은 귀한 교훈으로 우리에게 남겼다.


가령 동일상황을 우리에게 대입시켜 본다면?


국제전 참전은 차치하고라도 만일 나라에 전쟁이 닥쳤을 때 한국인 고위층은 과연 솔선수범해 아들을 전쟁터로 내보낼까.


 지도자 자녀들의 병역비리만 들어봤을 뿐인 우리 국민들이다.


옛날에도 제 집 노비를 병역에 대신 보냈듯이 부유층과 고위관료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자기 아들만은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기를 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쉬운 방법으로 복무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도모하는 것을 일컫는 병역비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50년 낙동강까지 밀리고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가던 한국전의 와중.


낙동강전선을 지켜낸 워커중장의 아들도 한국전에 참전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패주를 거듭하다 모처럼 아군이 큰 승리를 거둔 전투가 인정돼, 8군 사령관의 아들 샘 워커 대위는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게 되었다.


아들 가슴에 훈장을 직접 달아주고자 지프를 타고 달려오던 중 워커장군은 한국군 트럭과의 충돌사고를 당했다.


UN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아들 샘 워커 대위를 불러 “귀관에게 고 월튼 워커 대장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긴다.”


워커 대위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는 일선 보병 중대장입니다. 아버지는 의전부대에 맡겨주십시오.”


그러나 맥아더는  “명령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군 명령대로 아버지의 유해를 안고 한국 땅을 떠난 그도 훗날 대장이 되어 미군 최초의 父子 大將4성 장군이 되었다.



중공군 대공세 시기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워커장군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유엔군의 붕괴를 막고 서울을 재탈환했던 매튜 리지웨이 중장.


그가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할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계속 밀리던 절체절명의 시기로 영국도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을 지키자는 주장이 나오던 때였다.


 후퇴를 허락지 않는 반격작전의 용장으로 불렸던 그는 군복에 수류탄을 달고 다니며 전쟁을 지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사단장 신분으로 부하들과 같이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용맹을 떨쳤던 리지웨이다.


부임 직후부터 비행기, 헬기, 지프차로 최전방을 돌며 장병들을 독려하던 그는 ‘우리는 왜 여기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라는 제목의 편지를 미 8군 전 장병들에게 보낸다.


겁에 질린 한국민들의 대탈주를 보면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음을 그는 분명히 하였다.


리지웨이는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 퇴역한 맥아더 후임자로 발령받고 곧장 유엔군 사령관으로 영전됐다.



매튜 리지웨이 장군의 뒤를 이어 제임스 밴플리트 중장이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의 아들 짐 밴플리트 공군 중위는 막 그리스에서의 복무를 마친 상태라 참전할 의무는 없었으나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봉직 중인 한반도 출격을 자원하였다.


 1952년 4월 그는 압록강 남쪽 평북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두 시간 후 소식이 두절됐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미 제5공군 사령관으로부터 아들이 실종돼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 담담하게 지시했다.


“짐 밴플리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무모하다.”


그는 며칠 후 부활절을 맞자 전선에서 실종된 미군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오늘의 미국이 다져졌을 것이다.

 
1952년 12월, 트루먼에 이어 미국 대통령 당선자인 D. 아이젠하워가 방한, 미 8군 사령부를 찾았다.


고위 장성들과 각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밴플리트 사령관이 전선 현황에 대해 브리핑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아이젠하워 당선자는 의외의 질문을 하였다.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상대는 자신의 아들을 적지에서 잃어버린 밴플리트 장군이다.


“소령은 전방 미 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밴플리트 장군의 사무적인 짤막한 대답에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배치시켜 주기를 바라오.”


 참석자들은 뜻밖의 주문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혹시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픈 일이 되겠지만 그것을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일 것이오. 그러나 만약 아들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이오. 그러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정부에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압력을 가할 것이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소. 그래서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즉시 조치해 즐 것을 요청하는 것이오.”

 


대한민국 정치판은 어떠한가.


고위층의 자녀 관련 병역비리, 자녀에게 재산 편법증여, 그쯤 예사이다 보니 아예 불법에 무감각한 정치인들.


도덕적 인물은 정관계 그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범죄공화국에 다름 아닌 나라가 어쩌다 됐을까.


순국선열들의 충렬을 기리는 날 현충일을 맞아 미국 장성들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새삼 돋보이는 이유다.


이것이야말로 사회 지도층이 지녀야 할 필수덕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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