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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5. 2024

카멜 해변에서의 질주

캘리포니아 센트럴코스트에는 매혹적인 보석들이 촘촘 박혀 있다.


1번 하이웨이를 따라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에 있는 산타바바라, 캠브리아, 피스모비치, 빅서, 카멜바이더씨, 몬터레이 등을 품고 있는 센트럴 코스트.


​페블비치에서 떠밀려온 해무 서서히 흩어지며 카멜에 닿았을 때는 바다 끝에 안개 조금 걸려있었다.

해풍에 어깨 굽은 사이프러스나무가 녹빛으로 비치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분위기 안온한 카멜.

거센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타운 내 도로변까지 두터이 쌓여 있었다.

빌리지 초입부터 촘촘 들어선 아트 갤러리며 클래식한 부티크와 빈티지 스타일의 선물가게가 먼저 반겼다.

그 사이로 총총 예쁜 카페와 펍이 다정하게 어깨를 결고 나앉았다.

꽃으로 장식된 카멜 거리에서라면 스치는 누구와도 미소 나누고 싶어질 거 같았다.

예술가들이 몰려사는 마을이라서인지 개성있고 격조있는 주택들이 빚어만든 정경은

평화롭고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동화 속 같은 솔뱅과도 비슷하나 그와 다른 묵직하니 기품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지붕 위에 더깨 앉은 이끼로 인해서인가.

바다안개가 잦은 지역이라서 무성한 이끼도 이끼지만 공기 자체가 눅눅하고도 찹찹했다.

거리 끝에 주차를 시키고 해안가 모래벌로 내려갔다.

다시금 바다에는 해무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하늘은 수시로 표정을 바꿨다.

반사되는 하늘빛 따라 물빛은 에메랄드에서 사파이어로 변했다가 터키석 또는 연옥빛을 띄우기도 했다.

솜사탕처럼 달착지근 부드러운 안개가, 해풍이, 바다가 귓불 간지럽히며 말을 걸어왔다.


백사장은 너르고도 긴 데다 은모래알 무척 보드라웠다.


카멜 바다가 무엇보다 고마운 건 멍이를 박대하지 않아서였다.

그간 여타 숲에서, 호수에서, 비치에서, 반려동물 출입이 거부만 당한 터라 지레 주눅 들어 팻말부터 살펴야 했는데.

뜻밖에도 카멜비치는 모든 멍이를 기꺼이 영접해 주었다. (알고 보니 동물애호가인 도리스 데이의 노력 덕분)

이곳은 예술의 도시답게 예술가나 영화배우가 시장을 지낸 바 있는데 80년대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시장을 역임했다고.

자유분방한 예술가 덕을 톡톡히 본 멍멍이들.

해변엔 이미 여러 마리의 멍이들이 눈치 볼 일없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모처럼 환대받은 자연품에 뛰어들어 울집 멍이도 타고난 질주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목줄에서 자유로워진 멍이들은 크건 작건 품종불문, 하나로 어우러졌다.


한데 뒤범벅되어 좋아라 뒹굴고 짖어대며 야단법석을 부렸다.

큰 사냥개를 따라 누가 잰가 죽어라 뜀박질하던 우리집 멍이.

해초 뭉터기로 밀려온 곁에서 멈칫거리더니 체면이고 뭐고 염치불고 실례를 했다.

달리기로 장운동을 하고 나면 배변 욕구가 생기게 마련, 시원스레 볼일 마친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뺐다.

변을 주워 담은 봉투 들고 내달리는 멍이를 줄레줄레 따라다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며
목줄을 흔들자 쫓아와서는 넙죽 앉아 다소곳 머리를 디미는 멍이.




쉼 없이 밀려와 출렁대는 목전의 파도 부러운 듯 바라보며 녀석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쉬움 때문인지 무심코 깊은숨도 토해냈다.

그래 , 살다 보면 날마다 우중충 흐린 날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날마다 호시절 봄날만 이어질 수도 없는 법.

무거운 숨 내쉬는 순간도,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는가 하면 말이다.


눅진 영혼 햇볕에 내 말린 듯 보송보송해져 해맑게 웃는 시간도 마련돼 있단다.

멍이의 정신세계 내지는 사유체계가 문득 궁금해졌다.

기쁘고 흐뭇하면 웃기도 하고 슬플 땐 눈물 흘리는가 하면, 자면서 꿈도 꾸는 멍이,


그에게 혼은 어떤 의미일까.

맘껏 뛰면서 목청껏 왕왕 짖어댄 카멜해변에서의 행복을 얼마동안이나 기억할 수 있을까.

그도 우리처럼 행복스러운 추억의 책갈피를 한번씩 넘겨볼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멍이 발에 낀 고운 모래를 털어주며 고사목 사이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어여쁜 도시 카멜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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