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05. 2024

피에드라 블랑카 - 백엽상이 있는 등대

피에드라 블랑카 등대(Piedras Blancas Light Station) 투어를 예약했다. 계절의 여왕 오월, 날씨는 청명했다. 퍼시픽 코스트 망망대해 거느린 1번 도로는 품섶 살푼살푼 제쳐가면 처처의 비경을 선보였다. 약속된 만남장소(피에드라 블랑카 빈모텔 앞)에 도착하니 여남은 명의 일행이 모여있었다. 허스트목장의 초지를 끼고 달리다 국도를 꺾어 곶으로 들어서자 이윽고 등대 입구가 나타났다. 길가에는 노란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하얀 바위라는 이름대로였다. Piedras Blancas는 Spanish, 영어로는 white rocks가 된다. 감청빛 바다에 대비도 선명히 앉아있는 흰 바위가 먼저 시선에 들어왔다. 오연히 솟은 하얀 등대는 그보다 늦게 자태를 드러냈다. 물새 노래에 섞여 물개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소금기 머금은 해풍은 상큼했다. 하얀 갈기 앞세운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해변에 다가서자 해조류 내음이 진하게 풍겼다. 빡빡한 해초숲 놀이터 삼은 바다사자와 해달이 망원경에 잡혔다. 흰 바위섬을 살펴보니 온데 물새 떼, 긴 세월 동안 쌓인 새똥이 피에드라 블랑카라는 이름을 얹어줬다.​



등대 근처에는 암초가 많아 항해 선박은 위험하나 해양 동물에게는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갈매기, 가마우지, 펠리컨 등 수많은 조류가 진을 치고 있어 소리 요란하지만 숱한 배설물이 겹쌓여 바위를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와 바다코끼리 서식지이자 해달과 물개가 물장구치는 곳이라고 했다. 회색 고래, 향유고래, 병코 돌고래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해안이기도 하였다. 1800년대 중반 인근 샌 시메온 연안에서 포경산업이 활기를 띠자 포경기지도 세웠다고 한다. 멕시코만을 주활동무대로 하며 이동하는 고래를 포획하기 위해서였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는 고래의 용처는 다양한데 특히 석유가 생산되기 전까지는 기름을 뽑아 썼다.  



경관 수려한 이곳은 예전부터 포경업 전진기지로 이름난 데다 목재와 농산물, 광산물을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주요 항구였다. 따라서 배 드나듦이 많아 해상사고 예방차원에서 등대를 건립하게 됐다. 1874년에 세워질 당시 높이는 100피트였으나 1948년 진도 4.6의 지진으로 빅토리아풍 화려한 상단부가 피해를 입었다. 그때 해안 감시실과 랜턴을 제거했으며 대형 렌즈(Fresnel lens)는 이웃 캠브리아 마을로 옮겨져 베테랑 기념관 앞 가로에 전시해 두었다. 현재는 70 피트인 피에드라 블랑카 등대이나 지진 전에는 대서양 연안 유일의 타워형 등대였다고 한다. 우리가 통상 생각하기로는 높은 탑으로 우뚝 선 등대라야 등대 같은데, 몬트레이 등대도 낮으막한 주택형이었다. 이 등대는 캘리포니아 해안 기념물이자 연방정부 보호 등대며 국립 유적지로 등록되어 있다.​


등대 투어 도중 멀지 않은 바다에서 몸통 거대한 회색고래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 야생 동물 서비스 학회 (Fish and Wildlife Service)는 특별히 이 지역에서 생물학 연구소 설립허가를 받아냈다. 2톤이 넘는 거구의 바다코끼리 군생지 이기도 한 데다 연근해를 지나는 고래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역시 이날도 고래를 관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한 팀이 첨단기기 설치해 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뙤약볕 아랑곳하지 않고 망원경 들여다보며 대기하다가 고래가 관찰되면 칠판에 성인고래 아기고래 구분하여 숫자를 적어뒀다. 하루 종일 바다만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일도, 잠시 하는 취미활동이 아니라면 쉬운 건 아니겠다. 물론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일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경내에서 눈에 띄는 시설로는 백엽상, 국민학교 때 교무실 앞에서 본 이후 처음 조우했다. 기상관측용 온도계 등을 내부에 설치한 하얀 나무집이 잔디밭 위에서 반겨줬는데, 이름이 금방 떠오른 게 신기할 정도였다. 뜰에 서있는 1948년에 만들어진 큼직한 동종과 50 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물탱크도 장관이었다. 오월이라 파피가 길섶을 곱게 장식했는데 사철 색다른 꽃이 피어 등대 주변의 운치를 더해줄 것 같았다. 현재 이곳에는 네 가구가 상주하고 있으며 뭍과 외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섬에 있는 등대가 아니라서 고적감은 한결 덜할 듯했다.



이 등대는 1875년 2월 15일 처음 불을 밝혔다고 한다. 타워 내부에는 여러 유형의 조명기구와 관련자료 및 도서, 등대수 정복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1869년 연근해에서 좌초한 시에라 네바다호의 신문기사가 그림과 함께 실린 사진이 시선 한참 머물게 했다. Piedras Blancas Light Station Association이라는 비영리재단에서 복원 및 보수공사에 쓰일 기금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팀 투어 가이드를 맡은 분도 봉사를 하는 것 같았다. 박물관을 비롯해 각종 사회단체나 시설에서 품위 있게 연세 드신 분들이 봉사활동하는 걸 보면 다시 쳐다보게 된다. 바람직스러운 노후활동이라 동참하고 싶으나 그누메 영어가 발목 잡네. ㅠㅠ

수백 에이커의 경내를 둘러보려면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방 공휴일 제외) 예약을 통해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션 샌루이스 오비스포 ㅡ 은혜의 종소리였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