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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8. 2024

오페라 이중섭 관람 후기

이중섭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이자 한국인이 젤로 좋아하는 그림을 남긴 화가다.

그가 화제로 즐겨 다룬 소와 아이들이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서와 잘 부합되는 까닭에서 일까.

하얀 새를 타고 너울너울 하늘을 나는 아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과일나무, 푸른 바다와 금빛 모래톱에서 따사로운 해풍과 노는 아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리면서 평화로운 낙원을 꿈꾸었던 화가의 소망은 그러나....


피난지 서귀포의 언덕배기 반장집 구석방 하나를 얻어 세 든 이중섭 가족.

네 식구는 한 칸 남짓한 셋방에 얹혀살았다.

이 방에서 복닥거리며 자구리해변에 나가 게를 잡고 한라산 발치에서 나무새 뜯어 식량 삼아야 했던 한 생활이었다.

훗날 말하길 자기 그림에서 게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때 게를 하도 많이 잡아먹어 미안한 심정에서 그렸다지.


그래도 네 식구 오손도손 따습고 정겨웠으나 그 행복은 그리 길지 못했으니 겨우 몇 달 정도 이어졌을 뿐이다.

아이들까지 영양실조로 시난고난 비칠거리자 전시 궁핍을 견디다 못해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처였던 서귀포, 여기서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던 아내 마사코는 살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후 한일 간 국교단절이 된 데다 난리통의 혼란기라 중섭은 함께 갈 수가 없었다.

푸른 물결은 쉼 없이 바다 넘나들며 서귀포와 일본을 오가건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리운 이들은 꿈길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다시 만나서 행복을 그려가리라 꿈꾸었던 이중섭.

그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왜일까?

서귀포 시가 총괄 주최하는 창작오페라 <서귀포의 환상>에서 이중섭을 놓쳤다.

어쩌면 인간 이중섭은 모른 채 신화가 된 화가 이중섭만 알았더라면 오페라에 몰입할 수도 있었을 터.

해에도 이중섭 오페라를 보면서 느꼈던 동일한 혼란이, 올해  가중되는 바람에 무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사십 대 이중섭의 모습이 도대체 아니 찾아져서였다.

오페라 가수도 실제 배역에 준해야 분장을 해서라도 어지간히 주인공 분위기를 내련만.

대체로 성악가들 목소리는 몸통에서 나온다지만 배역과 언밸런스되는 외형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기막힌 목소리의 마리아 칼라스도 거구인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려고 혹독하게 체중 감량을 했다는데.

배역에 맞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아리아를 소화해 내기 위하여.

음악극인 오페라의 구성 요소 중 첫째는 물론  음악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알맞은 의상과 적절한 세트가 갖춰진 무대에서 노래와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 곧 연극적, 미술적, 무용적 요소들이 조화로이 버무려진  종합공연예술인 오페라다.


그렇다면?

둥글넓적한 얼굴에 짧다막한 키, 반면 키다리에다 세련되고 출중외모를 가진 이중섭이 아니던가.

화가 역을 맡은 성악가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새롭게 캐스팅되었다는데 이중섭 배역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최소한 이중섭의 나이만 감안했어도 그 같은  주인공 역 배정 억지라는 걸 알 텐데.

1916년에 태어나 1956년 고작 사십 나이에 눈을 감은 이중섭이니 청년기에서 장년 즈음의 배역이다.

한국동란 발발로 어머니와 작별할 당시의 그는 삼십 대 중반, 한창때인데도 불구하고 오십도 넘은 중년 사내 같다면?

후리후리 키가 크고 멋지게 잘 생긴 그는 배우 이정재와 흡사했다니 대충 짐작이 되는 준수한 모습이겠다.

더구나 그 시기 무렵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창 물오른 좋은 시절에 해당된다.

미도파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도 채 사십이 안된 그였다.

극 중, 경찰이 들이닥쳐 춘화라느니 빨갱이 운운하며 소동을 벌이자 주저앉은 채 쭈그린 그의 모습은 육십도 넘은 늙은이 같았다.

화가의 무력감과 허탈감과 절망감, 끝 모를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듯 고뇌에 차 머리를 감싼 '이중섭'으로의 감정이입이 영 쉽지 않았다.

황폐해진 정신세계일지라도, 심지어 가장으로서 사무치게 그리운 가족을 두고서도 그의 영혼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치열한 예술혼으로 황소 그림을 그린 젊은 이중섭이라면 그렇게 쉽게 맥없이 좌절하고 무너져 내릴 순 없는 일.

비극적인 시대 상황과 자신의 참담한 현실에 좌초 당해 점차 피폐해진 심신이라 끝내  불감당이었던가.

결국 조현병이 깊어지며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중섭.

아마 갈옷 색감의 헐렁한 무대의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얼핏 얼핏 변시지 화백이 겹쳐지는 이유는.

황토와 검정 톤으로 칠해진 화면을 메운 변화백의 절절한 고독감, 문득 사무쳐온 까닭이리라.


 
한국전 발발로 1950년 12월 월남을 한 이중섭 가족은 피난살이 다 그러하듯 모진 가난을 겪어야 했다.

부산 범일동 산복 도로 언덕배기 피란민촌에서 '범일동 풍경'과 '문현동 풍경'을 남긴 부산시대의 이중섭.  

제주도를 떠나온 1951년 12월부터 1953년 말, 통영으로 가기 전 부산에 머물 때인 1952년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그가 살던 초량 판잣집 동네엔 현재 이중섭거리와 마사코 전망대가 들어서 현해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다.


그러나 활성화된 서귀포 이중섭 거리와는 비교 상대가 안 된다.

예향 통영 시대는 이중섭의 르네상스기.


가족과 이별한 후 상실감을 이겨내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1953년부터 1954년까지 예서 거주했다.

'충렬사 풍경', ‘세병관 풍경’, ‘선착장을 바라다본 풍경’ 등 약 30여 점의 작품을 남긴 통영시대에서 진주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진주 출신의 박생광 화백은 54년 5월경에 이중섭과 진주 변두리 절집에서 한 달가량 숙식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경남 진주는 소싸움이 유명하기에 어릴 때부터 소와 친한 박생광.


이중섭은 <진주 붉은 소>를 우정의 표시로 그에게 그려 주었다.  

시인 구상의 주선으로 대구에 올라온 그는 의사인 구상 아내가 개원한 왜관과 대구를 오가며 육 개월 정도를 머물렀다

'구상의 가족'과 '왜관 성당 부근' 및 '동촌 유원지'와 '낙동강 풍경'으로 이중섭의 흔적이 대구 곳곳에도 남아있다.


하지만 중섭을 문화 아이콘으로 띄우지는 못 했다.

소설가 김이석의 집에서 육 개월가량 곁방살이를 하며 열정적으로 미도파 화랑 전시회를 준비했던 누상동시대도 있었다.

1954년 6월 무렵 서울 누상동에 머물며 그는 '그림이 내게 있어서는 나를 말하는 수단밖에 다른 것이 못 되는 것'이라 탄했다 는데.

한국전쟁으로 남한에 내려온 5년여 세월을 부평초처럼 각지를 떠돌며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가 정신 병동에서 행려병자로 눈을 감고 만 그.




서귀포시에서는 탁월한 안목으로 다른 어느 지역보다 먼저 이중섭의 가치를 정확히 읽어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5년 초대 민선 시장이 된 오광협 서귀포시장은  남다른 혜안으로 이중섭 거리를 만들어 불행했던 천재화가의 신화창조에 앞장섰다.

오광협 제9대 서귀포시장은 관광경영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은 분다이 관광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행정력을 펼친 분이다.

전쟁통에 단지 11개월 머문 인연일 뿐인 한 화가.

위에 열거했듯 여러 지역을 정처없이 떠돈 이중섭을 문화 콘텐츠화하여, 관광지 서귀포를 문화관광지로 격상시킨 분이 오광협 시장이다.

 시장은 발 빠르게 이중섭의 서귀포에서의 11개월을 브랜드화시켜 그를 문화 아이콘으로 선점했던 것.

이중섭은 그 후 2016년 창작오페레타로 부활해 발전을 거듭, 여러 차례 공연되며 서귀포 대표 문화 상품으부상하였다.

이중섭 창작오페라 <서귀포의 환상>.


물론 그간 오페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연출가 작곡가를 비롯 스태프진의 노고 컸으리라 여겨진다.

많은 예산을 투입, 몇 해째 오페라를 총괄 기획한 해당 시에서는 미사여구 일색의 호의적인 리뷰만 베껴 홍보에 서기 앞서 객관적이고도 솔직 담백한 비판과 평가에 보다 적극 귀 기울여야 할 게다.


배역 선정 외에도 누상동 화실 배경인 눈 내리는 인왕산, 겨울 하늘에 여름철 구름 두둥실 흘러가는 옥에 티 하나라도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서귀포시청 총괄 담당자는 짚어냈을까?


하여 이미 작고한 오광협 시장의 탁월한 행정  식견과 안목을 더더욱 아쉽게 반추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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