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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4. 2024

만어사, 돌에서 종소리가?


오래전부터 돌의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돌에서 종소리가 난다는 신비로운 그곳.  

부산에서 멀지도 않은 밀양 삼랑진인데 마음과는 달리 여태껏 인연이 닿지를 않았다.

드디어 오늘 만어사를 찾았다.

휴일인데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으시냐 묻기에 만어사, 집에서 과히 머지않은 데라 지체없이 답했다.

한 시간 남짓 거리이나 산으로 접어들며 비좁게 이어진 오르막길 운전이 좀 상그러웠다.

만어산 8부 능선쯤에 자리한 만어사라 한참을 S자 코스로 올라야 하는 산길이었기 때문이다.

칡덩굴 무성한 유월 숲은 한창때 청년처럼 건강한 에너지 흘러넘쳤다.

가끔 나타나는 아늑한 산마을 스쳐가며 길가 뽕나무에서 까맣게 익어가는 오디도 구경했다.

분홍꽃 만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도로변에 너르게 펼쳐진 과수원 햇복숭아 자태도 설핏 지나쳤다.


만어사 주차장에 이르자 바로 옆에 무더기 진 돌 너덜겅이 드러났고  경내에는 벌써 관광객들이 숱하게 오르내렸다.

상상 속의 만어사와는 달리 높직하게 올라앉은 절은 조망권이 훌륭했다.

유명하다는 새벽 운해가 눈에 삼삼 그려졌다.

거창하지 않아 조촐하니 아담스러운 절은 푸른 숲과 돌의 강을 끼고 호젓했으나 사람들로 꽤나 북적댔다.

험하지 않은 산이라 가볍게 트래킹 온 산행 차림과 라이딩 일행도 섞여있고 기도하러 온 이들 역시 있을 터였다.

너나없이 마땅히 돌에서 나는 종소리 궁금해 찾았겠고 신비스러운 돌의  소리 한 번은 들어보고 싶음 직도 하였겠다.

그랬다.

신비롭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불가해한 노릇이었다.

바윗돌에서 타종할 때 나는 금속성 쇳소리인 청아한 종소리가 들린다니.

풍화에 의해 모서리 두루뭉술 모나지 않은 바위는 거무튀튀한 색을 띤 화강암 류다.

땅속 마그마가 지표로 올라와 식으면서 형성된 화강암이 산사태 난 것처럼 널브러져 물결 흐르듯 돌의 강을 이룬 너덜겅.

이곳 암괴는 지질학적으로 고생대 말에서 중생대 초 사이의 퇴적암층인 청석으로 종석(鐘石) 또는 만어석이라 불린다.

여기에는 물고기가 돌로 화했다 하여 만 마리 물고기를 품고 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기록대로 만어산 어산불영(魚山佛影) 경석을 저마다 두드려본다.

큰 바윗덩이는 물고기였다가 이번엔 종이 되어 돌멩이를 들고 가볍게 두드리는 대로 맑은 종소리를 낸다.

모든 바위가 다 종소리 들려주는 건 아니라서 어느 바위는 그저 돌끼리 부딪는 둔탁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스라하게 흘러내린 너덜의 바윗돌마다 통통통 돌로 두드린 흔적들이 허옇게 도드라졌다.

어느 건 더 하얗고 어느 건 희미하고 아예 아무런 표도 나지 않는 바위덩이도 있다.

다른 산록에도 더러 바위가 흘러내린 너덜겅이 형성된 곳들이 있긴 하다.

미처 타지의 너덜겅을 두드려본 적 없으니 모르긴 몰라도, 분명 이곳만이 유일하게 종소리 나길래 이를 찾는 발길 끊이지 않을 듯.

하긴 규모 자그마한 절집임에도 너덜겅 시작점에 독특한 복층 구조의 미륵전이 있고 안에 모셔진 미륵부처님은 자연석 바위다.

미래불인 미륵불은 민초들의 토착신앙 대상인 바, 먼 미래보다는 지금 바로 눈앞에서 영검스러운 현상을 접할 수 있다면?


비손 하듯 지극정성 바쳐 기도하게 하는 '소원돌'도 돌치고는 아주아주 신기했다.

대웅전 앞 고목 아래 바윗전에 놓인 둥그런 돌, 일단 먼저 시험 삼아 들어보았는데 꿈쩍도 않던 돌이다.

이번엔 소원을 아뢴 다음 들어본 결과, 신기하게도 누군 거뜬히 들어 올리고 누군 용을 써도 못 든다.

일행 넷이 차례로 해봤는데 각양각색.

번쩍 들어 올리는가 하면 두 번이나 해본 내 경우, 바닥에서 자석이 당기 듯한 느낌만 들었다.

진지하게 합장 기도하고 둥근돌을 양손으로 감싸 안고는 힘껏 들어보았으나 희한스레 돌은 요지부동.

소원하는 바가 통하지 않을 경우는 돌이 쉽게 들리나 기도가 이뤄지는 사람은 돌이 바위에 딱 붙어있게 된단다.

바위와 돌 사이에 강한 자력 같은 게 작용하는 듯 아주 묘한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지긴 했다.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묘한 일 또는 현상을 접하면 신비하다고 한다.

이해불가인 현상을 직접 체험하고 나면 모두들 놀라운 일이라 감탄하며 소원돌 앞을 쉬 떠나지 못했다.

야바위 같은 속임수가 횡행하는 요지경 세상이라 뭐든 깊이 신뢰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신비스럽게 여겨지던 소원돌.

만어사 주 상징물은 이렇듯 어떤 인위적 조형물이 아니라 종소리를 들려주는 바위이거나 소원을 비는 영험한 자연석들이다.

해서 대웅전 뜰을 지키는 보물 제466호 삼층석탑도 관심도나 존재감이 영 떨어진다.

만어사를 가야국 수로왕이 창건했다니 얼마나 긴 세월 저 자리를 지켰을지 모를 역사성까지 존중받지 못하는 석탑.

탑 형식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에 조성됐다는 단정한 삼층 석탑뿐인가.


부처님 모신 대웅전마저 진기한 돌들에 밀려난 감마저 든다.  


바윗돌이 더 신통스러워 절을 찾다니, 주객이 전도된 만어사 위상,


어딜 가나 천편일률적인 절집인데 반해 만어사는 신앙과 역사와 전설로 무궁한 얘기감 선사하는 종합선물 세트 같았다.

오래 별러서 찾아온 만어사는 기대 이상의 선물로 만족감 충분하게 채워주었다.

위치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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