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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5. 2024

혼밥시대

간밤에 부산친구와 오래 통화를 나눴다. 슬하의 두 아들 중 장남은 대학 다니는 남매를 두었으나 작은아들은 미혼으로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Y대를 나온 유학파로 좋은 집안에 안정된 직장을 가진 심신 건강한, 말하자면 일등 신랑감이다. 인물이 빠지나, 재산이 나, 항공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거추장스럽다며 마다하니 부모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친구 말에 미투요! 번쩍 오른손을 들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니까. 오십을 코앞에 둔 아들이라 신경 쓰일 법 하련만 친구는 별반 개의치도 않는다. 오히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다 가는 것도 괜찮지 뭐~ 쿨하게 그런다. 요새는 남자 혼자 지내는데 불편한 점 전혀 없는 세상이라면서. 어쩌다 서울 아들집에 올라가 보면 무엇 하나 챙겨줄 거 없이 깔끔하게 해 놓고 잘 지낸단다. 먼 훗날 언젠가를 대비, 세를 준 강남 아파트와 직장 근처 오피스텔은 진작에 조카 명의로 서류상 재산정리까지 마쳤더라고도 했다.



자발적으로 택한 '나 홀로 삶'을 즐기며 친구 아들은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반면 많은 이들이 독신의 삶을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만 인식해 왔던 게 사실이다. 외따로 혼자 지내는 고적하고 소외된 삶일 거라고 섣불리 단정 짓기도 한다. 허나 삶을 지혜롭게 가꾸며 사는 본인자신은 정작 소외감, 고독 같은 걸 느낄 짬이 없다. 다양한 사회활동이나 스포츠에 참여하며 대화 통하는 친구들과 유대 이어가니 소통부재라는 우려는 기우일 뿐. 혼자 즐길 수 있는 놀이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어 나름대로 충족감을 느끼며 지낸다. 진작부터 하고 싶던 분야의 학문을 전문적으로 파들어간다거나 관심사의 폭을 넓혀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보는 것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실제로 혼자 있을 때라야 집중력이 보다 높아져 창작활동 등에서는 능률이 오른다.



싱글족이나 나홀로족을 달리 표현하는 신조어 혼밥, 혼술은 혼자 밥 먹고 혼자 술마신다는 말. 이상스레 내 또래 친구들은 식당에 혼자 들어가서 식사한 적이 거의 없을뿐더러 그럴 용기도 없다고 한다. 밥 사 먹는데 무슨 용기까지가 필요하냐고 되물으면 처량해 보이는 거 같아 내키지 않는다고. 그래서인지 심리학자들은 혼자 밥 먹길 겁내는 이들을 일컫는 ‘Solomangarephobia’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을 정도다. 싱글족은 일명 Cocoon족, 그러나 고치에 싸인 은둔형 외톨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코쿤족은 인간 누구나 그렇듯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타인과 연대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은 여러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안 할 따름인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 지내며 혼자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점점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으며 많아지는 추세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선입견 갖고 곁눈질한다거나 마치 감춰둔 신체적 문제라도 있는 양 수상쩍은 시선으로 탐색할 일이 아니다. 얼마나 외로울까 지레 남의 걱정할 까닭이 없는, 현대인의 생활패턴 중 하나로 공고히 자리 잡혀가고 있다. 또한 점차 긍정적, 주체적 개념으로 싱글족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도 생겼다.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타인의 간섭 없이 내 기준에 따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살기 위해서다. 그들은 인연의 무게에 치이지 않길 원한다. 나아가 자기 선택에 후회 없이 적극적으로 살면서 매임 없는 자유를 즐기고자 한다. '우리'가 아닌 '나' 중심으로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집하며 스스로를 관리 통제하면서. 그들은 자존감이 높아 자신을 옹골찬 인격체로 일으켜 세우고자 대부분 치열하게 산다. 구질구질한 건 딱 질색인 그들이다. 깔끔하고 홀가분하게, 그래서 이기적이라고 하는지도.



종족번식의 본능에 집착하는 남성들조차 결혼울 계약이라 할진대. 결혼제도란 족쇄에 묶여가며 굳이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려는 현상이 연방 확산되고 있다. 한편 능력 갖춘 여성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자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 독립하는 당당한 골드미스가 흔해졌다. 이제 그들을 별 볼 일 없는 올드미스니 한물 간 노총각이라 부르며 안쓰러이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신인 미혼남, 독신인 미혼녀는 특히 솔직하게 속내 털어놓는 기혼 친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어 적극 지지를 받는다. 하늘의 섭리에 반한다는 지탄이야 일찍이 비구승, 신부님, 수녀님 제도를 통해 되고 수락받은 일 아닌가. 아무튼 1인 가정이 늘면서 인구수가 불어나지 않아 고민하는 나라가 한둘 아니게 생겼다.



으뜸 복지국가인 스톡홀름의 일인가구 비율은 60%에 달한다는 보고다. 한국만 해도 통계청 조사 결과 1인 가구가 네 가구 중 한집일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2030년 이전 세 가구 가운데 한 가구는 일인가구가 될 것이라 예측하는 기사도 나왔다. 더 많은 노동력을 가질수록 유리한 농경시대라면 필요에 의한 대가족개념이 우세하겠으나 지금은 4차 산업시대다. 확장추세인 싱글족은 ‘싱글슈머(single+consumer)’라는 용어를 만들며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이다. 유통가에선 작은 거주공간에 알맞은 소형 가구와 미니 전자제품이 인기 상종가를 치며 싱글푸드 코너와 소포장 상품이 각광받는 세월이다. 그에 따라 비즈니스계에서는 벌써부터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이 쏟아져 나오는 판이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사자나 늑대처럼 내 삶의 온전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뭐든 혼자 먹기 시작하라”고 진작에 선언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와 궤을 같이해 온 공동체 사회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사회구성원 속에 끼어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끼도록 프로그램화되어 버린 탓일까. 그런 연유로 사람만이 아니라 하다못해 토마토조차 어떤 형태로 건 가지와 연결되어 있는 동안은 자신을 떨어진 열매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줄기에 붙은 토마토는 낱개 토마토보다 더 오래 신선도를 유지한다. 싹이 난 양파를 물컵에 담가놓으면 파랗게 잎이 웃자라며 뿌리 무성히 내린다. 주변 환경을 땅속으로 착각한 셈이다. 바나나를 바나나 걸이에 걸어 두면 바닥에 둔 것보다 더 오래  싱싱하게 보존된다고 한다. 아직도 자신이 본체에 매달려 있는 줄로 여기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끈 떨어진 연 꼴이 되는 물체와는 일단 근본부터가 다르긴 다른가보다.



우주에 던져진 생명 자체는 삶의 격전장에 홀로 서있으므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인간 역시도 너나없이 다 외로운 존재다. 어차피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낀다잖는가. 둘이 하나 되는 결혼이지만 모두가 죽는 날까지 한결같은 행복 누리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의좋은 부부일지라도 살면서 한번이라도 옆구리 시린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리 없다. 함께 있어도 문득 낯선 타인같이 여겨지며 허전한 기운 같은 게 감돈 적 전혀 없었을까. 더구나 백세시대에 이르러 ‘혼자되는 것’은 남녀 구분 없이 언젠가 누구나 맞닥뜨려질 엄연한 현실로 다가서는 때가 온다. 아무리 정 남다른 부부라도 한날한시에 손잡고 이승을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 人자는 두 발로 서있는 사람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다. 또 다른 비유도 있다. 작대기를 땅에 묻지 않는 이상은 작대기끼리 기대놓아야만이 서있을 수 있다. 사람 人자의 형상이 바로 이런 모습을 본땄다는 설에 근거,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그러나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으므로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 상호작용을 하며 관계 속에 살아가되 어디까지나 각자 고유의 객체로써 존재하는 개인. 시대가 바뀌면서 혼자 사는 1인 가구 독신생활이 딱해 보이는 흉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 시대. 적령기의 결혼은 이제 필수 통과의례가 아닌 자유로운 선택사항이 아닐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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