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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5. 2024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바나나부터 꺼내 들고 왔다. 출출하거나 입이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개수대에 물을 가득 받은 다음 바나나를 넣어봤다. 무게가 있으니 분명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다. 바나나는 정말 물에 둥둥 떴다. 의외였다. 그렇다면 오랑우탄이 조난당한 태평양 상에서 바나나 뭉치를 타고 다니다 구명보트에 올라탔다는 소설 내용이 맞는군. 영화에선 놓친 부분인데 책을 읽으므로 얻게 된 가외 소득이었다. 하긴 그 정도라면 소설 얼개를 짜며 장치 설정에 앞서 제반 자료 준비부터 꼼꼼스레 했겠지만.


휴가철, 부담 없는 읽을거리만 골라서 산에 짊어지고 간 몇 권의 책들. <월든>과 <광장> 외의 세 권은 우연이도 근자 들어 영화로 먼저 접했다. 영화가 책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 경우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정도였다. 시청각 기법을 총동원시킨 종합예술임에도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어쩌다 원작 이상의 걸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성공작은 거의 드문 편이다. 영화로 제작된 소설 대부분은 원작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탁월한 감독마저 주저앉힌다. 기실, 한 자씩 활자를 읽어내리며 행간의 의미를 음미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세계는 더 깊은 감흥과 감명을 받게 된다. 그렇듯 소설은 세세한 표현들이 살아서 절묘하게 조응하는가 하면 소설이야말로 보다 디테일하게 전체를 조명해 주지 않던가.


영화를 만화책 보듯 재밌게 본 터라 들고 간 책, 읽는 내내 줄곧 킬킬대게 해 준 백 세 노인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파이 이야기> 먼저. 최대한 간추리면 벵골 호랑이와 함께 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7개월 넘게 망망대해를 표류한 소년 이야기다. 일단 작가는 타고난 대단한 재담가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한정된 공간 속 고난의 하루하루를 그러나 유려하고 섬세하고 유장하게 풀어낸다. 그의 문채는 화려하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란 단어는 거의 다 동원된 듯 풍부한 어휘력에 놀란다. 문장은 간결하다. 짧은 호흡의 단문체라 술술 읽어내리게 된다. 상상력이 무궁무진하다. 해서 상황마다 독특하고 낯설고 진기하다. 자연히 흡인력 끝내준다.



이미 잘 알려진 영화라 훤한 스토리 전개이지만 책장을 다 넘길 때까지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게 했다. 내용 자체가 하도 황당무계한 데다 지극히 비현실적이라서 3D 효과를 동원한 영상 기법에 놀아났나 싶어 그걸 확인하고자 고른 책인데 선택은 주효했다. 더구나 영화를 본 연후에 책을 읽으니 어떤 상황이나 한결같이 생생하게 이미지가 겹쳐졌다. 140쪽에서 일부를 따온 문장은 이러하다.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몸은 노에 매달려 있고,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있고,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몸 위로 쏟아졌다." 그 표현을 접하면 눈앞에 선명하게 그림이 떠올랐고 모든 게 또렷이 제 형체를 드러냈다. 뭇 단어마다 영상들이 고스란히 깨어나 포개졌다. 책 읽기가 한층 재미지고 흥겹기까지 했다.

인도 폰티체리에서 살던 16살 소년의 이름은 무리수를 뜻하는 파이다. 아버지가 운영난으로 가업인 동물원을 접고 파이네 식구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 항해 도중 수심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서 배가 침몰되며 졸지에 가족 모두를 잃고 만다. 작은 구명보트에 오른 파이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것도 벵골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그 와중에도 파이는 날마다의 일과를 기록하는 일과 신께 기도드리는 일을 잊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지만 그 경계는 실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혼미 상태에서 환상을 보았거나 비몽사몽에 빠져 헛것을 보았음직한 내용이 연속되니까. 이를테면 미어캣이 사는 식인 섬, 아사 직전에 이르러  잔혹한 본능에 따른 카니발리즘의 상징이라는 식인 섬도 괴이쩍긴 마찬가지. 허나 이미 그땐 파이가 오랜 표류 생활에 지쳐 거의 죽음에 이를 만큼 탈진한 상태였다. 하긴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뛰어난 작가는 허구도 사실처럼 윤색해 내는 숙련된 솜씨의 소유자 아닌가.



책 보다 먼저 본 영화는 얼핏 판타지물이나 어드벤처물 같았다. 할리우드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양껏 활용해 펼쳐 보인 3D 영상은 시선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현란하고 영롱하고 환상적이고 경이로웠다. 감독은 영상미를 충분히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만든 영화라면 일찍이 <결혼 피로연><음식 남녀><색, 계>를 보았고 할리우드에 진출한 뒤 찍은 <센스, 센서빌리티>까지 봤지만 그와는 결이 다른 이런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동양인인 그가? 피비린내 나는 살상과 하늘에 닿고자 하는 영성이 수시로 교차되는, 참혹하고 신비스러운 세계를 하나로 담아내는 일. 오히려 오리엔탈리즘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리안이라서 판타지와 현실 사이를 자재로이 넘나들 수 있었을지도. 해서 생존과 죽음, 이성과 본능, 신과 종교 문제를 무리 없이 다룰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영화는 끔찍스러운 장면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살육의 참상과 질곡의 삶을 견디는 고통이 혼재된 절망의 생존기에 다름 아닌 무대. 절망 속에서 난바다를 표류할망정 펼쳐지는 태평양의 역동적인 풍광은 격정적이고 황홀했다. 사방이 파란색 물결과 흰 파도뿐인 대양 한가운데 뜬 구명보트와 뗏목. 수채화 그림같이 아련한 해 뜰 녘 바다. 날치 떼가 상어에 쫓겨 화살촉처럼 수면 위로 씽씽 날아오르는 정경. 폭풍우 속에서 신을 부르며 오열하는 주인공. 수천의 물고기 떼가 발하는 밤바다의 인광. 범고래가 일으키는 폭포 같은 물보라. 바다거북을 잡다가 빠져든 신비로운 바닷속 풍광은 차라리 몽환적이었다.



누군가는 이 가운데서 믿음과 희망을 짚어내고 의미를 찾아내 심도 있게 인생을 관조하기도 한다. 차원 높은 종교적 성찰을 하기도 하고 철학적 사유를 하며 사랑과 공존에 대한 얘기들도 한다. 파이는 원래 채식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살아남기 위해 물고기건 바다거북이건 새건 닥치는 대로 잡아 골수까지 먹어치웠다. 본능대로 사는 야생동물이나 진배없어진 파이. 빈사상태로 멕시코 해안에 닿았을 때 생사를 같이 한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뒤도 안 돌아보고 숲으로 사라졌다. 본능이 떠나자 비로소 이성이 되돌아왔음을 암시하는 장치이리라. 엉성하고 싱거운 맺음말 같지만 <파이 이야기> 영화와 책을 보고 난 마무리는 역자 후기 일부로 대신해야겠다. "파이가 들려주는 독특한 삶의 여정에 귀 기울이면서,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을 치유하고 싶다. 누구나 빠져나가기 힘든 두려움의 터널 속에 있는 것을. 파이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을 잊지 말라고, 신을 잃지 말라고 가르쳐 준다." 그렇다. 파이 이야기는 힘겨운 일상의 파도를 타느라 지친 우리에게 주는 위로에 다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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