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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7. 2024

아름다운 힘

초대받은 교우 집에 가보니 꽃대궐이 따로 없다. 진주홍 능소화 휘늘어져있고 자귀나무꽃 부채춤사위가 우리를 환대한다. 곧이어 배롱나무꽃도 벙글 것이다. 게다가 울타리 둘레에는 반가운 꽃이 피어있다. 무궁화다. 하와이 무궁화라 불리는 화려한 히비스커스가 아니라 조신한 ‘우리’ 무궁화다. 흰색도 있고 청보라도 있다. 저절로 끌리는 피붙이의 당김 같은 것인가. 무궁화에 건네지는 눈길이 그윽하니 유정하다. 나라꽃이라서 사뭇 각별한 것이다.



무궁화와의 만남만이 아니다. 여기 살다 보니 미국 땅에 뿌리내려 아름다이 꽃 피운 교민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일인 양 뿌듯해지곤 한다. 얼마 전 젊은 나이로 에디슨 시장에 당선된 최준희 씨, 워싱턴 주 상원 의원인 신호범 씨. 하버드 대학의 고홍주 학장이나 프린스턴 대학의 이창래 교수처럼 널리 알려진 아름드리 재목만이랴. 학계, 예술계, 스포츠 분야 두루 각각의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굵직한 인재들. 한국인임에 자긍심을 갖게 하는 그들 모두는 우리의 희망이며 이상의 푯대인 귀한 존재다.



졸지에 IMF 환란을 겪으며 온 국민이 허탈감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그 의기소침에서 건져 준 박찬호, 박세리의 쾌거를 기억한다. 그처럼 오늘도 그라운드에서 맹활약하는 운동선수들과 필드를 제패하다시피 하는 골프 낭자군의 힘은 아름답다. 그뿐 아니라 별처럼 세계 정상에서 빛나는 음악가들이 포진하고 있어 저간의 어수선한 국내 문제로 잔뜩 위축된 가슴을 펴게 해 준다.



영국으로의 출국 준비를 하는 친구 아들이 엊그제 일터를 다녀갔다. 그가 맡긴 턱시도를 매만지는 손길에 성심이 실리고 내심 기도가 바쳐졌다. 그럴 수밖에. 미국 시민이지만 한국인인 그가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어 옥스퍼드로 공부하러 가는 것이다. 학창 시절 클린턴도 수혜자였다는 로즈 장학생은 단순한 수재 증명서가 아니라 그 취지대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를 육성하려는 것. 얼마나 대견하고 장한 일인가. 내 자녀 일처럼 자랑스러워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는 시카고 대학 재학 당시,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보잘것없이 사는 남루한 삶을 보듬으며 봉사활동을 해온 갸륵한 젊은이다. 작년 여름 아프리카 여행 중에도 경비를 아껴 헐벗은 현지 어린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며 이웃사랑을 실천해 온 아름다운 청년이다.



지난주 성당에서 감사 미사를 봉헌 올린 한 교우가 있었다. 그 댁 큰 자제가 하버드 의대에서 강의를 맡게 됐다는 소식에 내 일처럼 축하하며 덕담을 나눴다. 자녀의 음악 교육을 위해 이민을 왔다는 또 한 분은 역경을 헤치고 명분에 걸맞게 아드님을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단원으로 키웠다. 자기 자식 훌륭히 키우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 일이다. 흔히 나이 들수록 돈이 힘이라고 하나 반듯하게 자란 자식이 무엇보다 큰 힘. 쉽지 않은 이민살이 척박한 환경에서 헌신적으로 자녀 뒷바라지를 하여 선망받는 위치에 서도록 성공시킨 분들은 한결되이 겸손하다. 자식 위해 한 일이라고는 그저 따뜻한 식사 챙겨준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루어 주신 분은 하느님, 그래서 더더욱 감사드린다고 한다.



미국에 몇 년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기독교 정신이 저절로 스며들게 마련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바탕에 깔린 것이 성서적 신앙에 기초한 기독교 정신, 그것이 모든 가치관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 중 명문인 필립스 아카데미는 여러 대통령을 비롯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을 수없이 배출시킨 이름난 학교다. 그곳의 건학 이념이 "Not for Self" 곧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이라 한다. 즉 크리스천답게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단군 어른의 뜻이나 표현상의 차이뿐 결국 같은 맥락이다.



무궁화 희고 붉은 꽃잎에 어룽지는 대한민국의 현실. 개발도상국에서 이제는 열한 번째의 무역대국으로 부상했는가 하면 IT 강국이다. 반면 핵에 볼모 잡힌 한반도, 좌경화가 염려되는 불안한 사회, 혐오스러운 정치판,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들. 그나마 위안이라면 각 분야에서 연구에 혹은 개발에 또는 개척에 앞장서는 고급 두뇌들, 뛰어난 인재들이 있음으로 하여 희망이 있는 한국. 기실 한국의 힘은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에서 나오고 빛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 뿜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맛 나게 기운 북돋아 주는 박주영 박지성 선수 발군의 실력에, 객석을 압도하는 사라장의 연주로 잃었던 힘을 되찾기도 하는 우리. 아직도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가 있다.



그 한편 연말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교수 사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해를 끌며 갑론을박 끝없는 갈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양상을 지켜보자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주춤했던 줄기세포 연구가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데이터 조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좌초당한 황우석 호. 그러나 황 박사 팀이 만든 줄기세포를 분양받아 하버드대학에서 재검정 과정을 거친 결과 위대한 역사적 연구성과로 세계적 업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처녀생식 기술을 통해 환자 맞춤형, 환자 특정형 배아줄기세포를 수립할 수 있으므로 불치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으며 난자만으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어 윤리적 논란에서도 비껴갈 수 있다는 것이다.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는 완벽하다는 OK 사인이 내려져 발사됐다. 그러나 기대에 차 지켜보던 뭇 군중들의 바로 눈앞에서 우주선은 폭발하고 말았다. 0.28인치의 ’ 오링’이라는 작은 부품의 결함이 뒤늦게 발견됐다. 사고 후였다. 과학의 발전 과정은 수없이 만나는 실패와 오류를 뛰어넘는 과정이 아니던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깊었던 황우석 신화는 희망이 없는 실의의 시대, 꿈을 갖고 기대에 부풀어 열광했던 우리 모두가 빚어낸 환상이다. 따라서 모두가 총체적으로 자성해야 할 일. 특히 과정이 무시된 채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성과지상주의도 문제이지만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속성도 이참에 털어버려야 할 악습이다. 물론 공인으로서의 도덕성 훼손은 치명적 결함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아니잖은가. 매도만이 능사가 아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밝히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 주는 풍토. 그리하여 다시금 기회를 주어 축적된 힘을 무위로 흘려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떤 힘도 하루아침에 키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2005.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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