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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18. 2024

하늘 끝, 모뉴먼트 밸리

나는 땅 끝까지 가 보았네 /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나바호 족의 노래다.

일체의 물질 모두 이것과 저것, 나와 너는 따로따로 인 별개가 아니다.

보이지 않으나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서로 작용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의존하는 관계인 상호유기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온 나바호 부족은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 바람결에 실려오는 영혼의 소리 같은 바람의 언어를 가졌다고 한다.

바람의 소리 따라 찾아온 이곳.


누생의 어느 적 인연으로 그들은 한여름에 하늘 끝 붉은 대지로 나를 불렀는가.



여기가 거기구나.  


흙먼지 일구며 황야를 내달리던 인디언들의 말발굽소리가 들릴듯한 곳.

막막한 하늘 끝에 고적하게 서있는 대표적 서부 풍경으로 머리에 입력되어 있는 그곳,


 바로 여기가 거기구나.

서부개척사와 인디언의 비극이 맞물린 황량한 장소, 비로소 가장 서부다운 곳에 이르렀다.

애리조나와 경계를 맞댄 유타의 끝자락이다.

163번을 타고 유타 남동부를 한없이 내리 달리다 보면 저 멀리 아주 낯익은 진입로를 만나게 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외에 말보로 광고사진으로도 친숙해진 길.


가도 가도 끝없을 것 같은 황톳길에서 잠시 쉼표를 찍게 해주는 자리다.

그러나 서부다이 별로 상냥스럽지 않은 데다 나바호족의 관광자원 활용방식은 투박하고 운영은 미숙해 보인다.

입구 안내판부터 허술하여 잠시 헷갈리게 만들더니 비지터센터는 물론 화장실 찾기야말로 술래잡기다.  


 1860년대 나바호족은 아메리카 합중국과의 전투에 패해 뉴멕시코주의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다.

1968년 협상에서 그들은 세 곳의 거주지를 제시받는다.


동부의 나름 비옥한 땅과 수용소 인근의 목초지와 모뉴먼트 밸리였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붉은 땅을 선택해 560여㎞를 걸어서 부족의 땅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들만의  자치권을 인정받아 미국 내 작은 국가형식으로  운영되는 나바호 정부(Navajo Nation)를 이루게 된다.

정식 명칭은 모뉴먼트 밸리 나바호 부족 공원(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이다.

모뉴먼트란 유적이나 유물로 기릴만한 기념비적인 거대 바위를 뜻한다.

붉게 펼쳐진 대평원, 광활한 허허벌판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기기묘묘한 사암층의 첨탑들.

과연 장관이긴 하나 푸른 기운이라곤 사방을 둘러봐도 겨우 바닥에 드문드문 깔려있을 뿐. 


농경지나 나무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척박한 땅이다.

연간 강우량이 20cm에 불과한 절대 사막,


 그늘 한점 없이 땡볕 이글대는 열기에다 온통 붉은 대지라 더 덥게 느껴진다.

일출 때와 일몰이면 모뉴먼트 밸리의 붉은색 바위는 더욱 신령스럽다 한다.

특히 해뜰 무렵은 아주 환상적이라지만 우리에게 할애된 시간은 한낮 잠시.


밸리가 드러나며 붉은 대지에 정겹게  마주한 벙어리장갑 한쌍에 웅장하게 솟아 압도하듯 다가서는 Merrick butte가 반긴다.

이어지는 코끼리 형상과 세 자매란 이름의 W 자 선명한 암봉이 기다린다.

원주민들이 바람의 계곡이라 부른다는 이곳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죤 포드 포인트다.

시끌벅적한 인파도 그러하고 장사꾼의 울긋불긋 좌판까지 마치 장터 같다.

고전영화 <역마차><황색 리번><수색자><백 투더 퓨처><인디아나 죤스>의 촬영지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모뉴먼트 밸리다.

서부영화를 찍기에 최적지라며 죤 포드 감독을 설득해 이곳으로 오게 한 사람이 있었다.

영화 <역마차>를 통해 서부영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게 한 해리 굴딩 부부의 역할은 잊어서 안되리라.

나바호족의 오늘이 이만큼이나마 흥성할 수 있게 된 배경이기도 한 까닭이다.  

보다 근원적인 수혜는 대자연의 정령이 베풀었겠지만.


모뉴먼트 밸리 전체를 아우르는 아티스트 포인트로 가면서 만난 나눔의 성지(Spearhead Mesa)와 비의 신성지(Rain God Mesa), 천둥 신성지(Thunderbird Mesa) 등등.


 이름에서부터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세계가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랴,


끊임없이 생멸하며 변화하는 우주.


이 세상에 시간적으로 영원한  그 무엇이 있겠는가.


생긴 즉 소멸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두가 잠시 혹은 한동안 머물다 가뭇없이 사라지게 마련 아닌가.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니 인디언사 역시 흥망성쇠의 순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  


우주적 큰 틀 안에 넣고 보면 당연한 귀결이요 윤회는 거듭되리니 이쯤에서 그만 연민을 거두어도 좋으리.

2억 7천만 년 전의 지층이 풍화, 침식되며 독특한 지형으로 형성되었다는 모뉴먼트 밸리.  


매 순간 간단없이 이어지는 풍화작용에 의해  오늘의 모뉴먼트는 단 오늘뿐인 풍경을 간직할 뿐이리라.


약한 지반이 숱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비와 모래바람에 깎여 뼈만 남으며 생성된 모뉴먼트라 하니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른 모습이리라.


눈에 쉬 띄지는 않겠지만 어느 귀퉁이인가가 아주 조금씩 이지러지며 황토로 변해있을 시 분명하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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