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n 18. 2024

도시의 빛과 그늘, 센트럴 라이브러리

서책 향기와 홈리스

모처럼 화창한 날씨라 대처(LA)로 나갔다.


몇몇 날 내린 비로 말끔하게 청소된 Los Angeles 시가는 산뜻했다.

로스앤젤레스 발상지인 올베라 스트리트.

그 유서 깊은 사적지에서 출발해 발전해 나가며 형성된 LA 다운타운은 첨단의 현대식 마천루가 죽순처럼 솟은 행정, 금융, 문화의 집결지이다.

다운타운 중심지인 그랜드 애비뉴와 플라워 스트리트 사이 630 West 5th Street에 있는 중앙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의 정식 명칭은 Los Angeles Public Library, Central Library다.

도서대출 목적이 아니라 LA의 핵심 랜드마크 중의 하나라는 소문만 들었던 건물 구경을 하러 갔다.

구경이라면 쌈구경, 불구경 외엔 얼씨구나 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위인이라 냉큼 친구를 따라나선 길이다.

이번은 아무 준비 없이 각중에 후다닥 가게 됐지만 다음엔 한나절 충분한 시간을 내어, 보고 싶은 한국 책들 러보고 올까.


그러나 과연?



 
미국 도서관을 비롯 모든 도서관의 설립 목적은 시민들의 커뮤니티 센터로서 정보를 제공하고 지식을 깨우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책을 보고 빌리는 곳으로써의 영역을 넘어, 여러 이슈에 따른 커뮤니티의 미팅도 열린다.

수시로 각종 교양 강좌나 문화행사도 마련되며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Central Library는 가장 규모가 큰 LA 시립도서관이면서 LA 시의 67개 시립도서관을 관할하는 중앙 행정기관의 역할을 담당한다.

250만 권에 이르는 다양한 도서와 정기 간행물을 소장한, 미국 내에서 세 번째로 큰 공공 도서관인 Central Library다.

사회적, 교육적, 문화적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곳 역시 화랑도 있고 250석 규모의 강당도 있어 LA 뮤직센터와 함께 LA의 종합 문화센터 역할을 한다.



 Central Library는 1926년 Bertram Grosvenor Goodhue의 설계로 230만 달러를 들여 신축했다.

공공 도서관 건물이라기보다 박물관 같은 외관을 지닌 건물은 '배움의 빛'이라는 주제로 비잔틴, 이집트, 로마의 웅장한 건축 요소를 가미했다.

지붕을 장식한 건축 조각가인 Lee Lawrie의 조각술이 조화를 이뤄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다.

건축 주제 그대로 지성과 학문의 빛이 아우라처럼 뿜어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지붕 꼭대기가 이채롭다.

푸른 색상 세라믹 모자이크는 뭇 마천루의 위용을 단숨에 제압시킨다.

 

1926년에 개관한 중앙도서관은 67년 LA 시 문화재 관리국으로부터 시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1970년에는 사적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1986년 방화로 인한 화재가 연이어 발생, LA 시 정부는 물론 캘리포니아 주 정부까지 비상이 걸렸었다.  

그도 그럴 것이 Central Library는 캘리포니아의 브레인으로 불릴 정도의 엄청난 서적과 각종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도서관의 소장품 중 20%에 해당하는 약 40만 권의 장서가 화재 시 물과 연기 피해를 입었다.

폐관된 도서관을 살리려는 주정부와 시정부의 노력 및 주민들의 전폭적 후원으로 7년간 복구작업을 거쳐 93년 화재 전의 두 배 규모로 재개관했다.



 

도서관은 지상 4층, 지하 4층 규모에, 층별로 주제에 따라 분류돼 있다.

각종 도서 외에 잡지, 신문 등 정기 간행물만 1만여 종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John Feathers 씨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수백 장에 이르는 지도를 기증함으로, 소장케 된 진귀한 지도 컬렉션은 이곳의 자랑이다.

300만 건 이상의 역사적인 사진이 담긴 로스앤젤레스 사진 모음집이 보관되어 있기도 하다.

책 이외에도 음악 시디나 DVD, 비디오 자료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Central Library의 외국어 서적 보유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이민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Los Angeles라 이곳에서는 공식 언어인 영어 외에도 다양한 언어권의 책을 접할 수 있다.

현재 International Language 실에 마련돼 있는 한국어 서적들도 만여 권이 넘는다.

엘에이 공립 도서관의 한국어 도서는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Pio Pico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개의 분관에 나누어 비치되어 있다.

 대출을 원하는 한국어 도서가 있다면 인터넷으로 책을 예약해서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도서관 분점에서 수령할 수 있는 편의도 제공한다.


카운티 주민이라면 물론 누구나 무료로 도서 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Children’s Literature Department에는 25만여 권의 장서를 비치, 미국에서 출판된 어린이용 서적 거의가 망라돼 있어 역시 국내 최대 규모다.

책상도 책장도 모두 나지막한 이곳은 어린이들이 책만 읽고 가는 게 아니라 놀이터로서의 역할도 하며 인형극을 하는 작은 무대도 준비되어 있다.

학생들을 위한 장소인 Teens cape는 엄청난 규모로, 학습용 컴퓨터 십여 대가 대기하고 있어 자료 검색을 하며 숙제도 할 수 있다.

각종 우수 자료가 비치돼 있고 교육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어 학교에서 이곳을 정기 학습 장소로 이용을 한다.

각 데스크 위에 개인 스탠드 시설을 해놓은 것이, 이용자를 위한 퍽 세심한 배려 같았다.

 

건물은 물론 각층마다 유명 아티스트들이 제작한 벽화와 조각품들로 내부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마치 뮤지엄 같은 분위기로 이용객들을 압도한다.


건물 외양은 중후하고 고풍스러운데 반해 일단 도서관 내부로 들어서면 현대적 감각이 곳곳에 스며있다.

특히 도심 한복판 빌딩 숲에 싸인 지역이라 공간 확보가 어렵자 건물 지하를 깊이 파면서 도서관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렇게 지하 4층까지가 하나로 관통돼 지상층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내리며 유리 지붕의 자연채광을 오롯이 받아들인다.


하늘의 빛이 땅속 깊숙하게 파고들도록 설계를 한, 창의적인 지하 이용 사례를 보여주는 곳이라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2층 중앙홀 안에 설치되어 있는 지구본이 든 대형 샹들리에는 셔먼 스테이 텀의 작품으로 각각 자연계, 천상계, 과학기술계를 상징한다.

지구본 둘레에는 개관 시 48개 주를 상징하는 전구가 원을 이루어 환하게 불을 밝힌다.

Dean Cornwell이 캘리포니아의 역사를 그려 넣은 원형홀의 사방 벽화는 5년에 걸쳐 제작되었다고.

 Lawrence Halprin이 설계한 공원이 있는 대규모의 지하 주차장 시설 역시 장관이다.

플라워 스트리트에 있는 도서관 입구에는 분수와 조각, 벤치, 정원 등이 알맞게 배치되어 있어 골고루 둘러보는 재미도 누려본다.

복판길 좌우 층계에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아랍어, 히브리어, 숫자, 음표 등 스무 개가 넘는 언어와 기호 체계를 새긴 계단도 눈여겨볼 만하다.

첫 계단에 음각된 용비어천가 한글 고어체 조형미는 단연 돋보였다.

 


도서관은 예로부터 지식을 축적하는 저장소였으며 한 시대 문명을 일궈내는 중심축이었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에 가면 저절로 지식인이 될 것 같았고, 분위기만으로도 풍요로운 영혼이 될 것 같았고, 정신적으로 부자가 될 것 같았으며, 지적 허영심이 빵빵하게 채워질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앞으로 이곳을 종종 찾으리라 했는데....

 

그랬다,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점이 Central Library 안팎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도로변을 배회하는 홈리스들이야 그렇다 쳐도, 도서관 안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아예 코를 드르렁 골며 잠에 빠져 있었다.


이불 짐은 지니지 않은 단출한 행장이지만 근처에만 가도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번졌다.


특히 심했던 곳은 칸막이 시설이 되어있는 컴퓨터실과 코너에 있는 구석진 독서실 의자는 거의 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경비가 출입문을 지키고 내부 순찰을 돌고 있었으나 그들 또한 시민인 이상 그들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더구나 지난날 두 번에 걸친 방화의 기억까지 트라우마로 각인된 도서관임에랴.



homeless는 글자 그대로 주거지를 상실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거란 ‘ 인간 생존의 기본적인 장(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가정생활을 영위하거나 적절하게 사회생활을 꾸려간다.


그러나 노숙은 생활의 기반이 되는 장(場=주거)을 상실한 상태,


따라서 노숙인이 되면 무엇을 먹고 언제 어디서 씻을 것인가와 같은 일상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행동에 대한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되고 이러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인권도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홈리스란 이처럼 고정정인 잠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 또는 일시적인 주거지로 보호소나 시설, 버려진 건물, 자동차, 공원, 거리와 같이 일반적인 잠자리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온화한 기후 덕에 로스앤젤레스는 비교적 홈리스족이 살만한 환경이라, 미국 전역의 홈리스 수가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만은 계속 늘어난다.


로스앤젤레스시는 2015년도 홈리스 예산 1억 달러를 긴급 지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내를 다니다 보면 도로변에 마구 세운 텐트가 수두룩하고 공원도 그들이 점거한 지 오래다.


로스앤젤레스市가 Homelessness Strategy Report를 만들어 정책적으로 홈리스 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하나 나아지는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홈리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1987년 The Mckinney Homeless Assistance Act를 제정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최우선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 기관의 역할이다.


그러나 90년대 말에 이르러 이러한 대책이 한계점에 다다랐다.


응급적 처방만으로는 성과가 없었던 것이다.


현대 도시 생활자들의 소득 불균형은 점점 심해져 가는 데다 2008년 서브 프라임 금융대란의 여파로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홈리스로 추락하기도 하였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대로다.


우선은 본인의 건전한 자의식과 자립의지 유무 여부가 관건일 터.


현재 시행되고 있는 홈리스 지원 프로그램 중 housing initiative를 해줘도 공동생활이 거리 생활에 비해 몸은 편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거나, 자유가 없다거나, 규제가 많다거나 등의 이유로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그들 중 다수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건강을 잃거나 약물중독자로 전락해 막장인생의 길을 가게 된다는 분석이다.


품격 갖춘 문화와 지성의 전당인 Central Library가 안락한 공간인 까닭에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도시의 그늘이자 치부를 엿보고 나니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에 들떠서 들어왔으나, 서책 내음 스민 알맞은 조도의 쾌적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도서관이라 그쯤에서 밖으로 나와 옷깃을 털었다.


▲미국 내 모든 공립 도서관에서는 서적이나 기타 자료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 LA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여 기간 3주(두 번 대여 기간 연기 가능)에 서적 10권, 비디오와 CD 2-3개. 그러나 연체료 제도는 상당히 깐깐한 편이다. LA의 경우 아동용 도서는 하루 연체에 5센트, 일반 서적 20센트이며 비디오는 하루 늦었을 경우 1달러다.

▲주차

인근의 주차장(524 South Flower Street)에 주차하고 도서관 1층의 안내 데스크에서 도장을 받으면 일정액을 할인받을 수 있다. 주차 할인은 도서관 카드가 있어야 가능하다.

▲개관시간

일요일 오후 1시-오후 5시

월-목요일 오전 10시- 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가이드 투어 월-금 12:30 pm, 토 11am & 2pm, 일 2pm)

▲주소

630 W 5th St. Los Angeles, CA 90071

▲웹사이트

http://www.lapl.org

작가의 이전글 예래생태공원 방문 시 모기퇴치약 꼭 지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