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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0. 2024

태 안에서 은거하는 돌의 전설

작은아버지 댁에서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본 것은 중학생 때였다.

그때부터 꿈을 꾼 바깥세상, 그는 나스카 라인을 알려주었고 마추픽추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연달아 여러 권의 여행기가 나오며 그는 영국의 스톤헨지와 아마존 밀림도 보여주었다.


영국 스톤헨지의 중심축은, 바로 내일인  하짓날 해가 뜨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던데.


마다 하지가 되면 토속신앙인들은 커다란 원을 만들어 종교의식을 치러온다는데.

그러나 스톤헨지보다 더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모아이 석상으로 버킷 리스트 순위에 들어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섬에 서있는 불가사의한 거석 무더기를 사진으로 접한 다음부터다.

이스터섬의 신비로운 모아이 석상이 보고 싶었다.

하나같이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서있다는 미스터리한 거대 석상.

설왕설래만 오갈 뿐 아직도 여전 비밀에 묻혀있는 곳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인 언덕 위에 서서 입 꾹 다문 채 침묵하는 돌장승들.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된, 구백 여개의 거석문화를 남긴 사람들은 가뭇없이 다 어디로 스며든 걸까.

대신 페루 쿠스코에서 잉카인들이 남긴 마추픽추를 만난 것으로 만족하곤 있지만.

그래도 중학생 때부터 흠모해 마지않던 곳, 나스카 평원을 찾았던 날은 잊지 못할 감동으로 새겨져 있다.  

비록 경비행기를 타고 멀미약 후유증으로 비몽사몽에 빠졌을지라도 그날, 독일 고고학자 마리아 씨에게는 무한 존경 바쳤다.

각설하고 삼 년째 살고 있는 화산섬 제주.


제주는 돌의 고향이다.

돌의 고장 다이 돌문화를 집대성시킨 곳이 있다.

돌문화공원이다.

얼마 전에 춤 야외공연이 있어 와 본 적이 있는데 당시는 공연 스케줄 따라가며 소화하기에도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그날 아쉬움 그득한 채 돌아오며 불원간 다시 찾으리라 작정했던 터였다.

이곳은 돌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박물관이자 제주의 탄생 설화와 자연환경을 한데 아우른 생태공원이다.

거대한 암석의 위용이 애니미즘적 요소로 압도해 오는 데다 거석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 왕성한 생명력에 주눅 들었더랬는데.

오백장군 군상 저마다 위엄찬 기상과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무수한 방사탑과 돌하르방, 동자석, 정주석 등등.

큰 배낭을 멘 백인 청년 홀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아주 진지하게 셔터를 눌렀다.

하늘 우러러 높이 솟은 돌탑의 기원을 신중한 자세로 담아내고 있는 그 청년 때문이었을까.

이들을 둘러보는 내내 마주한 적도 없는 이스터 섬 모아이 상들이 오버랩됐다.

그만큼 석상 하나하나가 엄청난 크기였기에 전체적으로 분위기 장엄하니 묵직해, 절로 경건 숙연감이 들었다.

어쩌면 거석문화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자체가 기운 신성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극 중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듯 하늘 구름마저 빠르게 이동하는 데다 바람결 거칠었다.

설문대할망의 자녀들인 오백장군 이미지를 형상화한 이곳 외에도 볼거리 첩첩인 돌문화공원이다.  


한라산보다도 더 거대했다는 초인 설문대할망은 제주 창조신화의 주역인 어머니이다. 


이 공원 중심부에 '어머니의 방'이 마련돼 있듯 제주의 시원인 여성성이 오늘날까지 연면히 이어져 내려와 제주는 특별하게도 여자가 삶의 중심축을 이루는 문화가 형성된 걸까.  


바람, 돌, 여자가 많아 三多島인 제주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제주 돌문화공원.


암튼, 근 백만 평이나 되는 부지 면적에서 알 수 있듯 공원 규모가 워낙 커서 한나절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빠듯할 정도인 공원이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조그만 섬 제주가 이리 넓은가 새삼 놀랄 만큼 광활한 대지 위에 펼쳐져 있다.

돌의 고향인 제주도답게 체계적으로 돌 문화를 집대성해 놓은 박물관이자 생태 공원이다.

제주의 향토성과 역사성 안에 제주만이 지닌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낸 제주문화예술의 총체다.

첫 번째 두 번째 방문까지도 돌 박물관에 들어가 볼 짬이 없었다.

하루는 춤판 구경, 둘째 날은 야외 전시장 구석구석 발품 팔며 돌다 보니 하루 해가 기울었다.

그 정도로 규모 방대하다.

오죽하면 경내를 이동하기 위한 관광용 전기차가 운영될 정도로, 제주에서 가장 큰 공원이란 실감이 제대로 났다.

셋째 날은 작정하고 돌 박물관으로 직행했다.    

제주돌박물관은 제주돌문화공원 내의 핫 풀인 하늘 연못 아래 자리했다.

자연환경과 주변경관을 거스르지 않게 지하공간에다 가꿔놓았다.

돌의 모태이자 본향인 지표 아래 깊숙이 배치된 돌 박물관.

박물관 위에는 하늘연못이 오름의 반영을 담고 고즈넉이 자리했다.

음악 연극 무용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형의 수상무대 연못은 볼수록 신비로웠고.

박물관은 마치 중국 병마총처럼 무지하게 크고 웅장했다.

그럼에도 관람하기 편하게 동선 물 흐르듯 잘 꾸며져 있다.

지하 1층과 2층에 우주의 형성과 제주 생성 전시관, 수석관과 자연석 전시관 등 각 공간 역시 휑뎅그렁 드넓다.

패널 도표 외에 풍화혈이나 화산탄 실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꽤 흥미로워할 만했다.

암석에 형성된 동굴이나 작은 구멍이 밀집돼 있는 풍화혈은 진기한 수석감.

화산이 폭발하면서 공중으로 뿜어져 올라간 용암덩이 식어 땅에 떨어진 화산탄은 외계물체이듯 괴이쩍다.

기기묘묘한 풍화혈과 화산탄 하나씩 눈맞춤하다 보면 시뻘건 마그마 분출해 강물처럼 흘러내리던 해외토픽 겹쳐지고.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찬찬히 둘러볼만한 자료가 섹션마다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그렇듯 제주의 내밀스러운 속살 행렬 끝도 없이 이어지자 슬그머니 멀미가 난다.

묵직한 돌의 침묵에 누질려서이리라.

점점 그 돌이 그 돌 같아 뵌다.

그쯤 되니 입구도 출구도 어딘지 모르겠다.

실지 나갈 길을 잃고 미로 헤매듯 하다가 안내를 받고서야 출구를 찾았다.

블랙홀에 빠졌다가 지상으로 올라온 사람처럼 태양 마주하자 잠시 멍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엄청난 대지에 제주의 역사, 신화, 지질 형성과정을 망라해 한데 품고 있는 공원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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