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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1. 2024

 망상 해변에서 고해성사

이치에 맞지도 않는 헛된 생각, 쓸데없는 잡념을 일러 망상이라 하외다,


성격이 예민한지 별나게 까탈스러운지 자신 스스로도 종잡지 못하겠소이다만 어쨌거나 나로 인해 가까이 있는 사람은 편치가 않았으리다.


긁어 부스럼 일으킨다고, 생각이 많다 보면 단순한 사안 가지고도 공연히 파랑 일으켜 심란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하였더이다.


때로는 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가 하면 오지도 않은 내일 일까지 앞당겨 지레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다오.


이런저런 사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스스로를 들볶아 대기도 하는 성정이라 따지고 보면 실로 두루두루 피곤하게 만들었던 거외다.


별스럽지 않은 일 확대해석하여 밤새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소심증까지 있어 방정맞은 상상으로 괴로움 자초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오.


평소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종종 망상에 빠지기 일쑤인지라, 스스로 상념이 더 이상 가지치기를 하지 않도록 여줄가리들을 미리 쳐내는 훈련도 계속했소이다.


생래적으로 차갑고 까칠한 편이긴 하나 과대망상이나 망상장애로 까지 나아가지 않은 것만도 하긴 천만다행, 감사할 부분이라오.


그나마 긍정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 덕에 더 이상의 단계로 뻗어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점도 감사하더라오.


해서 내면의 갈등과 혼란 다스려 주는 여과지로써의 글쓰기 도움 누차 받아왔음도 고백하오이다.

 

신앙의 힘에도 기대 왔으며 젊은 날은 답답하면 점집도 찾아간 전력이 있다오.


그런 자신이 싫소이다만 본디 심성 나약하게 생겨먹을 걸 내사 어쩔 도리가 없더이다.


이처럼 고민과 번뇌, 갈등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불러들이는 형국이니 살찔 겨를인들 어디 있겠소이까.


따지고 보면 애먼 누구 탓할 거 없이 본디 애 마른 자신의 본성 탓, 하여 사십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지라 한 모양이외다.


애시당초 자신이 과히 편안한 사람은 못되니 옆지기를 비롯 주변인인들 어찌 평안 누렸으리오.


상대방에게 네 탓이라며 잘못의 원인을 지적질할 때 손가락 하나는 너, 하나는 하늘, 셋은 자신에게 향하고 있지 않더이까.


그렇습디다.


모두가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로소이다.


어리석음 가엾이 여기사 하늘이시여,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짙푸른 동해 바라보면서 허물과 티끌 수없이 쌓인 자신을 성찰하고 통회하며 말없이 고해성사를 보았나이다.

투명히 맑고 푸르러 우연히 고해소가 되어준 망상해변.


하긴 동해안 어디나 흉금 시원히 터지는 망망대해, 흰 물결 겹겹이 이는 쪽빛 바다야말로 어디나 명품 아니더이까.


송림을 낀 절벽 해안에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는 시인에겐 명시가 되고 화가에게선 명화가 태어나곤 했더라오.


어느 날, 백사장이 말 그대로 명사십리인 망상해수욕장 해변을 걷다 보니 '망상' 아닌 '명상' '묵상'을 절로 하게 되더이다.


따라서 그 어느 바닷가에서보다 마음 순결해졌으며 절로 무장해제되어 스스로에게 꾸밈없이 진솔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거오.


심호흡 한 번에 세간사 오탁이 하얗게 씻기는 듯도 했으니 당연히 폐부 속속들이 정결해지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소이까.


이에 무엇을 덧포장하고 왜 굳이 분식을 하오리까,


진면목 그대로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기에 맨발 되어 물가를 한동안 걸었소.


하얀 모래알 입자는 곱디고왔고 발등에 부딪는 물결은 실크처럼 감촉 매끄럽고도 보드라웠소.


그 순간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오.


스텝 밟을 줄만 안다면 물보라 튕기며 한바탕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오.


망상도 과해지면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환희심 고조되어 두둥실 자유인 되는 모양입디다.


주중의 해변이라서인지 인적 거의 없었다시피 해 가끔 어쩌다 한 둘 드문드문 오갈 따름이었소이다.


무엇보다 망상해수욕장은 여타 지역과 전혀 다른 수준으로 해변을 디자인해 대뜸 마음 사로잡았던 거라오.


최상급인 색채 구성이나 설치물과 공간과의 조화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배치해, 망상 해변 자체가 세련된 한 폭의 명작으로 거듭나 있었소이다.


대관절 누구일까, 조경을 관장한 총감독 프로필이 몹시 궁금하기도 했을뿐더러 동해 다른 지역에 그의 탁월한 능력 널리 알려지길 바랐다오.


이리 센스 뛰어난 해변 설계자도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으며 이는 망상해수욕장의 복이 아닌가도 싶었소이다.


또한 멋들어진 이 정경을 니랑 우리끼리 독점하다시피 차지한 채 한껏 도취경 만끽할 수 있었던 축복도 여간한 게 아니었다오.


걷다 보니 바로 옆에 시설 완벽한 오토캠핑장이 있어 거기서 며칠 지낸다면 신선놀음이 달리 있겠나 싶기도 하더이다.


캠핑장 자체가 해송숲에 싸여있어 파도 소리 솔바람 소리 들으며 그야말로 별유천지에서 노닐겠더이다.


아이들 어렸던 오래전 몽돌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며 들었던 좌르륵 차르륵 몽돌 구르는 소리 연연히 귓가에 남았는데.


 그처럼 여기선 솔바람 소리 솨아아~ 찰싹대는 파도 소리 하모니 이루어 실내악 연주를 들려줄 것 같았소.


언젠가 이 바닷가에서 여름 한철 지내 봐야지, 꿈이건 바람이건 다짐도 해뒀다오.


그러나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


잠언 말씀에 "자신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줄로 아오이다.


.

오 년이 지났지만 망상해변에 다시 가볼 기회는 여태껏 만들지 못했고, 남으로 쑥 내려와 서귀포 바닷가 거닐며 문득 그 해변 풍경 그대로일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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