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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5. 2024

부정할 수 없는 팩트


부산 감천 문화마을에서다.


 어떤 벽화 앞에서 발길 멎었다.

한국동란 당시 피난민들이 내려와 판잣집 얼기설기 산자락에 짓고 살던 동네.

구호품에 의지해 루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공동우물터에서 길게 줄 서서 우물물을 길어왔다.

펌푸가 생긴 건 그로부터 한참뒤로 그나마 환경정비해 살만한 동네로 변한 문화마을 벽화를 보자 자동으로 떠오른 육이오....




1931년생인 박완서선생이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썼다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 속에는 해방 이후의 혼란기, 좌우익의 대립과 특히 세를 넓혀가던 남로당의 준동 그리고 남북간에 벌어진 전쟁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을 해서 강의도 며칠 못 듣고 6월 25일을 맞고 말았다.

"인민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전에도 38선에선 충돌이 잦았고 그때마다 국군이 잘 물리쳐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다만 몇 발자국이라도 38선 이북에서 밀었다 당겼다 하는 장기전이 되려니 했다." 230 페이지.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명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이는 마지막 268 페이지로 북진통일을 눈앞에 두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밀리며 다시 서울이 인민군 수중에 떨어졌을 때 상황이다.

박완서 씨 가족은 피난을 가지 못한 채 텅 빈 서울에 남겨져 '천지에 사람없음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 전쟁으로 남한은 아래와 같은 인명피해를 입게 된다.



군인

149,005명 전사

710,783명 부상

132,256명 실종

민간인

373,599명 사망

229,625명 부상

303,212명 행방불명

총계

522,604명 사망

940,408명 부상

435,468명 실종

               총계 1,898,480명 사상

 

유엔군

사망자:5만 7615명

부상자:11만 5312명

실종자:2232명

 포로:6267명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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