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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7. 2024

저 눈빛을 기억하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능한 위정자는 나라를 망쳐먹었다.

선조는 무능한 군주였다.

한때 영특했다던 왕은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기용하는 등 인적 쇄신을 꾀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질서 변화에 둔감했고 일본과의 외교는 부실했으며 국경 방어도 허술하게 관리했다.

침략 기미를 노골적으로 보이는 왜구임에도 주군으로 전혀 대비를 하지 않았으니 그는 국방에 있어서는 이름만 왕이었다.

당파싸움의 와중 왜의 침공을 놓고도 동인, 서인으로 갈려 서로 싸우기 바빴으며 무능한 왕은 중간에서 갈팡질팡만 할 뿐.

국경이 위태롭다는 보고마저도 묵살한 조정이니 전력 파악은커녕 고스란히 앉은 채 당하고 만다.

어리석은 왕은 급기야 풍전등화의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도요토미는 1592년 4월 14일 총병력 30만 명을 보내 조선 침략에 나섰다.

부산 앞바다에 병선 700여 척이 새까맣게 밀려들었다.

조선은 왜의 사절단이 오는가 보다 했다니 정세 파악도 이 정도면 방심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방치다.

나라의 관문 관리가 이리 미흡함을 넘어 허술했으니 결과는 참담할밖에.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은 파죽지세로 부산진성을 떨어뜨린 다음 동래성을 포위했다.

왜적들이 동래읍성을 유린하자 백성들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남정네들은 낫과 곡괭이 쇠스랑을 들었고 아녀자들은 돌을 던지며 죽기 살기로 맞섰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저 눈빛과 함성을 기억하라!


강토를 짓밟는 자들에게 두 눈 무섭게 부릅뜨고 저항하는 저 결기와 노기 띤 고함소리를.

조정에서는 나흘째야 비로소 왜의 침공 사실을 알았다.

겁 많은 선조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으니 오로지 저 하나 살자고 아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허겁지겁 의주로 피난 간다.

개성, 평양성에서 거짓으로 성안 인심 다둑거려 가면서 뒤로는 여차하면, 이 아니라 실지 튀려고 명나라에다 망명 신청한 선조다.

무능한 데다 남 탓만 하면서 백성들 속여가며 요동으로 내뺄 궁리나 하던 야비한 임금을 주군으로 모셨으니 열불도 났으리라.

오죽하면 분노한 백성들이 한양성에 불을 지르고 평양성에서는 임금 위패를 모신 가마까지 때려 부술까.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도 당시 도망가는 재상들에게 화가 난 백성들이 삿대질하며 큰소리로 꾸짖었다고 기록돼 있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훔쳐 먹더니 지금은 이처럼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속이느냐.”

7년여 동안 왜군은 조선을 짓밟고 수십만의 인명을 살상하였다.

그 바람에 농번기를 놓쳐 전답 수확량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피란 가기 바빠 농사지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


조상의 얼이 스민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당했으며 포로로 끌려간 백성 수5만을 넘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5년 기록에 “중국 조정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적을 몰아내고 강토를 회복했으니 이 또한 옛날에 없던 공적이다. 또 힘껏 싸운 장사들에 대해서는 그 공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우리나라 장졸에 있어서는 실제로 적을 물리친 공로가 없다."


이순신 이하 백성들 목숨 바친 항전사는 뒷전인 채 기껏 한다는 소리가 명나라에 굽실대며 아부질이나 하다니.

당신 조선국 임금 맞아? 배 열두 척으로 바람 앞의  등불이던 나라를 구한 충무공도 잊은 척하다니!

이쯤에 이르면 선조는 조선의 왕이 아니라 명나라 변방 일개 부사로 격하시켜 마땅한, 좀스런 졸장부요 어리석은 허깨비에 다름 아니다.

충렬사 기념관에서 동래성 항전도 그림을 보면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선조야 그렇다 쳐도 조정 대신들마저 민초들만 한 결기며 패기며 노기도 없는지?

데자뷔 현상이라던가, 요즘 들어 어쩐지 선조와 겹쳐지는 어떤 사람이 있다.

국가와 국민이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달라도 많이 다르다며 절망을 넘어 포기 수준이 돼 민심이 이반 되면? 

한 나라의 힘은 백성들로부터 나오며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걸 잊은 자들.

공정과 정의 대신 불의가 횡행, 국민들 분노 게이지를 자꾸 올려놓다가는 결국 국민적 대저항을 불러일으키고야 말리니....

임진왜란 같은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심한 인명 살상은 국내 정치에 의해 발생한다던가.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보다 한 국가의 독재권력이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한다는 이론을 밝힌 분은 하와이대 루돌프 럼멜 교수다.

충렬사에 걸린 대형 그림은 동래성 전투 모습을 담은 순절도로 왜적을 쳐내는 민초들의 눈빛 형형히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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