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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4. 2024

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

화순 서부락에서 한갓지게 노닥거리다 금모래해변으로 내려와 보니 아주 멀리 보이는 목적지.


그도 그럴 것이, 화순 용천수 풀장을 지나 화순 곶자왈도 통과해야 하고 소금막과 황우치해변 지난 다음이 용머리해안이다.


곶자왈부터 하드 트레이닝에 나선 국가대표 선수처럼 오르막 층계 타다닥 오르내렸다.


평지에선 뜀박질하다시피 용머리해안으로 내달았다.


네시 반이면 입장 시간이 끝나기 때문이다.


날씨가 화창하기도 했지만 숨 헉헉거리며 잰걸음 놓다 보니 등에 땀이 다 찼다.


산방 연대 아랫길을 가로질러 바람처럼 날쌔게 언덕을 내려가던 중 잠시 멈춰 섰다.


아무리 급해도 오도카니 나목 가지에 앉아 날 기다린 듯 한 까치는 그냥 패스할 수가 없었다.


전조가 좋으니 설마 게이트 앞까지 닿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허겁지겁 매표소에 주민등록증 제시한 후 떠밀리듯 잽싸게 해안길로 들어섰다.


지난번 물때를 체크하지 않고 막무가내 왔다가 만조로 출렁대는 파도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쉬움 접었던 터.


하긴, 용머리해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상이 변해 바람 드세거나 파도 높은 날엔 출입 금지다.


오늘 아니라도 널리고 널린 시간.


다시 오면 되련만 원서접수 마감일도 아닌데 오늘 아니면 안 되듯이 왜 그리 서둘렀을까.


수호천사가 곁에서 항상 지켜주기 망정이지 와장창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짤끼고!


성마른 이 조급증은 언제나 고쳐질지.


매사 여유롭고 느긋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이 강퍅한 승질머리 땜에 살조차 넉넉하게 붙지를 못하는 거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지질 자원의 보고, 그런만치 독특하고 희귀한 화산지형이 숱하다.


수백만 년 전 제주도 일대는 점토와 모래층이 바닷물에 드러났다 잠겼다 하는 얕은 바다였단다.


무수한 화산활동과 풍화작용이 거듭되면서 지금의 제주도가 형성됐다는데.


이는 물경 180만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바닷속 화구에서 화산 분출 도중에 연약한 지반이 무너지며 화구가 막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한 마그마.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틈새만 있으면 기어코 터져 나오기 마련인데, 그처럼 연속 분출한 화산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주는 용암 언덕이 바로 여기다.


화산이 세 차례나 폭발하며 그때마다 분출된 화산쇄설물이 쌓여 형성된 암석해안인 셈.


용머리 해안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성화산이란다.


용머리 위쪽에 늠름하게 서있는 산방산보다도, 심지어 한라산보다도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화산체라는 것.


'지질 트레일'이 열린 용머리해안은 원시 제주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질 명소로, 마치 용이 머리를 쳐들고 바다로 향하는 듯한 모양새다.


마그마와 화산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완만한 언덕 모양 화산체인 응회환을 만들었단다.


그 위에 형성된 암벽 형체 또한 기기묘묘하다.


해안 절벽은 오랜 기간 퇴적과 침식에 의해 파이고 깎여 기암괴석층을 이뤘다.


이 현무암 절벽은 청청한 남빛 바다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드러낸다.


암벽에 담긴 무늬 또한 굽이굽이 물결치기도 하고, 겹겹이 층 이룬 시루떡 같기도 하고, 이색지게 짜놓은 벌집 형태를 새겨두기도 했다.


더러는 풍화혈이나 돌개구멍을 열어놓기도 했으며, 깊숙하게 패인 해식동굴 쩌렁쩌렁 외치며 포효하다가, 뭉크의 절규처럼 일그러져 있기도 하다.


신곡의 한 장면처럼 오싹 공포를 느끼게도 해, 절로 몸 낮추고 공손히 머리 숙이게끔 하는 묘경의 연속이다.


지구의 생성 역사가 새겨진 이 장관이야말로 경이감을 넘어 실로 외경스럽기만 하다.


그랜드캐년이나 옐로스톤에서 천지창조의 장엄미를 보았다면 용머리해안에서는?


아주 오랜 옛적, 지구가 울끈불끈 요동질 치며 하늘 높이 시뻘건 불 토해내는 상상을 하니 무한 외경감에 잠겨 들게 된다.


용머리해안을 한바퀴 도는 동안 문득문득 드는 한 생각, 사암층 바위벽 언제인가 형체 하얗게 사라지는 날 있으리니.


무량 거듭되는 일월의 변화에 따른 풍화작용에 의해서 혹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따라 바닷속으로 가뭇없이 잠겨 들고 말면....


이 세상 그 무엇이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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