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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6. 2024

사슴 노니는 천백고지

우당탕당! 문명사회 모든 게 하나같이 성급하게 설친다.


세상천지가 정신줄을 놓은 거 같이 돌아간다.


아무리 화급해도 유분수지, 7월 초부터 폭염특보가 내린 서귀포.


햇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26도라지만 체감온도는 거의 30도에 육박했지 싶다.

천백고지로 향했다.


홧홧하게 느껴지는 피부 열감을 식히려?


그보다는 숲의 초록빛이 주는 평화와 고요에 잠겨 들고 싶어서다.




천백도로나 오일육도로나 굽이굽이 S자로 틀어가며 산을 오르노라면 하늘 가린 숲 터널이 볼만하다.

거기다 양 길섶에는 물빛 산수국 한창이다.

녹색 깊어가는 숲빛만으로도 청량감이 들며 더위는 한풀 꺾여든다.

천백고지에 닿아 숲 그늘 골라 디디면 서늘한 기운에 덧옷을 꺼내 입게 된다.

고도가 있어서인지, 산지라서인지, 실제 서귀포 시내와 5~7도가량 기온 차이가 나는 거 같다.


1100고지 습지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제주도 습지 다섯 중 한 곳이다.

생물권 보전지역인 한라산 고원에 형성된 산지 습지로 열여섯 개나 되는, 물이 괸 작은 늪이 분포돼 있다.

이 물은 야생동물의 식수원 역할을 하며 다양한 습지 식물들을 키워낸다.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와 멸종 위기종인 매 그 외 말똥가리 등이 서식하며 한라산 고유종인 한라물부추와 지리산오갈피가 자라고 있다.




나무 데크로 이루어진 자연생태탐방로 거리는 675미터란다.

데크길이 습지를 빙 둘러싸고 있어 습지 환경을 바로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겨울철에 두서너번, 폭설 내렸을 때 설화를 보려고 올라왔던 천백고지의 화잇 설원이 온통 그린색 천지로 바뀌었다.

신세계를 펼쳐놓은 습지.

사방에서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이 쿠왕 쿠앙 콰과쾅 짠~ 힘찬 리듬이 울려 퍼진다.




천백 고지 휴게소에서 내려 높직이 서있는 백록상 조형물 일별하고 자연학습 탐방로로 접어들었다.

용암에서 비롯된 바위 더미 사이로 물이 고여있고 이끼류와 수생식물 군이 영역 다툼 없이 공존하고 있었다.

바위를 하얗게 감싼 지의류(바위옷)는 대기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환경지표종이라고 한다.

닭의난초와 방울새란 및 산제비난도 있다 하나 뭐가 뭔지도 모르는 데다 물가와 거리가 있어 그저 다 풀로만 보일 뿐 아는 식물은 오직 제주조릿대.

습지라서 당연히 양서류나 파충류도 분포돼 있는바 제주도롱뇽 무당개구리 도마뱀이며 유혈목이도 산다고.  

물이 맑아 속이 말갛게 들여다 보이는데 물속에서 장구벌레같이 생긴 게 톡톡 튀어 다니고 있었다.  

이럴 때 망원경이 있다면 유용하게 쓰이겠다.

 

여기에서예외 없이 특별한 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맑은 눈을 가진 사슴 혹은 노루였다.

덤불진 숲 아래 고인 물에서 첨버덕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재빨리 시선을 돌리니 사슴이 물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데크 위에 서서 동영상 찍을 준비하는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더니 놀라는 기색 없이 풀밭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바로 목전이건만 자주 인기척을 접해본 듯 아주 태연자약했다.

연하게 보이는 풀을 사각거리며 뜯어먹고는 물길 건너 위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천상의 평화와도 같았던 그 잠시.

천년도 수유이듯, 찰나가 영원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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