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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5. 2024

상팔자 예 있소!

해달


최고 부러운 처지나 좋은 형편 누리는 사람을 일러 상팔자라고들 한다.

모든 걸 누리며 썩 좋을 것 같은 영국 여왕도, 빌 게이츠도 나름 고뇌가 있을 터다.

주인 신발 베개 삼아 토방에서 늘어져 자고 있는 개를 보면 '개 팔자 상팔자'라고도 한다.

요새 강쥐야 애견으로 격상되어 이쁨 받으며 견공 대접까지 받는다.

허나 개팔자라는 게 눌은밥 얻어먹으며 걸핏하면 옆구리나 채이고 복달임 음식 되던 신세였다.

그. 러. 한. 데

세상천지 부러울 거 하나 없는 상팔자 중의 상팔자, 진정한 상팔자의 지존을 만났다.

몬트레이 베이에서다.

해 뜰 무렵  Fisherman's Wharf 쪽으로 방향을 잡은 덕에 그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선창가 고유의 갯비릿내만큼은 어느 어항이나 비슷했지만 끄엉껑대는 기이한 소리는 영 생소했다.   

처음엔 물개인 줄 알았는데 안내판에 바다사자라 명기되어 있으니 바다의 왕자.

그들에게 몬트레이 어항 방파제는 말 그대로 천혜의 낙원 그 자체였다.  

일단 걔네들 보호구역이라 접근 불허의 견고한 철망이 방파제 따라 빙 둘러쳐져 있겠다.

  청정바다엔 수두룩 빽빽한 해조류 무성하게 너울거리니 어류 또한 다양하게 몰리겠다.

바윗전에는 홍합, 굴, 성게, 전복, 고둥 숫제 지천으로 깔렸겠다.


먹거리 위에 벌러덩 퍼질러 누워서 느긋하게 볕바라기나 즐기니 그 팔자가 최고 상팔자 아니랴.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여타 목숨 위협하는 아무런 천적도 없겠다.

 수고하지 않고도 배부르게, 입맛대로 하시라도 먹을 수 있는 데다 심심하면 첨버덩 물에 뛰어들어 물놀이하며 만판 즐기겠다.

그저 짝짓기나 하고 줄줄이 자식 낳아 번성하면 제 할 도리 다한 셈이렷다.  

그들 천국인 이 자리는 초창기 어업 전진기지였던 만치 수많은 고깃배 들락거리던 항구.

세계대전 때 정어리와 연어 등 통조림 공장은 초호황기를 누렸으며 몰려든 사람들로 덩달아 흥청망청했다.

그 통에 연근해 생선을 남획, 바다 고기의 씨가 깡그리 마를 지경이 돼 어획량 팍 줄면서 공장 동네는 쇠퇴됐다.

어장 황폐화라는 한바탕 된서리 맞은 다음에야 환경에 대한 각성이 일어 사람들의 노력이 따르게 된다.

이때 주변 태평양 바다 전역을 국립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며, 이후부터 생태계가 복원되고 어패류 보존 유지도 가능케 되었다.

곁들이자면 당시 몬트레이 베이 수족관 연구소(MBARI)의 수준과 활약상이 대단하였단다.

당시의 통조림 공장은 이제 호텔이나 쇼핑센터로 구조변경, 지금은 인근이 이름난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수자원이 풍부해서인지 아침부터 낚싯배가 푸른 물결 가르며 총총 출항했다.

고래 생태관광선을 타고 나가면 각종 고래를 지척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수족관이나 동물원 아닌 자연상태에서 해양 동물을 바로 눈앞 가까이 만날 수 있었던 점,

이번 여행의 또 하나 보너스였다.

그렇게 만나본 귀여운 해달...

몸매 둔하기 짝이 없는 바다사자 떼 지어 뒹구는 영역 한편에 자그마한 물체가 나타났다.  

이름은 sea otter, 두상만 봐서는 애완동물 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하얀 털의 바다 수달이 배영을 하며 우리 눈앞에서 계속 왔다 갔다 재롱을 부렸다.

바다에 사는 수달이니 해달, 요 녀석은 장난꾸러기 짓을 수시로 해댔다.

머리만 내놓고 까딱까딱 수영하는 몸짓 자체가 귀염둥이라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바닷말 따위 긴 갈조류를 몸에 휘감느라 작은 몸통을 뱅글뱅글 돌리기도 하는데 이는 해류에 떠밀려가지 않게 스스로 단도리하는 거라 했다.

 해달이 좋아하는 먹거리는 성게, 게, 조개.
먹잇감을 얻으면 해조류를 침대 삼아 누워서 물 위에서의 식사를 즐긴다.

어찌나 영리한지 녀석은 제 배에 조개를 올려놓고 돌로 깨어서 내용물을 꺼내 먹는단다.

해양포유류는 찬 바닷물로부터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물개처럼 두꺼운 지방층에 싸여 있다.

반면 해달은 유일하게 지방충 대신 모피를 가진 동물이다.

게다가 동물 중에서 가장 털이 촘촘한 모피를 지닌 탓에 모진 수난을 당했던 해달이다.

고급 모피를 노리는 사냥꾼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한때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뒤늦게 해달 사냥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이 이루어져 보호종 되면서 개체 수가 늘어났다.

 휴~ 다행이다, 국제 협약 체결 덕에 재롱둥이 해달을 만날 수 있었으니.


벽화로 남은 예전 어부의 나룻배 그림 무색하게, 최신 장비 갖춘 스쿠버 다이버들이
도심 바로 곁 청남빛 바다로 入水, 수면 들랑날랑하며 물질을 했다.

제주 해녀들은 물안경만으로 수심 깊이 들어가 물질해 家計 책임 지나, 이들이야 바닷속 탐색하며 무중력상태를 즐기기 위한 고급 취미.

해변에 한 무리 초보 다이버들이 잠수복 입고 조교임직한 사람으로부터 설명 듣고 난 다음
둘씩 짝지어 바다로 들어가 머리만 보이니 이 또한 물개인지 해달인지 사람인지... ㅎ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이버의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여기도 사전예약은 필수라고.


도로에서 모래벌판까지는 한 이십 보 가량, 발치 가까이 바다는 철썩대며 누워있다.

눈부신 아침햇살에 사금 뿌린 듯 반짝대는 잔물결.

 바다 저만치에서 굼실거리던 몸짓 드디어 파도의 흰 갈기 앞세우고 달려와 바위를 휩싼다.

그리고 힘껏 솟구쳤다가 부서진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하얀 포말로 흩날린다.

그 서슬에 갯바위 낚시꾼 엉거주춤 일어선다.

시멘트 건물 잔해에 그려놓은 해파리도 움찔한다.

마음으로 풍경 스케치하며 유유자적 망중한 즐기는 딸내미와 나와 멍이도 그러고 보니 상팔자 맞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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