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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는 강 건너 불일까
꽃길과 전쟁
by
무량화
Mar 16. 2024
재작년 일이다.
서귀포로 와서부터 오로지 노는 일에만 몰두했다.
이기적일 정도로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다고나 할까.
더구나 서귀포에서 맞이하는 첫봄이니, 온갖 꽃 다투어 만화방창 피어난 자연이 어찌나 신통방통 눈부셨던지.
거의 날마다 온데 쏘댕기느라고 다른 데 관심 가질 이유는 물론 여유도 없었다.
국내 커다란 이슈로는 대선이 있었고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됐다.
세계 뉴스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촉발된 전쟁이 한 달 넘어 계속되고
있었
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공격으로 영토 일부를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이에 우크라이나는 국가 존망을 건 총력전을 선포하고 결사항전에 나섰다.
장기화된 전쟁,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면서 러시아에 경제봉쇄 취하자 힘겨운 국면에 처한 러시아.
러시아군은 10전 10패 전황인 지상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미사일과 박격포 공격을 늘렸다고 한다.
전선에서는 공격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터키에서 휴전협정 자리에 앉은 두 얼굴의 러시아는 디폴트 선언이 임박했다는데.
그날 미라지 유채꽃밭에서다.
명칭 공모전에서 뽑혔다는 '아름다움이 비단처럼 펼쳐진 연못'이란 이름은 좀 과장된 느낌이다.
말간 물이 관을 타고 계속 주입되고 있으나 웅덩이처럼 물빛 탁하고 이끼 잔뜩 껴 매우 너저분하다.
지금은 그래도 못 주변을 정화시켜 새로 지어준 이름 미라지라는, 뜻 그럴싸한 명칭이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이곳은 원래 지형이 매우 험준해 짐승들조차 물이 있는 계곡에 내려올 엄두를 못 냈다는 골짜기다.
생긴 그대로의 지형지물을 십분 활용해 자연스럽게 가꾼 유채꽃길, 성산포나 산방산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직사각형 유채밭이 아니다.
마치 저절로 조성된 듯 자유로이 펼쳐진 비정형의 곡선이 주는 자연미가 정겨워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이 계곡에서 유채꽃 정령들과 어우러져 즐기노라 기분 한껏 도연해졌다.
삼삼오오 몰려든 꽃놀이 인파에는 국제화 시대답게 외국인도 다수, 다섯 명의 백인도 끼어있었다.
유채꽃 속에서 그들도 포즈를 잡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국기 같은 걸 양켠에서
펼쳐 들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그들 중 하나는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었다.
무슨 동호회의 단체여행 정도로 여기고 무심히 지나치다가 그들이 펼쳐든 기가 뭘까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이 무신경한 우둔함이라니.
궁금한 건 못 참는지라 되돌아가서 파란색과 노란색이 반반인 기가 어느 나라 국기인지 물어봤다.
자기들 나라인 우크라이나 국기라며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였다.
순간 가슴이 아릿해지며 울컥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들을 향해 Peace be with you! 외치면서 양손으로 V 사인 만들어 격하게 흔들어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시사잡지 기사의 배경색이 블루와 옐로였던 게 그제야 생각났다.
날마다 봄꽃 축제판 찾아다니며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그 기억조차 하얗게 잊었던 것.
몸서리쳐지는 전쟁, 뒷배인 러시아의 부추김에 힘을 얻어 동족상쟁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다.
구 소련 스탈린의 세계 공산화 전략의 한 축에 더해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이 맞물려 벌어진 육이오전쟁.
그 통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한반도 전체가 폐허 됐으며 세계 최빈국으로 추락했던 우리나라다.
50년대의 참담했던 그 비극으로 인해 우리는 처절한 궁핍을 겪어야 했다.
전쟁광들의 만행은 아직도 여전히 현재진행형,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다.
하여 비옵나니 모쪼록 더 이상의 전쟁과 폭력이 없는 한반도이길.
바라옵건대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부디
오늘처럼 꽃길만 걷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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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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