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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5. 2024

두 시간이면 충분한 그 섬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앞머리에는 모자 그림이 나온다.

중절모 같지만 그러나 모자가 아니란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란다.

처음 본 비양도는 어린 왕자의 그 그림을 연상시켰다.

바다 빛이 비색 (翡色)인 금능이나 협재해변에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섬이다.

금능에서 보면 봉우리가 둘 선명하나 협재에선 한 덩어리가 된 섬.

저 섬에 한번은 꼭 가봐야지, 별러온 비양도다.

하늘 푸르고 바람 고요해 서귀포 앞바다가 빙판처럼 매끄러운 날.

여유롭게 한림항으로 향했다.

왕복표를 끊어 오후 한 시 반 배로 비양도에 들어갔다.

물살 가르며 시원하게 달리던 배는 십여 분 만에 비양도 선착장에 닿았다.

막 배인 세시 반 배를 놓치면 안 된다고 내리는데 선장이 거푸 주의를 줬다.

비양도(飛揚島)는 타원형의 감자같이 생긴 섬이다.

전체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넉넉할 정도로 자그마하다.

섬 중앙에는 비양봉이 자리잡았으며 정상에 하얀 등대가 서있다.

등대까지 올라갔다 와도 별로 어렵지 않게 한 시간 미만이면 너끈히 다녀온다.

시야가 탁 트인 날은 한라산이 선명히 보인다는데 이날은 형체 흐릿했지만 건너다보는 한림 협재 멀리 송악산 전망은 근사했다.

도로 반반히 닦여있었으나 차는 다니지 않고 더러 자전거 탄 젊은이들이 해안 일주도로를 달렸다.

검은 현무암이 깔린 해변, 해국 연보라 꽃만큼이나 잎새 모양도 송이송이 꽃 같다.

여기에도 선인장 무리 지어 자라고 염생식물인 해홍나물 비슷한 식물이 군락 이뤄 붉게 퍼져있었다.

식물 이름을 물어볼래도 섬 주민이 얼마 안 되니 돌아다니는 이가 없어 사진만 찍어뒀다.

서해안 갯벌엔 별사탕 매단듯한 나문재며 함초라 불리는 퉁퉁마디 칠면초 해홍나물이 지천인데 바위에 뿌리내린 쟤는 뭐지?


해안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기암괴석들이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애기 업은 돌'과 '코끼리 바위'가 그럴싸하다.

바다에 코를 박고 주저앉은 늙은 코끼리 모양의 바위, 애기 업은 돌은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된 호니토(Hornito)라고.

호니토란 화산쇄설물이 분출구 주변에 급경사로 쌓인 소규모 화산체를 이른단다.

아래 펄랑못은 우리나라 유일의 염습지로 밀물 때는 해수가 밀려들고 썰물이 되면 다시 담수호가 되는 얕고 길쭘한 못이다.  

근처에서 마침 실한 번행초가 보이기에 차가 없는 깨끗한 환경이라 한 움큼 땄다.

원체 걸음이 빠르기도 하거니와 서둘러 다녀서인지 배 시간보다 십여 분 미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사파이어, 에메랄드, 비취, 아콰마린, 토파즈,  터키석, 인근 바닷물이 보석 깔아놓은 듯 새삼 눈부셨다.

처음엔 그저 일별하고 지나친 필름 형태의 포토존 눈여겨보니 봄날이라는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설명이 따른다.

그 바람에 이 섬이 어느 날부터 자고 나니 유명해졌더라나.

보건지소 건물이며 카페며 식당 모두가 조그만 데다 몇 채 슬라브 주택도 삼 칸 누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해서 정겹기도 하지만 밤이 되어 건너편 한림만 해도 대도시같이 불 휘황하게 밝힐 텐데 고적하지나 않을지.

특히 폭풍우 사납게 몰아쳐 파도 아우성치는 밤이면... 섬을 떠나는 마음 괜히 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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