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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4. 2024

잔소리꾼

몇 장이면 충분하나 냅킨을 으레 한 움큼 뭉터기로 끄집어낸다. 햄버거 가게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이다. 두어 장으로 손가락과 입가를 닦은 다음 나올 적에 나머지는 몽땅 쓰레기 주입구로 흘러 보내면서도 말이다. 드르륵~프라이팬에 남은 베이컨 기름을 닦으려고 키친타월을 서너 장쯤 여유 있게 풀어 좌악 뜯어낸다. 한 장으로는 왠지 성이 차지 않아 절로 여러 장을 뜯게 된다. 거의 무의식적 행동이므로 습관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척척척~화장실에서 손을 씻고는 페이퍼 롤을 서너 번이나 눌러대 넉넉한 양의 종이를 끄집어낸다. 손을 약간만 흔들어주고 나면 남은 물기를 닦는데 한 장으로 충분하건만 무심결에 그저 예사로이 하는 행동이다. 톡톡톡~티슈를 서너 장 뽑아내서는 코를 팽 푼다. 두 번 접어서 쓸 필요까지도 없으니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지면 그만이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경우엔 아예 오른손이 두툼해질 때까지 한참을 둘둘둘 감아댄다. 까짓 휴지이니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것이다. 아예 쇠귀에 경 읽기 이다. 그러나 나무를 베어 푸른 숲을 유린함으로써 얻어지는 종이 아닌가.


https://youtu.be/2FMBSblpcrc?si=aThUpWrUymCY6j9y


그뿐인가. 일상적으로 과소비에 익숙해 있는 물, 써도 써도 무한정 나오는 물인 줄 안다. 샤워하면서 또는 설거지하면서 물을 줄줄 틀어놓고 기 예사다. 아낄 게 따로 있지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것의 대명사 격인 물이니 마구잡이로 쓴다. 캘리포니아의 심각한 수준인 한발이나 지구가 자꾸 사막화되어 가는 현실을 굳이 외면하려는 건지? 올바르게 자리 잡힌 환경의식이 정착되지 않아서인지? 전기나 기타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안 쓰는 전기 코드 뽑기, 냉난방 온도 낮추기를 아무리 반복 주입시켜도 편한 생활에 맛 들여진 탓에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이처럼 자원이 흥청망청 낭비되면서 생태계 파괴가 뒤따른다는 점,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에서 줄창 캠페인을 펼치나 그쯤 아랑곳 않는다. 물자 절약이 곧 생명존중, 생명사랑으로 이어지건만 거기까지 머리가 미치지 못하는 걸까. 후대를 위해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심각한 지구온난화 문제가 목전에 걸려있다.



한국에서 갓 부임한 젊은 신부님과 함께 유스그룹 캠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동부지역 한인 2세 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캠프였다. 첫날 백여 명의 왁자지껄한 식사시간이 지난 다음이다. 자모회에서 준비한 스파게티로 점심을 먹은 후 뒷정리를 하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부님이 작심한 듯 얘기를 시작했다. "여기선 언제나 이렇게 해왔나요? 이건 죄입니다." 죄는 하느님과의 바른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모든 행위,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그 자체이다.




여러 개의 대형 쓰레기봉투마다 가득 찬 일회용 접시와 컵, 스푼과 포크에다 냅킨, 먹다 남은 음식까지 마구잡이로 뒤엉켜 넘쳐나는 것을 보고는 하신 말씀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빈국들의 실상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대꼬챙이처럼 마른 채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처럼 먹거리를 함부로 버리는 일은 분명 죄악이다. 거기다 환경공해를 유발하는 일회용품들이다. 환경을 아무 생각 없이 마구 훼손시키는 행위,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자연이니만치 정하게 쓰고 고이 물려줘야 한다.



이번참에 우리라도 옳게 해서 좋은 모범사례를 남기자면서 일단 캠프장 주방을  둘러보자며 신부님이 앞장을 섰다. 꽤 오래전 독일인 수도사들이 만들었다는 숲속 캠프장은 낡긴 했지만 그들 국민성 그대로 아주 검박하고 견실하게 만들어진 곳이다. 숙소인 캐빈에는 샤워시설까지 완벽하게 마련돼 있었으며 주방에는 조리기구들이 가지런히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선반 위엔 스테인리스 식반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뒷설겆이가 귀찮긴 하더라도 식반을 사용하는 게 좋겠어요. 무심코 쓰는 일회용품에 환경이 얼마나 병드는지 잘 아시지요? 더구나 아이들이 일회용품에 길들여지는 건 옳지 않아요. 무엇이나 편하게 한번 쓰고 버리는 생활습관,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귀한 줄 모르게 됩니다. 참 무서운 일이지요. 일회용품 사용 자제하기와 음식 버리지 않기, 이거 두 가지만 익히고 실천해 나가도 이번 캠프는  성공한 겁니다. 살아있는 교육이 바로 이런 거 아닐까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랴. 잠시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자본주의가 지구촌 전체를 통째로 접수했다. 따라서 자유시장 경제논리에 따른 무한경쟁시대를 산다.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한 마케팅의 홍수시대인 현대를 헤엄치는 우리는 오랫동안 미디어의 술수에 알게 모르게 농락당하며 살아왔다. 매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고객은 왕이라고 부추겨대는 한편 꾸준히 소비는 미덕이라고 세뇌시킨 그대로 우리는 실험실의 잘 길들여진 몰모트처럼 움직여주었으니까.



너도나도 과소비 물결에 휘말려 계획 없는 충동구매,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생활을 하며 살았다. 미래를 준비하며 알뜰하게 저축하는 대신, 일단 사고 보고 쓰고 보자 식으로 별다른 생각 없이 무턱대고 구매하고 열심히 소비하느라 죄다 바쁘게 지냈다. 물건의 홍수 속에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형태가 만연한 요즘. 물론 소비는 생산을 부추기는 지렛대의 한 축이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의 밸런스를 맞추어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소비는 생산을 촉진시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므로 합리적이고 적절한 소비라면 단연 권장할 일이다.



우리 세대야 전쟁통의 지독한 궁핍을 견뎌야 했으니 절약정신이 저절로 몸에 배어있다. 따라서 소비습관이 편협한 면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마구잡이 소비보다는 덜 소비하는 게 훨씬 미덕이라 여겨진다. 미래를 위해서도 적절한 소비정신을 가르치는 것이 필히 선행되어야 할 싯점이다. 선대 어른들은 가을볕도, 흐르는 냇물조차도 아껴 써야 한다고 조근조근 가르쳤다. 얼마든지 흔전 만전 써도 괜찮을 것 같은 무한자원이건만 그조차 아끼라 함은, 나와 동체인 자연을 귀히 여겨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지.




근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기침체가 심화돼 씀씀이를 많이 자제하긴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쇼핑객들은 카트 가득 마치 정신 나간 듯 이것저것 주섬주섬 한참 집어넣는다. 매사 이렇게들 산다. 넘쳐나는 물자라서인지 함부로 쓰다 보니 과소비가 몸에 익었다. 아예 무감각할 정도로 낭비가 몸에 배어있는 현대인들이다. 그렇다 보니 무엇 하나 귀한 게 없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사는 요즘 아이들은 더더욱 아까운 게 없다. 초등생인 손주만 해도 물자 소중한 걸 도무지 모른다. 사는 것만 즐겨 당장 눈에 띄는 헤드폰이 셋, 설합 안에서 뒹구는 마우스가 여러 개다. 연필 볼펜은 아예 지천이고 노트도 꼼꼼히 마지막 장까지 사용한 걸 찾아볼 수가 없다. 이면지 용은 할머니인 고루한 나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이다




물자를 아껴 쓰는 것이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는 바탕 개념이 조금이나마 들어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의 무한한 욕구에 의해 번번 제동이 걸리며 절약정신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버린다. 거의 병적이다시피 중독된 끝 모를 과소비 행태는 적절히 통제할 길이 없는 걸까. 스스로의 절제의지로 극복해나가야 함에도 아이들에게야 애시당초 그걸 기대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불과 얼마 전에 구입한 전자기기건만 새로이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이 출시되면 즉시 거기에 눈독을 들인다. 어느새 싫증이 나버린 먼젓번 제품은 성능이 후지다느니 디자인이 어떻다느니 흠결을 늘어놓으며 미련 없이 내던져버리고 기어이 새것을 손에 넣고야 만다. 새로 나온 물건을 덜커덩 사다는 놓고 제대로 쓰지 않은 채 버려지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여기저기 어지러이 방치된 학용품, 장난감, 운동화들. 기분 따라 사긴 하고 옳게 사용한 적이 없으므로 거의 새것 수준인 것들이 태반이다.



모든 동물의 본능이 그러하듯 제 새끼 하는 양이면 기꺼이 바보가 되는 일부 젊은 부모들의 자식사랑 방식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제동 없이 좋아 좋아, 쉽사리 손에 쥐어준다. 처음부터 절제력이나 인내심을 익히도록 이끌지 않았을뿐더러 인간의 기본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도록 바르게 가르쳤어야 할 가정교육의 부재가 오늘날의 이 총체적 문제를 불러일으킨 요인. 잘못을 타이르며 잔소리를 할 웃어른의 자리마련에 소홀했던 자신부터 자성할 일이긴 하다. 그저 자식을 금쪽같이 여겨 바른 훈육에 앞서 부족한 것 없이 오냐오냐, 키운 내 탓이 무엇보다 크니까. 주님, 제 탓입니다. 제 큰 탓이옵니다.



합리적이고 건전한 소비가 미덕이고 애국이지 모든 소비가 다 미덕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악덕이며 나아가 죄악이 되기도 한다. 소비행태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없어서 필요에 의해 산다. 둘째, 망가져서 사고 셋째, 더 좋아 보여서 사고 넷째, 그냥 산단다. 두 번째까지는 필요불급의 사유가 있으나 그다음부터는 필요성보다는 습관화된 낭비성향에 의한 충동구매에 속한다. 과소비의 대중화현상이 만연한 요즘. 열등감의 원인인 자존감이 낮으면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기 위해 소비가 부추겨진다던가. 과소비풍조에 덩달아 널을 뛰어온 자신을 이 말에 슬쩍 대입시켜 보니 아아~ 부끄럽다. 2008



웬걸! 그로부터 십여 년 지나 돌아온 한국은 막장 드라마만 천지인 줄 알았더니 실제 역시 무개념이 판치는 세상. 쓰레기 분리수거가 정착된 나라라고 자랑했던 내 나라의  환경의식 소비인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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