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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4. 2024

사막에서 농사짓기


웬 횡재인가.

그제부터 연이틀 내리 소낙비가 쏟아졌다.

어제는 국지성 집중폭우에 따른 홍수경보까지 삑삑 울렸다.

시커먼 먹구름 틈새로 천둥번개가 요란했으며 그야말로 장대 같은 빗줄기가 죽창처럼 내리 꽂혔다.

간만에 모래먼지가 깡그리 씻겨 내려가고 누렇게 메말라가던 들판이 축축이 젖으며 나무들도 생기를 되찾았다.

우기인 겨울에나 찔끔 내리던 다.

사막에 비라니.... 반갑고 고마운 감로수 정도가 아니다.


너무나도 귀하고 대단한 비님이다.

몽매夢寐간에 그리던 님이듯, 비 온다고 이리 좋아하기도 첨이다.

괜히 실실거려지고 벙긋거려지는 입가.

캘리포니아에 몇 년째 이어지고 있지독한 가뭄이다.

수원지마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심각한 한발 지역으로 가뜩이나 물이 부족한데 해갈까지야 바라지 않더라도 감지덕지!

이리 왕창 쏟아져내리는 귀한 빗물은 숫제 금싸라기 같다.

지난해에는 여름 내내 빗방울 비스무레한 것도 구경한 적이 없건만 올해는 웬일로 이리 큰 수혜를 베푸시나.

호스로 감질나게 뿌려주던 물인데 뜨락 나무뿌리 깊숙한 데까지 흥건하게 젖을 만큼의 흡족스러운 강수량이다.  

빈 쓰레기통마다 뚜껑을 제쳐두고 낙숫물을 받았더니 양일간 내린 빗물이 통에 그득 차고 넘친다.

흔히 비 오는 날은 감정도 눅눅해져 마음 한자락이 어쩐지 쳐지거나 우울한데 이곳에서 마중하는 여름비에는 절로 입이 벙글어진다.

괜히 들뜨면서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나올 만큼 기분이 좋기만 하여 창가에 앉아 내도록 비 구경을 했다.




 

기온 삽상한 오늘 아침, 비는 그쳤지만 푸른 기운보다 구름장이 더 많은 하늘.

날씨도 시원하니 밭 가장자리에 난 잔디 뿌리나 거둘까 싶어 뒤뜰에 나가 풀을 잡아당기자 쏙쏙 뽑힌다.

흠씬 비에 젖은 흙이 여간 부드러워진 게 아니다.

내친김에 삽을 찾아들었다.

이른 봄부터 싱싱한 채소를 공급해 주던 텃밭은 오월 들자 황무지로 되돌아가버렸지만 손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불볕 아래 내쳐지다시피 한 묵정밭을 뒤엎어 갈기 위해 삽질을 시작했다.

팔 힘을 과하게 쓸 필요도 없게끔 삽이 푹푹 잘 들어가 일하기가 아주 수월하다.

지난해 생땅을 경작할 때와는 달리 별로 힘 들이지 않아도 척척 흙이 파뒤짚혀진다.

막무가내로 거칠기만 하던 대지가 충분한 물을 흡수해들이고 나자 어린 아기같이 이리 유순해졌다.  

간간 햇살이 비치나 그때는 등나무 그늘로 피해 찬 맥주를 마시고 다시 해가 숨으면 삽질을 해나갔다.

농사일에도 호봉이 있다더니 그간 1호봉이 올라서인지 제법 이력이 붙고 요령도 늘어 손에 물집도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난번처럼 무턱대고 욕심내어 밭을 넓히지 않기로 하였기에 적정선에다 미리 뚜렷하니 금을 그어두었다.

씨 뿌린 뒤 싹트고 떡잎 나는 경이를 즐겼으며, 화초처럼 푸른 잎새 한들거리는 채소들에 환호했으며, 알맞게 자란

무공해 청정야채를 이웃들과 나누는 기쁨을 누렸으며, 장다리꽃에 쑥갓꽃 피어 벌나비 찾아드는 걸 반겼으나

그들이 주는 기쁨도 컸지만 그 뒤를 따르는 노고 역시 만만찮았다.

수시로 김을 매어야 했고 적당히 물을 주어야 했고, 거기다 냉해를 입지 않을까 심려도 보탰으며 나중엔 감당하기

벅찰 만큼 채소들이 넘치게 무성해져 나눠주기에도 바빴는가 하면, 씨를 맺자 씨앗 거두기도 며칠 걸리는 일이었고

대궁 거두기 등 밭농사 뒷마무리만도 하루 넘는 작업이었다.  

해서 올해는 밭 규모를 약간 줄이기로 했던 터다.

그것도 일이라고 어느새 잔등이 젖고 턱에서 땀방울이 뚝뚝 흙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삽한삽 퍼넘길 적마다 그래서 땅을 판 자리가 넓혀질수록 뿌듯하니 충만하게 차오르는 그 무엇!!!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산행할 때와는 또 다른 쾌감이랄까 보람이랄까, 땀 흘린 뒤 마시는 맥주는 청량감의 극치였다.

어느덧 구획 지은 밭 자리가 거의 다 파 뒤집히면서 마치 섬처럼 남은 부분을 끝으로 정리함으로써 드뎌 작업 완료!

작년에 마치 화전 개간하듯 알뜰히 돌을 주워내고 폐기물들을 제거했건만 올해도 또 나온다.

흙 속에서 시멘트 덩어리며 캔과 플라스틱 스티로폼 유리조각에 대못 등등 잡티들이 튀어나와 모아놓으니 제법.

왜 썩지도 않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함에다 넣는 대신 땅속 깊이에다 적당히 묻어버렸을까.

진주조개는 제 품속에 이물질을 품어 안아야 만이 진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지만...ㅉ

동서양을 막론하고 양심불량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암튼, 일단 현 상태대로 위에 올라온 속흙들을 칠월 태양에 일광소독 시킨 다음 흙덩이를 고르고는 밭이랑을 만들었다.

시월 되면 부드러이 다듬어진 두둑마다 봄에 받아둔 씨앗을 묻으리라.

'낮에는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하니 구름이 그 땡볕을 가려주고 밤에는 강가에 낚싯줄을 드리우니 달빛이 그 운치를 더해주네'

백낙천이 노래하였듯 한동안 은거한 채 한껏 유유자적 즐길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하기사 경운조월(耕雲釣月), 구름을 갈고 달을 낚는다는 선인의 경지야 언감생심이지만.

오늘은 구름 대신 밭을 갈고 달 대신 맥주 한 캔을 낚아서 2015년 칠월 어느 하룻날 작지만 흐뭇한 자족감을 누렸다.

다시금 작열하는 태양, 밭일 마치길 기다렸다는 듯 염제의 횡포는 한여름 다이 여전스러워졌다. 2015



# 사막에서 농사짓는다 하니 캘리포니아 오렌지나 아몬드 농장 얘기겠거니 기대했다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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