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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8. 2024

안개비 속에 고요히 피어난 수련

건조한 캘리포니아 사막 기후대가 몸에 익숙해졌던 걸까.

지난 사월부터 칠월까지 내내 서귀포에 운무인지 해무가 깊어 시야 답답한 데다 습도가 높아 유난히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물먹은 하마처럼 심신이 묵지그레, 자꾸만 기운이 쳐졌다.

섬을 탈출하다시피 서둘러 서울로 내뺐다.

서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그도 아니면 안개와 비구름 무거이 드리워졌다.

서울가면 다녀와야지 했던 북한산 둘레길도 행주산성 트래킹도 그림의 떡이었다.

걸핏하면 우산 들고 호수공원으로 갔다.

때마침 수련이 필 즈음이라 수시로 비에 젖은 모네의 수련공원에 들렀다.




안개비 스며든 호수공원

검푸른 심연 딛고 서서

겨우 목 언저리만 내민 채

수련 고요히 피어있네

잠자는 연꽃, 수련(睡蓮)

낮에는 가슴섶 살풋 열었다가

밤이면 봉오리 져 오므라들기를 몇 며칠

아침마다 꽃자루 끝에 피워 올린 기도

성속을 넘나드는 미태에 홀리다

부끄러이 외로 숙인 고개

여길 봐주렴,

누구와 눈맞춤하려는지

시선 맞닿지 않으려는 저 오연함

수련 그림 수백 점이나 남긴 모네

그에게만 짓는 미소는 아니련만

섬 닮은 동그란 이파리 두둥실

안개 그 위에 방울져

투명한 수정구슬 빚었네

물에 떠서 걷는 요술쟁이 소금쟁이

수련 잎새 사이로 유유자적 산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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