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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5. 2024

극히 미소한 존재이므로

지난 오월. 깊은 상심에 잠긴 교우가 찾아왔다. 그녀의 딸이 곧 뇌 수술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다. 심한 편두통에 이어 안면마비가 와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뇌에서 종양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악성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수술 과정에서 視 신경을 다칠지도 모른다는 데 있었다.



미국에 꽤 오래 살았지만 병소와 관련된 의사의 진단 소견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영어가 무래도 딸렸다. 한국인 의사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속 시원히 들어보면 덜 불안하겠다며 우리 집 큰애와의 통화를 부탁하러 온 그녀. 신경외과 전문의로 근무 중인 큰애와 그녀는 한참 화를 나눴다. 뇌 사진을 직접

 본 것은 아니라도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큰 위험부담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에 그녀는 안도의 큰 숨을 쉬었다. 기미 함빡 쓴 얼굴에 잠시 미소도 어렸다.



많은 교우들의 기도 덕인지 유월 들어 그 분야 최고의 권위 있는 의사와 연결이 닿게 돼 뉴욕에서 수술을 받았다. 뇌 수술 결과는 양호했으나 단 한 가지, 왼쪽 눈꺼풀이 떠지질 않는 거였다. 시력은 정상인데 눈이 깜박여지지 않는다는 것, 한쪽 눈꺼풀이 기능을 못한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달포 넘게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한참 지난 후에 눈 여닫는 기능을 되찾게 됐다. 그즈음, 존재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자주 묵상했다.



나아가 인간이 정녕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과 함께 왜소함을 거듭 절감했다. 각개의 욕망이나 뜻과는 상관없이 한순간 거두어들이면 그만인 목숨. 하여 신비 그 자체인 생명이다. 줄기세포로 복제 양을

 탄생시키는 세상일지라도 여전히, 정교한 설계에 의해 창조된 불가해한 섭리로서의 존재론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제 의지로 눈꺼풀 하나 어쩌지 못하며 머리카락 한 올 키울 수 없는 작고 무력한 존재가 우리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친 뉴올리언스. 멕시코만 연안에서 상륙한 허리케인을 정면으로 통과시키며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로 구성된 시 전체가 속절없이 물속에 잠겨버렸다. 상공 촬영을 한 도시는 마치 베니스처럼 물에 떠 있었다. 시시각각 태풍의 진로를 밝혀내고 제방을 높였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 고스란히 당하고만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조그만 존재던가. 유럽풍의 오래된 고도로 미시시피강 어귀 풍광 아름다운 뉴올리언스. 재즈의 고향이라는 낭만 어린 도시는 폭격 맞은 듯 풍비박산이 난 채 참담한 모습이었다.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는 허리케인의 내습에 따라 긴급 소개령이 내리자 백만 이상의 주민이 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라 고속도로 정체가 심각하다고 뉴스는 전했다. 초반부의 대피상황은 순조로웠던 반면 그 이후 더 큰 문제가 잇따라 발생했다. 치안 공백을 틈탄 약탈과 방화로 무법천지가 따로 없는 판에 여기저기 떠있는 시신, 도저히 미국 땅에서 생긴 일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저런 일이… 숱한 이재민과 인명피해 거기에 어마어마한 경제손실을 입힌 험한 물난리였다. 역시 아무리 거들먹거리며 잘난 척 나대봐야 하늘의 재채기 한 차례, 콧김 한 번만으로도 대번 무릎 꿇고 마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인간. 잘난 미국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아이디를 ‘미소’로 쓰는 친구가 있었다. 중년도 지나 초로에 접어든 나이에 소녀 취향의 미소라니? 한자를 쓰지 않았으므로 얼핏 방긋 웃는 미소를 떠올렸으나 기실은 아주 작고 하찮다는 의미의 미소였다.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것. 아이디가 참 이쁘네요, 미소가 아름다우신가 봐요, 하는 오해 아닌 오해가 일자 그녀는 누누이 설명을 해주다 못해 처음과는 달리 아예 한자로 微小라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더 이상 주를 달 필요가 없게 됐다. 미소란 성서에 언급된 대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표현이자 창조주 앞에 아주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란 뜻.



내 노력과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패기만만하던 젊은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치기 만만이 었는가를, 오만방자했는가를 깨닫게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하여 나이 들수록 하늘의 뜻에 보다 겸허로이 고개 숙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 들머리, 언제 비바람 험했냐는 듯 시침 딱 뗀 채 맑게 갠 창천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를 생각한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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