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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23. 2024

휘트니 계류 여울지는 곳으로

산이 소리를 낼 때에는

쉿, 조용해라

오직 목소리 하나만은 내 혼백과 맞바꾸겠다는 일념으로

깊은 산중에 들어온 소리꾼 하나가

언제 트일지 모르는 소리를 위해

목구멍이 찢어지고 갈라지고 피를 토해가면서,

그 피로 나뭇잎을 붉게 물들여가면서

으엑! 으엑! 처절하게도 목이 죽은 소리를 저리 내고 있지 않느냐

범부의 소리를 죽이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심심해서라든지 지겨워서라든지,

아무튼 생각 없이 산 구경이나 즐기러 온 팔자 좋은 이들이라면

별일 아닌 듯 말없이 그냥, 그냥 가거라

그저 못 본체하고 지나가거라


곽진구 시 / 산이 소리를 낼 때에는 -부분-


100도 넘나드는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립니다.


 이글거리는 불볕 사막기후대 뒤로 하고 말 그대로, 도망치듯 피서를 떠났네요.


물론, 빙산 마주하는 알래스카 크루즈도 시원하겠고요.


파도 하얗게 부서지는 태평양 바닷가를 찾아도 상쾌할 테고요.


혹은 禪에 든 산 흔드는 폭포 아래 자리 잡아도 서늘하겠지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갈매빛 짙어가는 숲그늘 반석에 앉아 물끄러미 아니 그보다는 무심히 건너다본 계곡,


청류 여울지는 물소리에 취했던 며칠 전 하루가 최고 선택의 피서였더라구요.

대단한 폭포는 아니나 벼랑 타고 내리는 새하얀 물줄기는 눈사태가 쏟아져 내리는 듯했어요.


에베레스트나 몽블랑 북벽 다큐 혹은 영화 <K2>에서나 본 어마무지한 눈사태.


그런 눈사태라면 눈골짜기 크레바스에 아득히 묻혀버려도 좋으련.


존재 하나 영원히 사라져도 좋으련.


한순간에 영영.....

얼른 시선을 아름드리 쭉쭉 뻗은 송림에 던집니다.


그리곤 마주한 산의 정기 깊이 호흡하듯  숨을 들이마셔보았습니다.

청청한 숲 향기 스며들면서 세상 먼지는 정화되고 웬만한 상흔은 저절로 치유가 될 것 같았답니다.

그때, 청남빛 관을 쓴 깃털 고운 산새가 바로 곁 나뭇가지에 날아와선 뾰로롱 노래를 부르더군요.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錄水)도 절로 절로..."

고시조 그대로 무위자연(無爲自然) 벗해 폭포소리 들리는 피크닉 에어리어에서 도원경 노니는 동안, 시간은 물살 따라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인생 소풍길이 날마다 오늘만 같다면 복에 겨워 천지 모르고 깨춤 출지도 모를 일.

휘트니 포탈에 닿았을 때만 해도 해가 쨍쨍해 폭포 아랫녘에서 땀을 식히며 탁족도 했는데요.

차츰 흰 구름 무리 지어 내달려가면서 묵직해지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전세 내다시피 Lone Pine Creek Falls 독차지하고 유토피아에서의 한나절 누린 행복한 시간.

서둘 것도 없이 느긋하게 오른 귀갓길, 삼빡하게 바람 잘 쐬고 집에 돌아오니 다섯 시도 채 되지 않았더군요.


그렇듯 올여름 몇 차례 더 휘트니 아랫동네 숲에 들어 계류소리에 잠겨보려 합니다.


더러 손도 담가보고 세수도 푸푸 하고요.


쉿~못 본체하고 그냥 말없이 지나가라 시인은 그랬지만요.


(귓속말로 하자면...) 신선놀음으로는 그저 그만, 천상낙원이 따로 없더라니까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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