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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23. 2024

완벽피서, 천 미터 고지 돌오름 숲길 청량감

돌오름길

두 번째 한라산 둘레길을 걷는 날.

낯익은 천백 도로 굽이굽이 올라가 영실 입구 지나자마자 퐁낭버스는 멎었다.

S자 곡선길 따라 탐라대학 사거리와 거린사슴 전망대와 서귀포 자연휴양림 쓱쓱 스쳐 달려와서다.

길 건너편 숲에 한라산 둘레길 뚜렷한 표식이 마중 나와 서있었다.

어제 설명들은 대로 한라산을 머리띠처럼 둘러싼 임도와 표고버섯 농장 운송로는 시멘트로 훤히 닦여 있었다.

그 길을 십분 여 걸어가자 비로소 반반한 흙길이 드러났다.

18임반길 따라 1.6km쯤에 농장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돌오름길로 접어들면 된다.

숲에 들자 서늘한 기운이 감돌며 아랫녘과는 벌써 기온 차이가 완연히 났다.  

양편으로 서어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키대로 자라 하늘을 가렸으며 빽빽하게 군집한 조릿대는 유달리 키가 컸다.

녹음 우거진 낙엽수림 지천이라 가을 단풍 터널 아주 볼만할 거 같았다.

숲 새새로 나타나는 계곡은 바위마다 이끼 덮인 채 깊고도 아스라했다

이 계곡은 색달천으로 도중에 중문천과 만나 세 왕창 불려 내리 치달리면서 천제연폭포 힘찬 물줄기를 만들 터다.

화산암 지대인 제주라 계곡 대부분이 웬만한 빗물은 곧장 스며들어 건천 되기 십상이다.

요즘은 장마철이므로 그나마 계류 약간씩 흐르거나 바위에 고여있는 물웅덩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상세한 안내 지도가 기다리는 삼거리 쉼터에 배낭 벗어놓고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단체로 스트레칭부터 했다. 


오늘도 13km 정도를 걷지만 동백길과는 달리 도로 사정이 좋아 소요시간이 단축될 거라 해서 여유 부리며 걸었다. 


동백길은 숲 울창하고 길 평탄하지만 돌 너덜 길이 잦아 자칫 발목 삐끗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그에 반해 돌오름길은 이름에만 '돌'자가 들어갈 뿐 거의가 흙길이라 걷기 훨씬 편하고 안전했다. 


산길 오르는 첫째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 경우 자연과의 접촉, 데크길 아닌 흙길을 밟고 싶어서다. 


흙으로 빚어진 육신 흙으로 돌아가는 여정 너나없이 걸어가는 우리는 나그네. 


아마도 '흙'을 연모하는 것은 본향에 대한 자연스러운 향수의 발로가 아닐지. 


어제보다 참가 인원수는 적었으나 둘레길 동행할 도반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였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젊은 직장인이 대부분이고 은퇴한 시청 공직자도 있었으며 서포터즈도 한 명 동참해 반가웠다. 


여름휴가를 제주에서 보내며 한라산 둘레길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지분들은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다. 


어쩌면 삶은 나날이 체험학습의 현장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배우되 무겁지 않고 가비얍게, 그래서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거리/꺼리' 찾기, 이에 필요한 게 지혜. 


피서차 제주에 왔으니 푸른 바다도 좋겠지만 선탠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는 이들 외엔 산그늘이 더 시원하니 쾌적해 좋다. 


뜨거운 해안가보다 기온이 5~10도 낮은 천 미터 고지의 숲길 찾아 제대로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면역력 강화에 좋다는 편백나무 숲 밀밀한 서귀포휴양림 전 구간도 걸으니 일석이조 효과를 얻겠다.


한라산 둘레길 걸어보니 과연 절로 엄지 척!

산길이지만 올레길 걷는 길이 그러하듯 쉬멍, 놀멍, 걸으멍, 여유만만하게 걸을 수 있어서 강추!

칠십 중반이 그러하다면 누구라도 도전해 볼 만한 코스가 아니겠는가.

헉헉 가쁜 숨 몰아쉬며 비 오듯 땀 쏟는 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으니까.

중간중간 알맞은 장소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시간도 주최 측에서 충분히 배려했다.

따라서 일고여덟 시간을 걸어도 일행 가운데 중도 탈락자나 대열에서 낙오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산행 경험이 적거나 걷기에 자신 없는 이라도 오래 견딜 수 있는 지구력만 있다면 노 프라블럼.

쉽게 싫증 내는 아이들은 긴 시간 걷는다는 게 무리, 그 외 모두에게 열려있는 한라산 둘레길이다.

다만 혼자서 사색의 숲길 향유하고 싶더라도 단독으로 걷는 데는 리스크가 따른다.

일단 고산지대이며 깊은 숲속길이라 멧돼지 들개가 출몰하기도 하고 갑작스런 폭우로 계곡이 잠길 수 있으므로 요주의.

수풀 워낙 우거진 곳이라 자칫 길을 잃어 조난이라도 당한다면 허둥지둥 숲 속에서 헤매게 돼 큰 사고로 이어진다.

따라서 뜻밖의 낭패 겪지 않으려면 단체로 움직일 것을 권한다.

또 한 가지 문제를 짚어보자면 자차를 이용할 경우 다시 원래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방법이 여의치 않다.

여러 시간 걸어 지친 상태로 빤한 찻길 따라 뚜벅이로 제자리 돌아오려면 젠장~소리 절로 나올 게다.

알다시피 산간이라 택시 콜 이용도 어려워 대략 난감 상황에 봉착한다.

해서 좀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걸리적거리는 일 없고 부담감도 던다.

서귀포에서 천백고지 가는 버스는 일단 중문 사거리에서 한 시간 단위로 배차되는 240번을 갈아타면 된다.

밤나무 닮은 졸참나무, 노인 피부 같은 서어나무, 아가 손바닥처럼 이쁜 단풍나무숲 걷다 보면 표고재배 삼거리에 이른다.


가이드가 들려준 바에 의하면 아주 참하게 생긴 진도 백구가 파수를 보는 표고농장이란다.


참나무 자생지인 산간 노지 이용해 표고를 재배하는 농장이라 인적 없는 적막강산이다.


사람들이 거주하며 지키지 못하다 보니 공들여 키운 버섯을 잃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농장마다 표고 탈취범(도둑은 사람도 있지만 고라니)의 접근을 막기 위해 덩치 큰 맹견을 키운다는데 백구도 그중 하나.


이날 백구는 우리 일행이 농장을 한참 기웃거려도 종내 나타나지 않았다, 별일은 없겠지....


짧은 구간의 편백 숲 지나자 다시 길 가로막는 계곡.


골바람 시원한 하천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 취한 뒤 숲길 오르니 이번엔 묘하게 생긴 용바위가 우측에서 꿈틀댄다.


고개 치켜든 용머리 부분처럼 앞쪽엔 큼직한 암석 덩어리, 이어서 길게 따라붙는 바위 군이 용 몸체와 흡사하다.


용바위에서 잠시 멈칫거린 다음 곶자왈처럼 어수선한 숲길 걷다 보니 이번엔 판상절리대 안내문이 나온다.


경사지 내려서면 바위 멋대로 널브러진 기나긴 하천이 펼쳐진다.


화산지형에서 특징적으로 관찰되는 절리는 두 가지로 대포동에서 본 주상절리, 하나는 이곳 같은 판상절리대다.


수평으로 얇게 절리(갈라진) 된 판상절리는 주로 하상에서 나타난다고.


계곡 흘러내리는 낭떠러지 못 미쳐 판판한 조면암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한다.


식사에 앞서 초입부터 발가락 탈이 난 미스 진의 물집 생긴 새끼발가락을 인솔자가 간단히 처치해 주었다.


이날 점심 메뉴는 샌드위치, 재료 신선하고 깔끔해 식사를 마치고 나서 쉬는 동안 동행들과 둘러앉아 환담 나눴다.


샌드위치로 새 힘 충전하고 싱그러운 숲길을 걸었다.


여전히 양켠으로 녹음방초 우거져 있으며 잊을만하면 이끼 잔뜩 낀 하상 계곡이 모습 드러냈다.


활엽수림 침엽수림 짙푸른 산길은 연달아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죄다 들 지친 기색 없이 줄지어 설렁설렁, 얽히고설킨 세사 잊고 한가로이 걸어들 간다.


이제 한 모롱이만 돌면 한라산 둘레길은 마무리된다.


편백숲길 한참 굽이 돈 다음 양봉장이 나오면 곧 둘레길 끄트머리에 이른다.

언제나 길의 끝은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점.

맞은편에 서귀포 자연휴양림이 나선다.

저마다 연둣빛 눈엽 움트는 신록의 숲 풋풋해 눈부시던 오월의 휴양림이었다.

두 달 만에 찾아온 숲은 이제 녹빛 정장 차림을 한 한창때의 청년으로 변했다.

초록숲은 신선함에 더해 의연하고도 당당하니 멋진 포스를 풍긴다.

서귀포 자연휴양림 숲 사이로 난 데크길 산책로를 지나고 좌우로 들어선 편백숲 야영장도 스친다.

여기서부터 확연히 기온차가 난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해발 900미터 급에서 노닐다가 500미터 급으로 하강했으니 신선놀음도 끝.

좀 전까지의 푸르른 청량감이 사그라들며 잔등에 찐득한 땀부터 배어났다.

제아무리 피톤치드 뿜어내는 숲이라도 후덥지근한 날씨라 전신이 이에 반응해 묵직이 쳐진다.

게다가 기상까지 변덕을 부려 시야가 자꾸만 흐려진다.

그래도 최종 목적지인 법정악 전망대를 향해 우리 일행은 걷고 또 걸었다.

역시나~ 전망대 올랐으나 바다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없다.

서귀포 칠십 리 해안 따라 범섬이 바로 눈 아래 떠있고 서쪽으로 산방산까지 보이는 전망터였는데.

하건만 사방 천지 구분은커녕 해무인지 안개비인지 누리 온통 부옇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아무렴 어떠랴.

하루 진종일 자연을 만끽하며 싱그런 숲 향기 속에서 사슴 되어 거닐수 있었음에 그저 무진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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