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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28. 2024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가마골소극장에서 다큐 영화를 보았다.

지난해 울주에서 열린 제3회 세계산악영화제 출품작이라 한다.

일반 상업영화가 아닌 여든넷 할머니의 성지순례길을 담은 89분짜리 로드무비다.

동행자는 마흔아홉 아들로 <카일라스 가는 길> 영화를 찍은 감독이다.

서른 중반에 혼자가 되어 자식만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래 길을 걷고 싶었다는 아들.

어머니가 평생을 의지해 온 불교 성지가 있는 히말라야에 모시고 가면서 지구의 아름다운 길을 보여드리고 싶었으며 순례길에서 한평생 살아오면서 응어리진 어머니의 한과 상처가 치유되길 바랐다는 아들.    

카일라스로 향하는 노정은 실상 팔순도 지난 노인에게는 무모할 정도의 험로이다.

추위와 고산증에다 종잡을 수 없이 불확실한 날씨 또한 험하기 그지없다.

이 다큐를 찍느라 첫 해외여행을 한다는 할머니는 그러나 혹한과 4천 미터 이상의 고원에서의 고산증세 이겨내고, 흔들림 없이 강단지게 60일간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다.

깡말랐으나 등허리 반듯한 할머니는 눈빛이 그러하듯 총기 맑고 의지도 체력도 강하신 분이며 심신 두루 건강하신 어른이시다.

육이오 당시 중학생이셨다는 할머니는 경륜에 따른 지혜로 삶을 깊이 관조하기에, 길에서 만나는 돌멩이며 들꽃이며 낙타며 강물이며 구름이며 무엇 하나 소홀히 대하지 않고 존칭으로 성심 다한 대화 나눈다.

허허벌판 황야에 홀로 우뚝 선 바위와 나누는 얘기는 지난한 세월을 건너온 당신의 고된 인생사 고백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최종 목적지에 이르러 깊이 합장배례 올리는 어머니 눈에선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응어리도 흘러내린다.

신의 거처인 영혼의 산 카일라스는 티베트인들에겐 우주의 중심으로 부처의 화신이 자리했다고 믿는 만년설산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수정’을 의미하는 카일라스는 다이아몬드처럼 각 매끈하게 깎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해발 6656m 높이의 카일라스 주위를 해자처럼 감싼 남빛 호수들에서 갠지스강 인더스강이 발원했다고.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성지이자 영혼의 성소로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수미산이라 부르는 산이다.

https://youtu.be/rIxC9ItF_Og?si=BpjXoUXo5cJ4jGux


영화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설원에서 시작된다. 

황량한 몽골평원을 가로지르고 낙타 쉬다가는 고비사막을 넘어 오지 중의 오지 파미르 고원을 지난다.

계속해서 타클라마칸 사막 거쳐 히말라야 연봉들 마주하며 자갈길 달려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여정이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또는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담아낸 영화다.

초반에는 호기심으로 출렁였고 중반에는 가슴 쿵쾅거렸으며 마지막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눈가 매워졌다.

비감토록 신비로운가 하면 무작정 광활하기만 한 자연 풍광은 수수만년 그 자리 의연히 지키며, 때론 외경감을 때로는 막막감을 안겨준다.

세상 곳곳 어디에나 사람들은 살아간다.

몽골 유목민 이동천막 안에서의 일가족 일상이 어머니 가슴에 따스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척박한 대지에서 그래도 땅뙈기 일구며 삶을 이어가는 모습들 숙연히 바라보는 그니.

사람 구경은커녕 탈것조차 거의 지나지 않는 말 그대로 적막강산, 나무 한그루 없는 허허벌판에도 세상과 이어지는 도로가 나있다.

그 아득한 소실점 저 끝에서 어쩌다 드물게 자전거 순례객들이 나타난다.

한눈에 봐도 튼실한 건각을 지닌 대체로 젊은 서양인들, 얼굴 까맣게 탄 홍콩에서 왔다는 앳되지만 강인해 뵈는 아가씨도 있다.

그녀는 끝 모르게 이어지는 길 그러나 언젠가 티베트에 데려다줄 도로 위를 일 년 예정으로 달리느라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다.

할머니는 손녀 같은 그녀가 안쓰럽고 염려돼 애가 쓰인다.

잠은 텐트에서 자면 추우니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거라, 세 끼니 꼭 챙겨 먹거라, 혼자 다니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다니거라, 사탕을 쥐어주며 당부말씀이 길다.

아수라장인 아프가니스탄 바로 지척거리에 사는 키르기스스탄 아이들을 보자니 그저 안타까워 기도가 자연스럽게 따른다.

헤어질 땐 꼭 품에 안아주며 건강하게 자라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되라며 등 토닥여주다 품에 꼭 보듬어 주는 할머니.   

그럴 땐 영락없는 여늬 촌할머니의 인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옳음에 대한 신념에 있어선 대쪽 같은 결기 남달라 보인다.

낙조 바라보면서, 광야 휘젓는 바람소리 들으면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 지켜보면서 할머니는 지나온 인생 여정 반추해보기도 한다.

마침내 그분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과 푸른 새벽을 접해볼 수 있다는 카일라스에 닿았다.

그 머나먼 길을 가면서 할머니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근원적 질문의 답을 들으셨을 것 같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나도 그 길에 서보면 별이 쏟아지는 광막한 우주에서 들려오는 그 말씀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귀가 열릴까.

고집스러운 자아를 깰 수 있는 처방전 혹시 어느 돌틈에 숨겨져 있는 그 비책 찾을 수 있을까.  

https://youtu.be/zIADpWevU3Q?si=m4L2vO0pJOeIalqE


아들과 함께 더없이 귀한 효도여행으로 불교 성지 카일라스를 다녀온 할머니는 여든이 넘으신 분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감독이 쓴 각본대로 한마디씩 하는 대사려니 짐작했을 정도로 할머니 말은 조리 있고 사려 깊었다.

연기라 하기엔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말투로 미루어 어쩐지 예사 할머니는 아니다 싶었던 대로였다.

그럼 그렇지, 평범한 고령의 촌부 소박한 꿈으로야 부처님 성지순례로 룸비니라면 모를까 카일라스란 곳을 갈 생각조차 할 수 있으랴.

봉화 오지 산골짝에서 다큐작가가 나왔다는 것부터 특이했는데 아드님인 정감독은 문화인류학자를 꿈꿔 캐나다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더욱 놀라운 것은  84세인 할머니는 당시 경상권의 명문인 진주여고를 거쳐 수도사범을 나온 인텔리켄치아.

지금은 세종대로 통합되며 이름 사라졌지만 수도여자사범대학은 지방의 수재들이 가던 중등교사양성 학교였다.

그 수도사범을 나온 양반이니 사용하는 일상 어휘부터 달랐고 총기 어린 맑은 눈빛이야말로 지식인만이 가질 수 있는 형형함이었다.  

아래 결혼식 사진을 보나따나 63년에 현대식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는 것만도, 하객들 차림 역시 그 시대론 최고 수준의 공직에 있었음이 자동증명된다.

수도사범 출신이면 응당 교사의 길을 가게 마련인데 농촌지상주의였던 이분은 시험을 통해 농촌지도소 공무원이 되었다.

지금은 농업기술센터로 바뀐 농촌지도소는 그 무렵 4H클럽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농촌 젊은이들에게 지, 덕, 노, 체를 슬로건 삼아 주체적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도록 이끌어 나갔다.

초록 클로버 잎새가 상징인 4H클럽에서는 해마다 농촌경진대회를 여는 등 지방활동으로는 매우 활발했다.

그때 만국기 달고 화려하게 열린 개량종 송아지, 대형호박, 우량 볍씨 같은 전시회는 처음 접해본 구경거리라 마냥 신기했던 초등 무렵 내 기억이다.

상록수의 채명신처럼 농촌계몽운동가로서 선도적 위치에서 농촌지도사 역할을 한창 펼쳐가느라 그녀는 아마도 결혼적령기를 놓쳤던 모양.

뒤늦은 결혼을 하고 서른일곱에 혼자가 돼, 아직 어려 엄마만 찾는 아들을 보자 자식 보듬겠노라 과감히 좋은 공직자리 버리고 고생길로 접어들었다.

남매를 키우며 온갖 간난신고를 겪은 어머니상 익히 보아왔기에 그 아들은 고초 속에  늙어버린 어머니 호강 한번 시키려 어렵사리 모시고 간 순례여정을 다큐로 만든다.

그렇게 태어난 <카일라스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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