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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보다 해몽? 그런데...

by 무량화

간밤 꿈이 상기도 선연합니다

뜬금없이 친구가 귀고리 한쌍을 주면서 어서 걸어보라 채근을 하데요

귀고리는 보석류가 박힌 귀금속은 아니었지만 첫눈에 심플하니 깔끔한 디자인이 맘에 쏙 들긴 하였답니다

안 하던 짓 하려니 왠지 쑥스러워 주저하다가 일단 선물에 대한 예의상 귀에 걸었지요

약간의 무게감도 기억납니다

평소에 귀고리를 착용하지 않던 터라 여러 사람의 시선이 느껴져 마음 쓰이던 것도요

성격상 장신구를 별로 탐하지 않기에 별스럽지 않은 귀고리에도 자꾸 신경이 쏠렸던 가봐요

내가 지닌 귀고리라고는 오직 진주귀고리 하나뿐으로 뒤에서 나사를 돌려가며 조이는 형태이지요

겁이 많아 여직 귀를 뚫지 않았는 데다 금속 알러지가 있어 아무 장신구나 할 수도 없고요

헌데 느닷없이 웬 귀고리 꿈이람?

꿈이란 평상시 생각해 온 일들이 잠잘 때에 꿈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즉, 생각한 것이 곧 꿈이 된다잖아요

그렇듯 꿈은 내재한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데 무슨 예시일까?

아침 내내 꿈의 의미가 궁금해집디다

사실 해몽은 미신이라며 터부시 하라지만
창세기에도 꿈의 사람 요셉의 기나긴 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궁금하면 못 참는 지라 급한 일감부터 대충 추스른 다음 검색을 해보았지요

오잇~ 일단 길몽이라네요

거의 전부가 긍정적인 내용들이라 마구마구 흐뭇해집니다

매사 안정적이 되어 심신의 건강을 되찾을 것이며 승진, 취직, 계약의 성사, 또는 본인의 목적한 바가 이루어진답니다

꿈 덕에 의외로 집 매매가 성사되려나?

절기상 접어둔 일인데 또 모르지요.. 흠흠~

그러면 룰루랄라 캘리포냐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을 일이 생기거나
타인에게 부러움을 살 일이 있을 것을 암시한다니 그야말로 걸기대 만땅임다

누가 아나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을 수도 있고요

두루뭉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하듯이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하는 일 역시 노력 이상의 성과를 누리게 될 것임도 시사한다네요

불로소득이나 바라는 염치코치 없는 사람은 아니나 붕우를 만난다면 그 아니 좋을까요

나아가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한 옵션이나 수당이 생겨날 수 있음을 뜻한다니
뒷짐 지고 감나무 아래서 입만 벌려볼까요

거기다 흐미~~ 고목에 꽃 피려나, 태몽일 수도 있다네요

우짜꼬나~ 연인이 생길 것을 나타낸다니 로맨스그레이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망신살 뻗칠 일 ㅎ

하오나 꿈이란 건 절대적으로 믿을 게 못 되는 그저 어디까지나 꿈일 뿐 저녁에 개꿈 꿨다는 소리나 듣지 않아야 할 텐데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라도 세상의 소리와 말을 바르게 제대로 들으라며 상징적으로 귀와 연관된 꿈을 꾼 것일까요?

귀고리를 걸었던 귓불이 갑자기 근질댑니다, 마치 동상 걸린 듯이요.

11/30/2013의 일기 속 바람대로요.


진짜 신기하게도 바로 이튿날인 12월 1일 집을 보러 왔던 이탈리안이 구매의사를 보였고 며칠 후 오퍼가 들어왔답니다

한국과 달리 주택매매 절차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미국이라 최종단계까지 맘 놓을 수가 없었는데요

그 후 일이 순조로이 진행돼 이듬해 이월 동서 대륙횡단 이사를 할 수 있었답니다

미신 같지만 놀랍게도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거지요


전말은 이러해요


가을이 시작되던 지난 시월 무렵 리얼터에게 집 매매를 부탁했더랬어요

주택경기가 약간은 깨어났다 하나 여전히 뉴저지는 미동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답니다.

은퇴를 한 친구 중엔 지니기 버겁게 일거리만 많은 큰집 처분하고 따뜻한 플로리다나 텍스 저렴한 바로 이웃 델라웨어주로 이사를 고려 중인 경우가 적잖았는데요.

진작부터 집을 내놓아 보았지만 주택시장이 너무도 한산해 싱거이 거두어들인 케이스가 여럿이었어요

그만큼 경직된 마켓임에도 일단 이사 가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집을 마켓에 올렸답니다.

동부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듯 환경 좋고 학군 좋아 한국인 선호도가 높은 지역인 데다
대도시와 연계되어 있는 체리힐은
특히 텍스가 아주 높아서 만여 불은 보통일 만큼 세금이 쎈 곳인데요.

웬만한 규모의 집을 지녔다 하면 거의가 한 달에 천불 안팎의 세금을 꼬박꼬박 물어야 했지요.

주택 가격 대비 텍스가 엄청 높은 곳으로 소문난 체리힐은요.

LA 오렌지카운티 같은 곳이라면 여기 집 팔아선 근처에 명함도 못 내밀 판임에도
암튼 세금(특히 교육세)에 치여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여기였어요.

손주 녀석을 데리고 있을 적엔 그런대로 감수하고 살았지만 이젠 더 이상 여기 머물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진작부터 캘리 쪽으로 이사 갈 생각은 여러 번 했었답니다.

네 명의 가족이 산지사방으로 떨어져 한국과 미국, 미국 내에서도 동과 서로 흩어져 사니
한 곳이라도 뭉쳐지고 싶은 데다 더구나 추위를 심하게 타는 나로서야 따뜻한 지방이 선망 대상 1순위일밖에요.

그리하여 의논 끝에 집을 내놓게 되었던 겁니다.

집 보러 오는 손님맞이 준비차 외관 단장도 하고 차양도 바루고 수영장 물을 다시 갈고
구석구석 손볼 곳을 정비하는 등 집안팎을 깔끔스레 꾸미고 다듬었네요.

가을이 깊어지며 단풍 곱게 물들고 이어서 낙엽이 우수수...

아침마다 낙엽 긁는 일은 예삿노동이 아니었어요.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앞뜰에 낙엽 분분히 날리며 어수선하다면 어쩐지 황량스러운 느낌부터 들겠기에 앞이 훤하도록 날마다 일과 삼아 쌓이고 쌓이는 낙엽을 쓸고 갈퀴로 긁어댔지요.

앞 뒷마당의 단풍나무도 거목인 데다 집 입구 양편에 보초이듯 선 가로수는 잎이 넓적한 아름드리 떡갈나무.

하여 진짜 팔뚝 굵어질 정도로 부지런히, 몸살 날 정도로 열심히, 낙엽과의 전쟁을 매일 치르다시피 했네요.

그 중간에 두 사람이 집을 보고 갔으나 의사가 없는 듯 가고 난 뒤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은근 조급증이 났지만 별도리 없는 노릇이었어요.

과일이니 전에 펴놓고 팔 것이며 떡이니 이고 나가 팔 것인가, 집이야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는.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고 오로지 하늘에서 도와주시기만을 기도했지요.

세 번째 가족이 왔을 때는 내심 명년 봄을 기약하며 맘을 느긋하게 먹기로 하고 있었던 12월 첫날이었어요.

전날 밤 꾼 꿈에 슬쩍 희망을 걸면서도 젊은 이탈리안에게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더랬어요.

부부가 집 안팎을 알뜰히 둘러보고 간 다음다음날 일찍이 그들로부터 오퍼 연락이 들어왔답니다.

한차례 가격 조정을 거친 다음 9일 날 계약이 성사됐으며 1월 말로 세틀먼트 결제날도 정해졌고요.

영어가 모자란 우리 대신 중간 통역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딸이 도맡아 백인 리얼터와 e메일로 모든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경기 안 좋은 요즘 집 팔기가 정승 벼슬하기보다 더 어렵다는데 이 한겨울에 집이 팔리다니 기적이라고까지 하면서 친구들마다 부러워했답니다.

더구나 손해 없이 값 제대로 다 받고 팔렸다는 점에 놀라워들 했네요.

말 설고 물 설은 미국 땅에 와서 만으로 13년을 맘 붙이고 살며 정들었던 이웃들 교우들.

떠나게 됨을 서운해하면서도 딸내미 가까이 간다니 잘 된 일이라고 다들 축하해 주었지요.

인스펙션도 아무 하자 없이 순조로이 마치고 감정절차, 소방검사도 매끄러이 지나갔어요.

모든 게 순항이었습니다.

하긴 네 시간 넘도록 인스펙션을 어찌나 꼼꼼스레 하는지 지루하고도 초조할 정도였지요.


만일 하자가 발견되면 완전무결하게 정비나 보수를 마친 뒤 재차 인스펙션을 받아야 하므로 꽤나 긴장되는 시간이었네요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도 검출, 크게 이슈화된 라듐 검사를 거치는 동안은 괜히 조바심냈더랍니다.

다행히도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감사 기도가 절로 바쳐지더군요.

중간에 바이어 측의 모기지 승인이 지체되는 바람에 1월 말의 결제일이 얼마간 미뤄졌긴 했지만요.

이월 들어 예정대로 순조롭게 크로징을 마쳤습니다.

동서로 대륙을 횡단하는 이삿짐이라 미리 미주 대한통운 견적을 받아두었고 이사 약속 날짜도 잡혔지요

2월 24일이면 이 집과도 안녕, 아쉬운 작별입니다.

까닭이었을 겁니다.

근자 들어 유달리 주변의 사물들에 정이 깊이 쏠리던 연유는...

한 번 더 눈길 그윽하니 주게 되고 보이는 것마다 한차례 더 쓰다듬게 되는가 하면
우리 이웃이었던 동네에까지 애착이 더해졌고 새삼 살뜰한 사랑마저 느끼게 되더군요.

그래서 며칠 전, 혹한 추위에 곱은 손 마다하지 않고 마을 설경을 디카에 담았고요.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적에 대뜸 아, 바로 이 집이야~하며 정겨이 이끌리게 한 현관 옆 상록수 호랑가시나무며 체리나무, 단풍나무와 아끼던 꽃나무랑 화분들 뿐인가요.

홈통 물받이 주변에 깔린 돌멩이 하나조차 유정물이듯 애틋해지더군요.

언젠가는 여기서 지낸 그간의 흔적들 모든 게 그리움 되는 날이 오겠지요.

두고두고 그리울 체리힐의 풍경들 교우들 친구들.

그리움으로 간간 추억의 앨범 그 한 페이지 펼치게 될 체리힐 weather vane 동네랍니다. 2014


현관 옆 지붕에 서있던 weather vane 상징인 weather 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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