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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18. 2024

슬며시 가을 기별

찌르르 찌르르 또르르.

간밤에도 귀또리 소리가 들렸다.

설마 12층까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라구....

긴가민가했는데 틀림없는 귀뚜라미 소리였다.

"귀뚜라미는 시원한 소리를 보내오는구나, " 서거정은 <가을 생각>에서 이리 노래했다.

백중 앞둔 달님 구름 사이로 빠르게  흐르는 시각, 귀또리 소리는 시원하다기보다 서늘하게 들렸다.

아무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도 닷새 앞이다.

암만 기갈 센 염제의 횡포인들 계절의 순환이야 어쩌려고.

낮에는 표선 토산 쪽으로 꽃구경 갔다가 고추잠자리 떼를 보았다.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표선 이 리조트 후원이나 색달 쉬리의 언덕을 찾곤 한다.


철 따라 게서 각시붓꽃 현호색 비비추꽃  원추리꽃 도라지꽃 해바라기꽃 수레국화 맥문동꽃 망초꽃 금계국 코스모스 한가득 너울거려 아주 장관 이루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즈음 수숫대 꼭대기에서 맴돌던 고추잠자리.

가을의 전령사인 고추잠자리다.

"한 떼의 고추잠자리 왔다 가니/높아지는 하늘 마른 햇살에 가을이 생겨나네."라고 조선조 이규상은 읊었다.

더위를 말끔 처분한다는 처서가 잇따라 다가온다.

밤 되면 선선한 바람 일렁대 차렵이불 끌어당겼다.


틀림없이 폭염도 한풀 꺾일 터이다.

기분이 그럴싸해서인지 표선 앞바다 물빛도 좀 서늘해진 거 같았다.


바다 바라보며 물빛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다.


연신 밀려드는 해풍에 폭염도 무색해졌다.


고추잠자리/권경업



신밭골 하늘 맑은 것은

고추잠자리들, 고 작은

그물같은 날개 파닥여

해 질 무렵까지

제 몫의 세상

거른 때문이네


아~저 투명한 시인의 시심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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