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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1. 2024

자이언캐년 신록의 강

트래킹


무엇이 먼저였을까.

천사가 신들의 정원을 꾸미려 내려와서 장쾌한 산세 사이로 굽이굽이 순결의 강을 내었을까.

변화무쌍이 전개되는 협곡 사이를 흐르는 Virgin River의 비경에 취해 하늘의 천사가 하강했을까.

장엄 무비 위풍당당한 바위산이 빚은 단애 절벽 자이언캐년을 찾을 적마다 번번이 드는 의문이다.

두 번은 관광버스에 실려 차를 탄 채 휘리릭, 말 그대로 주마간산 격으로 거죽만 훑었다.

두 번은 대자연의 민낯과 속살을 대할 수 있는 자유롭고 여유 있는 trekking , Zion Canyon은 네 번째 걸음으로 이참에 엔젤스 랜딩을 걸어보고자 하였다.



지난여름 자이언 Narrow 물길 트레킹에 나섰다가 도중에 국지성 폭우를 만나 혼비백산 쫓겨 내려올 때 양쪽 절벽에 맞부딪쳐 공명 효과까지 내는 천둥소리야말로 압권이었다.

지금은 압권이란 표현이 나오지만 겪을 당시는, 몰아치는 급류와 저체온증으로 공포 그 자체였다.

이번은 집중적으로 엔젤스 랜딩을 트레킹 할 예정으로 The Grotto에서 셔틀을 내려 보무도 당당히 출발했다.

그러나 버진 리버 강가의 신록에 그만 홀려서, 걷고 싶던 지그재그 길도 다 잊은 채
한 시간여 만에 당도할 수 있는 폭포 아래 작은 호숫가에서 쉬다 내려와, 내동 산 아래 자락만 서성거렸다.   

기운찬 직선으로, 때로는 S자를 그리며 유연히 흘러내리는 버진 리버만을 물리지도 않고 바라보았던 것은, 매혹적인 신록의 강이 아득히 잊혀가는 내 봄날의 먼 추억들을 하나씩 깨어나게 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선 지금쯤 파란 보리밭 이랑에서 종달이 해맑게 지저귀고 송화 피는 숲에선 휘파람새 뻐꾸기 노래하리니.



사방 어디나 거침없는 남성적 웅장미로 장관 이룬 자이언 캐년.

우리 식으로는 아리따운 선녀가 내려온 곳도 있는가 하면 청순한 소저의 강이 굽이쳐 흐르며 시선 닿는 처처마다에 신들이 노닐만한 절경을 빚어놓았다,     

그중 Angels Landing 트레일 코스를 걷고 싶은 이유는, 수많은 이들의 산행기를 통해서 익히 보아온 바대로 산정 향해 지그재그로 난 황톳길을 걷다가 가끔씩 멈춰 서서 땀 흘리며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뿐, 안 그래도 애당초부터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가벼운 곳까지만 트레킹을 하기로 작정했었다.

만에 하나, 공연히 애들 걱정시킬 일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우가 앞서기에

쇠줄에 의지해 올라야 한다는 마지막 구간까지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던 터였다.      

생명의 물을 부지런히 길어 올려 연둣빛 겨잣빛 잎잎이 반짝대는 눈부신 신록.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강변 신록 풍정은 가히 선경,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연연한 신록의 강을 바라보며 흐르는 강물 소리를 귀 가득히 모아 듣다, 신선이 달리 신선이랴.



트레킹 자체가 산과 들판 어디든 길 따라 바람 따라 걷는 기꺼운 도보여행으로 하이킹과 산책의 중간 형태쯤이다.

정상 등정이나 목적지를 정해두고 성취감을 위해 아찔한 모험 불사하며 스릴 있게 도전하길 즐겼다.


이젠 그보다 주변 풍광 음미하며 자연과 벗해 유유자적 느긋하게 걷는 트래킹이 좋다.


 중간에 부리는 딴청 허용되기도 하고. ㅎ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를 거쳐 애리조나를 살짝 거쳤다가 당도한 붉은 사암의 땅 유타 자이언 캐년.

해저였던 곳이 지각판의 충돌로 융기, 아득한 옛적부터 비바람에 깎여 다채로운 풍광 형성한 미 서부지역 특이한 지질대답게 다양한 색감의 기기묘묘한 지층이 압도하며 다가섰다.

구름 한 점 띄우지 않은 청명하고도 화창한 날씨여서인가,

주말이나 연휴도 아닌 주 중인 엊그제 화요일이건만 자이언 캐년 들머리에서부터 정체가 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타 주는 때마침 학생들 Spring break 기간 중,

따라서 자녀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봄나들이 나서기에 알맞은 여행 시즌이었다.

차가 서행하는 덕분에 매번 놓친 자이언 캐년 초입의 안내판을 바짝 옆에서 찍을 수 있었다.



콜로라도 고원 서부에 위치한 자이언 캐년은 여전히 거대 암봉과 암벽이 좌우 곳곳에 둘러서 있다.

독특한 지형이 빚어낸 웅혼한 기상 앞에 오직 감탄의 찬사만을 토하게 하는 자이언캐년.

유구한 일월 그 자리를 지키며 온갖 나무와 풀들 그리고 동물과 곤충을 품어 안은 채

버진 리버 세차다 못해 거친 물살 의연히 견뎌낸 자이언캐년, 괜히 신들의 정원이겠는가.

 자이언캐년에 대한 여행기라면 이미 질리도록 접했을 터이니 상세한 안내와 설명은 생략하나 엊그제 자이언 캐년의 최근황 풍경 몇을 갓 건져 올린 송어처럼 싱싱할 때 올린다.

오죽잖은 사진으로 자이언 캐년의 진면목을 훼손시킴이 적잖이 민망하고 미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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