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머니의 겨울

by 무량화

여름의 끝에서 가을을 건너고 어느덧 겨울 맞은 봉선화 꽃물.

지금은 열아흐레 달보다 더 작아진 채 수줍게 손톱가에 걸려 있다.

아직도 산나리 빛 고운 그 손톱이 오늘따라 아롱아롱 눈물 어리게 한다.



오랫동안 나는 봉선화 물을 들이지 않았다.

근 서른 해의 세월 전 여나믄 살 무렵, 국민학교 다닐 때였으리라.

봉선화 반쯤 번 꽃잎과 짙푸른 이파리 준비한 다음 백반이나 새큼한 괭이밥 풀잎 따다가 섞어서 녹녹하게 빻아 놓고 기다리던 밤.

잠들기 전, 준비해 둔 재료를 손톱에 얹고는 아주까리 잎으로 감싸 베실 칭칭 동여매던 여름밤의 아득한 추억.

그 한밤 욱신대는 손끝에 마음 쓰여 잠 자리마저 편치 않았다.

하여도 다음날 아침의 놀라운 기쁨과 만나기 위해 지그시 참을 줄도 알았다.



봉선화. 수수한 여름 화단 어디서나 무성히 피어나는 꽃.

나라 잃은 통한의 설움을 울밑에 선 봉선화에 실어도 보았던 哀戀의 꽃.

울며 울며 貢女로 끌려간 고려 여인의 넋이 꽃 되었다는 봉선화.

그 꽃이 품은 애틋한 전설 말고도 봉선화 꽃물들이면 훗날 저승길이 밝다고 하였던가.

뿐 아니라 첫눈 올 때까지 봉선화 물이 손톱에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꽤나 로맨틱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손톱을 고운 빛깔로 치장해 주는 봉선화 꽃물.

그 은근스레 정감어린 자연색의 아름다움에다 손톱이 차츰 자라며 보여주는 변화는 또 얼마나 신비롭던지.

마치 만월에서 하현으로 지는 달 모양과도 닮은 봉선화 꽃물 들인 손톱과 아주 오랜만에 해후가 이루어진 그날.

잔서 따갑던 지난 늦여름 어느 날이었다.

늘상 마음 한자락 닿아있는 막내딸 궁금해 서너 시간 기차 타고 오신 어머니.

올망졸망 싸든 보따리 한켠에 봉선화 꽃이랑 백반까지 든 봉다리가 실려 왔다.

그날 밤. 할머니 앞에서 딸아이가 손가락 내밀고 있는 걸 보고도 나는 짐짓 모른 척했다.

주름마저 늘어가는 딸에게 옛날처럼 봉선화 꽃물 들여주고 싶은 엄마 마음 못 읽은 바 아니건만 왠지 봉선화 물을 들인다는 게 쑥스럽고 조금은 겸연쩍었다.



엄마는 아무 말씀 없으신 채였지만 내 몫의 봉선화가 며칠을 냉장고 설합 속에 있는 걸 보며 내심 봉선화 물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엄마가 집에 가신다며 조그만 가방을 챙기던 아침.

봉선화를 콩콩 찧고는 비닐랩을 챙겨 와 나는 내 딸아이처럼 손가락 내밀고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는 그전과는 달리 손놀림 무딘 표가 역력했으며 나 역시 보드랍고 조그맣던 손 우악스레 거칠어져 있었다.

그래도 예전 그때처럼 무릎 맞대고 나는 한동안 어릴 적 소녀로 다소곳 앉아 있었다.



봉선화 꽃물 감아 손가락 어색하게 뻗은 채로 배웅 나온 나를 몇 번이나 뒤돌아 보시곤 엄마는 기차를 타러 가셨다.

그날 문득 엄마가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이지 그렇게 작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없다 보니 늦도록 업혀 다니던 나였는데 저 조붓한 등 어디에 붙일 데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칠십 연륜에 이제는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치 조그마해지신 엄마.

그날따라 허리는 더 굽어 보였고 뒷모습은 왜 그리 쓸쓸해 보이던지.

갑자기 가슴이 메어왔다.

그 아픔 종내는 서러움 되어 흐느낌 물결로 출렁댔다.

어쩌면 저리 자꾸 작아지다 어느 순간 사위어 가는 불길처럼 홀연 사그라들 것만 같았다.

햇살 아래 잦아드는 이슬방울인양 자취마저 남김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잡으려 해도 안개이듯 그렇게 스러지는 아쉬움으로 가뭇없이 멀어져 가는 꿈길의 어느 영상처럼.




늘 정정하시고 건강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지난해 다르고 올해 또 다르다. 근력도 전과 같지 않으시다.


늙지 않으실 것 같던 어머니.

그러나 세월의 고삐는 그 누구도 늦추지 못하는 것.

노쇠한 모습이 오래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머니,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이 겨울쯤에 서계신 내 어머니.



그분의 삶은 시종 겨울 한가운데를 서성거려야 했다.

온갖 간난과 신산, 정월달 매화처럼 초연히 견디며 사신 어머니.

한량인 아버지는 첩실을 번갈아가며 들였다.

그럼에도 매사 좋고 나쁜 감정 드러내지 않던 성품이셨다.

평소 말 없으신 채 묵묵히 인내하며 모든 고통 속으로만 삭이던 분이셨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씩은 불편한 말씀도 하신다.


노염도 타신다. 짜증도 내신다.


허리며 무릎이 결린다고도 하신다.

때론 온 삭신이 다 아프다며 힘들어하실 적도 있다.



한때 빗속을 하염없이 걷고 싶다시던 엄마.

가을바람 스산한 날 어딘가 떠나보고 싶다시던 서정 어린 엄마였다.

그러나 여태껏 엄마의 자리를 한치도 비껴 서보지 않은 어머니.

그분은 내게 있어 항시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안온한 토담이었다.


영원히 따스한 내 고향이며 안식의 터인 엄마다.




어느 때나 가슴 열어 말없이 맞아주는 분.


언제라도 맘 놓고 투정 부릴 수 있는 분.


더러는 심사 눅진 채로도 편안히 대할 수 있는 분.

이 세상에서 가장 알뜰히 나를 아끼시는 분.


내 고통 누구보다 뼈 아파하시며 오로지 내 행복이 당신 기쁨이신 분.


어머니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

끊임없는 외줄기 정 심지 되어 불 밝혀 주는 분.

하많은 단어 중 가장 아름다운 낱말, 어머니.

제일 따뜻하고 정겨운 말, 엄마.

주어도 주어도 모자란 듯 안쓰러운 어머니의 마음이 새삼스레 가슴에 사무쳐 온다.



봉선화 물들인 손톱이 문득 물기에 젖는 이런 날.

비록 지금은 텅 비어 있는 가지이나 푸른 호흡 내밀히 품은 저 나무가 부럽다.

죽은 양 언 땅에 뿌리 묻은 채 그래도 한 올 푸른 생명 다듬어 간직한 저 풀들이 부럽다.

그들은 곧이어 싹 틔울 새 봄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윤회의 길은 그러나 너무도 아득하므로 생의 겨울은 이리 허전한 것일까.

저 먼 내 유년의 어느 기슭.

강물빛 치마에 옥색 저고리 청초하니 고우시던 엄마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아아 지금은 겨울이다. 내 어머니의 계절인 아린 겨울이다.

-1989.12-

​<여든여섯 되던 해 엄마는 하늘로 돌아가셨고 내 나이 어언 저 때의 엄마보다 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