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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앞에 가슴 뛰다
by
무량화
Sep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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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갈수록 사람이 넉넉해지기는커녕 성정만 완고해지고 자꾸 경직되어 갔다.
마음 밭도 점점 건조해지며 매사에 무감각해졌다.
고목처럼 메말라 무엇에도 가슴 두근거리지 않았고 감동할 줄 몰랐으며 경탄에도 인색했다.
그런데...............
요세미티 색동 다리를 띄운 버널폭포 상단의 네바다폭포 앞에서다.
대패로 민 듯이 매끈한 수직 석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통쾌무비한 위용 마주하자마자 절로 격앙이 되며 마구 환호가 터졌다.
머리끝에서부터 단번에 오장육부를 관통해 전신을 훑는 쩌르르한 전율감.
한바탕 시원스레 운 것처럼 속이 다 후련하게 뻥 뚫렸다.
위풍당당 그 자체인 낙차 594피트에 이르는 상단의 네바다폭포는 천군만마 호령하는 기세로 치달려와 수직으로 내리붓는다.
외경스럽다 못해 아예 압도당하고도 남을 만큼 그 낙하는 강렬한 카리스마였다.
천둥 치듯 포효하며 317피트의 높이에서 곧장 내리 꽂히는 버널폭포 역시 호방한 물줄기는 자못 웅장하고 박진감 넘쳤다.
조금치도 주저함 없는 마구잡이 돌진이었다.
미련 없이 내던지는 투신이었다.
아니 기꺼이 바치는 장렬한 순교였다.
하여 환희로이 맞는 죽음이자 신생이었다.
https://brunch.co.kr/@muryanghwa/262
무한 외경 앞에 심장이 요란스레 쿵쾅거렸다.
맥박이 빨라졌다.
영적 접신의 순간, 몰아의 경지라는 ecstasy에 이르는 신비체험이 이러할까.
온 삭신의 힘이 빠지며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난간을 잡고 몇 계단 더 오르자 물안개로 번지는 비말이 폭포 언저리에 색동 다리를 선연하게 만들어냈다.
무지개를 바라보자 돌연 눈가가 뜨거워졌고 잃었던 감탄사를 되찾게 되었으며 아! ~~ 신음처럼 외쳤고 내동 침묵했다.
그랬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아직도 여전히 가슴 뛰다니...
때 타고 무뎌졌던 순수가 조금은 회복되었다 싶어 고맙기만 하였다.
들뜬 어린아이처럼 스스럼없이 탄성 내지르며 격하게 반응하는 내가 미쁘기만 했다.
수증기에 반사되는 빛의 길고 짧은 파장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무지개라는 따위 설명은 허접스러운 군더더기였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wa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무지개를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은 뛰노라, 고 시인은 노래했다.
쉰예순에도 그러하지 못하다면 즉 가슴 설레지도, 눈가 뜨거워지지도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이 낫다고도 읊었다.
워드워즈 시구처럼 무지개를 보며 마음이 뛰고 설렌다면 아직은 감성이 살아있다는 표징이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증거다.
환각제에 취하듯 비몽사몽간에 노닌 버널폭포 뒤로하고 미스트 트레일을 내려오는 길.
신기하게도 마음자리가 훨씬 여유로운 게 말랑말랑 부드러웠다.
송곳같이 결기 세우던 품성도 눅진해지고 한결 너그러워졌다.
만나는 이마다 다정스레 등이라도 툭 치고 지고.
그러는 대신 스치는 이마다 반갑게 하이~~ 하며 미소 짓게 되었다.
낯선 그 누구도 이상스레 낯설지 않은 것이, 자연 안에서만은 모두가 정다운 이웃인 양 친근하게 다가왔다.
고양된 기분은 나뿐만이 아니라 오가는 모두의 표정으로 미루어 다 똑같은 감정인 거 같았다.
다칠 뻔한 순간을 무탈히 넘긴 데다 상실해 버린 줄 알았던 소중한 것을 되찾은 환희심까지 더해 요세미티 여행은 높은 곳의 은총 그 자체였다.
모쪼록 눈을 감는 마지막 시간까지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동하고 감격하고 감탄하며 감사드릴 수 있기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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