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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2. 2024

물의 날에 생각한 사막의 물


L.A Aqueduct은 Colorado River Aqueduct과 함께 L.A에 물을 공급해 주는 생명선이다. 도시는 도로,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필요로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물이다. 해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큰 도시들은 거의 강을 끼고 발달하였다. 그런 점에서 L.A는 예외였다.


1848년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를 접수한 미국은 개척민들을 서부로 불러들였다. 1862년 자작농지법이 발효되며 차츰 거주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거기다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19세기 초반 L.A 인근에서 금광이 발견되므로 본격적인 서부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L.A는 수원이 전혀 없는 건조한 사막지역으로서 대도시로 성장하기에는 불리한 여건이었다. 1889년 L.A 시장이 된 프레드릭 이튼은 시정 최우선 과제인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LADWP: Los Angeles Department of Water and Power를 설립했다. 미래를 통찰한 이튼 시장의 혜안과 강한 추진력 덕에 물 문제를 해결하므로, L.A는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되었다.


1900년 당시 인구 십만이던 LA는 5년 새에 곱으로 인구가 늘어났으니 당장 물 문제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LADWP 총책임자로 선임된 윌리암 멀홀랜드는 사명감을 가지고 대수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 공로로 그에게 헌정된 그리피스공원 입구의 추모분수 외에 도로와 거리 이름으로 그의 업적은 지금도 기려지고 있다. 물론, 당시 수자원 확보를 위해 지배구조의 암호를 이용, 기만적 전략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점 한국이나 미국이나 절대권력에 대해 의분을 느낄 수도 있으나 대도시의 개발에 따르는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필요불가결한 요소일지도.


그렇게 공사를 추진, 1905~1913년 사이에 오웬스 계곡에서 시작되는 238마일의 도수관을 건설하였다. 파나마 운하에 필적할만한 대역사였다고 하는데, 이미 그 시절에 오차 없이 완벽한 토목공사를 해냈음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무엇보다 날림공사나 부실공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로 아마도 그래서 선진국인가도 싶다.


하여튼 송수관이 개통된 지 20년도 지나지 않아 로스앤젤레스는 샌프란시스코를 제치고 인구 100만이 넘는 캘리포니아 최대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용수원의 확보가 없었다면 L.A가 오늘날과 같은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니 이 또한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덮어야 할지.


대수로 공사를 위해 도로 건설 215마일, 파이프시설 230마일, 송전선 218마일, 전화선 가설 377마일, 시멘트 공장 신규 건설, 근로자 캠프 시설 등이 필요했다. 터널 142곳 43마일, 수로 34마일, 콘크리트 수로 39마일, 덮개수로 98마일 등이 착착 건설되었다. 6년에 걸친 공사 끝에 391km의 대수로는 드디어 완성을 보았다. (서울--부산 직선거리는 320km)


1941년 오웬스 계곡 수원이 고갈되 가면서 모노레익까지 137 마일에 달하는 도수관을 연장, 기존의 수로와 연결시키게 되었다. 그렇게 L.A Aqueduct 대수로가 만들어지며 이곳을 통해 LA시는 해마다 전체 물 공급량의 45%를 조달해 왔다. 1970년대 환경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 생태파괴 현상을 무시하며 L.A시는 계속 물을 끌어다 썼다.

 
그 와중 물을 둘러싼 분쟁과 소송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나 약육강식의 법칙대로 늘 강자인 L.A시의 승리였다. 그러나 자연환경자산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고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생태중심주의로 패러다임이 바뀌며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수자원 관리 패턴이 환경변화를 고려한 통합계획으로 옮겨졌다.

 
엘에이 수로는 휘트니 산자락이 걸쳐진 비숍을 지나 인요카운티에서부터 시작된다. 근 400 km 구간을 달리는 거대한 상수도관은 빅파인, 인디펜던스, 론파인, 올랜차, 모하비, 랭카스터, 팜데일, 리틀락, 필랜을 지나고 엔젤레스 산을 넘어 최종 공급지인 L.A까지 이어진다. 오는 중간중간 저수용 인공 호수도 만들어 놓았고 대형 물탱크도 설치되어 있다.


대수로는 거대한 수도관을 통해 지하로 흐르거나 더러 지상으로 수로가 노출되기도 하는데 우리 동네 서쪽 산자락 아래로 폭 5미터쯤의 깊고 맑은 수로가 도도히 흐른다. 짙푸른 물줄기를 드러낸 채 위 사진처럼 L.A Aqueduct 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수심이 깊어 물고기도 살고 물새도 노닌다. 강안을 따라 양쪽으로 잘 닦여진 산책로가 개방되어 있어 그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백여 년 전에 만들어진 수로라 믿기 어려울 만큼 어디 한 군데 작은 하자도 없다. 모든 상태는 양호하며 물 가까이 접근해 육안으로 관찰해 봐도 물빛은 아주 투명하니 깨끗하다. 하지만 솔직히 L.A 수돗물은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기엔 미심쩍은 면이 있으니, 개수대나 욕조에 하얗게 더께 지며 끼는 수상한 성분이 영 께름칙하다. 유리그릇을 깨끗이 씻어놔도 마찬가지 흰 얼룩이 남는데 그렇다고 설거지물까지 일일이 다 정수해 쓸 수도 없고.

 
"물, 너는 맛도 색도 향기도 없다. 그러니 너는 정의될 수 없다. 너는 생명의 필수적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이다. 너는 조금의 혼합물도 받아들이지 않고 추호의 변질도 용납하지 않는다. 너는 까다로운 여신이다." 생덱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중에 있는 문장이다.

동네 인근의 정수시설로 산책로에서 찍었다. 수로를 타고 남하한 물은 이처럼 그 지역 일정 시설에서 취수, 정수 과정을 거쳐 급수관을 통해 각 공급처의 수도와 연결된다. 정수장에서는 수질기준과 감시기준 항목에 따라 철저히 검사를 하며 여러 시설을 단계별로 거치면서 물이 걸러지고 정화돼 최적의 수질을 갖게 된다.

또한 수질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시 전역에 수백 개의 샘플링 지점을 설정하여 샘플을 수거, 기준에 따른 테스트를 하면서 엄격하게 관리한다. 수질에 대한 신뢰도나 실제 수돗물에 대한 만족도는 원수 여과, 정수처리 시설, 급·배수관 등이 위생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따라서 높아지게 된다. 1㎥당 수돗물 생산가격이 미국의 경우 1.3달러에 해당한다는데 그럼에도 생수를 사서 먹는 가정이 늘고 있다. 연방정부·주정부·시민단체가 합심하여 수돗물 음용률을 높이기 위해 먼저 소비자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계속 연구 중이라 한다.  


각국의 수돗물 직접음용률을 살펴보면 캐나다는 47%, 일본은 52%, 미국은 56%로 미국이 OECD 국가 중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돗물의 염소 소독과 관련해 발암 물질 등에 대한 우려가 있어 안전성 평가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식수로 가정에 공급되는 수돗물은 활성탄 여과 및 역삼투압 여과를 거쳐 공급되고 있다고.  


지난 1993년 밀워키(Milwaukee) 시에서는 주민 150만 명 중 40만 명이 수돗물을 통해 크립토스포르디움(Cryptos-poridium)에 감염되어 100명이 사망한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했다. 이에 밀워키시는 기반시설 및 처리시설의 개선과 모니터링 등에 많은 돈을 투자, 인프라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밀워키 시는 20년 만에 신뢰를 완전히 회복했으며 현재 오염물질검사 분야에서 미국 내 선두주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밀워키 사건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6가 크롬의 투입으로 물이 오염되는 등 미생물에 의한 수질오염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다. CDC(미국질병통제 예방센터)는 공중보건감시망을 구축해 상수도의 수인성 병원균에 대한 자료를 조사, 원인을 분석하고 빅데이터를 구축해 질병 발생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지속적으로 수돗물 관련 이슈에 대해 화학자와 미생물학자 등 전문가들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이에 접근, 연구활동을 하면서 수질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니 공익광고처럼 수도꼭지에서 직접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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