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어린 만추, 때 놓치지 않고 해마다 갖는 연례행사가 있다. 낙엽 져 뒹구는 단풍잎이 아니라도 무엇이든 바싹 건조시키기 알맞은 날씨, 양광 투명하고 바람 소소하다. 이즈음 한국이라면 농가 안마당에 멍석 가득 태양초를 말리겠고 밭둑의 깻단은 저 혼자 톡톡 알갱이를 쏟고 있을 것이다. 무말랭이 호박고지도 썰어 말리기 아주 좋은 절기다.
내가 갖는 연례행사란 바로 시래기 말리기다. 인심 후덕한 요한 아저씨가 몇 년째 계속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인근 농장에 가서 한아름 실어다 주는 시퍼런 무청. 그걸 뒤꼍 송판 담장에 가지런히 걸쳐두고 하루하루 말라가며 변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데 옆집 그리스 사람이 다가온다. 이게 대체 뭔고?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 시래기를 들춰보기도 한다. 이번엔 이탈리안인 피자집 아줌마가 넌지시 건너다본다. 수프감이라고 설명해 준들 어림짐작도 못할 그녀다. 아이리쉬인 태닝샵 금발머리는 사진 찍는 나를 보며 하이~멋진 날씨야, 라며 엉뚱스레 하늘을 가리킨다. 그들이 시래기를 알 턱이 있나. 나야 그 곁에 서면 절로 고향을 회억하게도 되고 술술 생활시가 읊어지기도 하지만. 시래기가 다 시가 될 수 있다니 참 신통한 일이다.
시래기. 흙으로 돌아가는 섭리 당분간 유예시키고 서릿바람에 내맡긴 영혼이다. 참으로 오롯한 순명이다. 참선수행 깊어질수록 그는 차츰 투명해진다. 그렇게 빳빳한 오기며 짙푸른 결기 삭히고 삭혀야 한다. 순한 무채색 될 때까지, 한 줌 깃털만큼 가벼워질 때까지. 그렇게 비우고 비워야 한다. 삭히고 비워야 비로소 완성되는 너. 나
그 옛적, 무서리 내리기 전 밭둑에서 건져 올린 김장철 버려진 무청이었다. 짚으로 엮음엮음 수더분히 매달린 채 어느 장소든 자리는 개의치 않았다. 굴뚝 옆 토담에서든 감나무줄기에서든 두런두런 바람과 나누던 정담이야말로 오랜 세월 익어온 고향의 초겨울 풍경. 저만치 추수 끝난 빈 논에서는 참새 떼 부지런히 떨어진 낱알을 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아무래도 여전히 낯선 세상, 문화와 관습만이 아니다. 언어의 토양마저 영 다른 머나먼 이역 땅 뒤란 경계 긋는 팬스, 그 송판 담장에 걸터앉아 노옹(老翁)되어 즐기는 시래기의 볕바라기. 퇴락한 행색의 남루조차 한 폭 담채화 되는 이치. 그야 허심히 놓아버린 애집(愛執)때문이리. 습(習)의 동아줄 툭 끊어버린 해탈의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음이리. 아니면 고질로 도지는 향수병 자못 처연한 까닭인가.
무가 제철을 맞았다. 서리 맞은 무는 동삼이라 치켜세우는데 뿌리만이 아니라 무청도 아주 우수한 식품. 비타민 A는 당근의 열 배나 된다는 무청은 각종 비타민 공급원이자 칼슘 철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식이섬유의 함유율도 높다. 근자 들어 항암 효과까지 알려졌는데 간암 억제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특히 통풍 잘되는 곳에서 자연건조시킨 무시래기는 무공해 웰빙 식품으로 대접받는 세월이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 나물로나 사용할 뿐 소여물에 썰어 던지며 허드레 취급을 당하던 시래기였다. 시래기의 하대는 바닥이 없어 오죽하면 지지리 못 사는 가난한 살림을 일컬어 시래기죽을 먹는다 했을까. 그러나 지금은 일부러 찾아먹는 자연건강식품이 시래기다.
더러 비도 맞아가며 어느 해인가는 소복소복 눈모자 쓴 적도 있지만 적당한 바람과 햇살에 잘 마른 시래기. 바스러지지 않게 착착 거두어 종이봉투에 쟁여 담는다. 양질의 겨울 찬감을 갈무리한 흐뭇함. 나락 가마니를 높직하니 쟁여놓은 듯 마음까지 넉넉해진다. 식성이 순 한국토종인 나는 빡빡한 된장찌개나 우거짓국을 매끼마다 질리지도 않고 즐긴다. 된장 풀고 땡초 쫑쫑 썰어 넣어 얼큰하게 끓인 시래기 우거지국. 생각만으로도 입맛이 다셔진다. 2007. 중앙일보 뉴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