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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닥에서 맛본 풍천 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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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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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문학관 가는 길.
인천강을 끼고 한참 달리다가 허름한 농촌마을로 접어들면 생가터이며 멀찌감치 보이는 돌산은 변산반도로 곧장 서해가 되겠지요.
억새꽃 바람에 날리는 갯벌.
왼쪽 물고랑이 선암사에서 흘러온 민물이고 중앙 질펀한 강은 바닷물로, 게서 먹잇감을 찾는 왜가리들 나래짓이 바쁘더군요.
여기저기 희끗희끗 보이는 하얀 새, 목 움츠린 채 바다 길목 지키는 낚시꾼 새되어 통통하게 살 오른 장어를 노획하려 기다리는 중.
서해안 갯벌에 사는 함초도 갯벌에 깔려있었지요.
다른 이름 퉁퉁바리는 처음엔 녹색을 띠다가 가을이 되면 홍적색으로 변해 갯벌에 주홍 주단을 펼친답니다.
군락 이루고 서식하는 염생식물 함초는 미네랄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혈당조절 효과와 장 청소해 주며 다이어트를 돕는다네요.
인천강 좌측 잔솔밭 낮은 동산 뒤편이 질마재.
미당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로 설화를 주제로 한 산문시집 <질마재 신화>가 있지요.
가을 접어지며 붉어지는 함초와 머리숱 탐스러운 갈대와 바닷물에 이는 물비늘 아름다운 인천강.
인천강 어귀에 자리 잡고 살며 풍천 장어를 먹이로 삼는 왜가리가 물을 박차고 비상하려 나래를 펼치는군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였지요.
처처에 기암괴석 치솟아 호남의 내금강이라는 선운산 일명 도솔산으로 불리는데요.
모든 복덕이 갖추어져 자족의 경지에 든 천상 나라인 도솔천 명칭을 아무 데나 붙이겠어요.
그만큼 경관 빼어난 명승지이면서 뇌쇄적인 꽃무릇 단지가 있는 선운사에 왔답니다.
구름 속에서 신선놀음을 하든 참선 삼매에 들든 단풍 절경에 빠지든 암튼지간.
먹기 위해 산다는 대명제부터 앞세운 단세포 인간인지라 시선은 자동 식당부터 찾았지요.
선운사 간다고 했더니 아들이 카톡으로 보내준 서해안 식당, 거기 가서 이모 내외분께 꼭 풍천 장어 사드리고 오라데요.
지난주 아들이 친구들과 등산 갔다가 묵은지 배추김치랑 직접 담은 복분자주 한 주전자 먹고 감동했다면서요.
그 말도 식당 쥔장에게 필히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미당문학관에 가려고 선운사와 갈라지는 삼거리 길로 접어드니 다리 옆 끝집 식당 이름이 서해안 식당, 바로 거기더라고요.
먼저 당연히 미당 자취부터 찾았는데요.
월요일이라 문학관은 휴관, 대신 생가 마당에 그득 밴 노란 국화향에 취해 노닐다 돌아오며 식당으로 들어갔지요.
우선 식당 자리부터가 명당이더라고요.
선운산 도솔암 계곡에서 시작해 선운사 지난 냇물이 인천강 바닷물과 합류하는 어귀.
풍천이란 지명에 딱 부합하는 터이자 볕바른 남향이었어요.
한낮의 양광 쏟아져 들어오던 식당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인천강 물길이 유장히 흐르고.
바다에서 살다가 강에 알을 낳고 최후를 맞는 연어와는 반대인 장어의 한살이.
풍천 장어는 민물에 올라와 칠팔 년을 살다가 오로지 감각과 본능에 의지해 태평양상 마리아나 해구로의 귀향길에 오른다네요.
거기서 알을 낳고는 대장정의 여정을 마친다는 풍천 장어, 여기 이르면 생명 받은 모든 것 어쩐지 비감스럽지 않나요.
알이 부화돼 실뱀장어가 되면 아시아 해류 타고 부모 살던 서해안으로 회유해 영산강이나 금강 하구 모천으로 돌아와 또 한생을 되풀이한다는군요.
양식이 안 되는 유일한 어종인 뱀장어는 실뱀장어 상태로 군산 앞바다 등 서해에서 잡혀 각 양식장으로 팔린다는데요.
어획고가 미미해 이쑤시개만 한 실뱀장어가 개당 일이 천 원을 호가한답니다.
보통은 실뱀장어를 양식장에서 열 달쯤 기른 다음 식당으로 내보내는데 반해서요.
다만 풍천 장어만이 자연 상태에서 부화해 성체로까지 자란 민물장어이기에 특별히 인기가 따르는 거라네요.
전북 고창의 풍천 장어는 전체 장어의 10% 안팎에 불과하므로, 희소성으로도 유명세가 당연 붙을 수밖에요.
조선 후기 창본인 판소리 수궁가에 나오는 '풍천 장어 대령하고'란 가사가 말해주듯이요.
이미 조선시대부터 풍천 장어는 고창의 대표적 특산품이었나 봐요.
통상 말하던 대로 하자면 바닷장어인 아나고나 꼼장어도 아니고 하모는 더욱 아닌 풍천 장어.
우나기처럼 민물장어에 속하는 본바닥 풍천 장어를 기대 만땅인 채 어서 맛보기로 하였지요.
풍천 장어 3인분을 주문하며 아들이 전하라는 말을 보태자 쥔장 마님 흐뭇하게 웃으며 친절 다해 상을 준비해 주더군요.
넉넉하게 담은 생강채 노오란 색채가 입맛을 한껏 돋우더군요.
풋고추 마늘 상추, 부추겉절이, 죽순, 가지, 산채 무침, 깻잎지 정갈하고 맛깔진 밑반찬에 먹음직스러운 묵은지도 나왔고요.
복분자주도 한 주전자 딸려 나왔는데 술 주전자가 제법 묵직했습니다.
보통 삼계탕집에서 주는 인삼주는 딱 한 잔 거리잖아요.
그에 반해 집에서 직접 담갔다는 진한 복분자주는 인심도 후하게 세 순배 씩 돌만한 양이었어요.
양파 채를 깐 불판에는 장어 양념구이와 소금구이가 반반씩 숯불에 지글지글.
고소한 향을 뿜어내 미각과 시각은 물론 후각과 청각까지 한껏 자극하더군요.
일차로 주방에서 충분히 익혀 나온 장어라 불김만 쏘인 뒤 살 도톰한 장어를 생강 채 얹어 깻잎지에 싸서 한입 넣었지요.
으음~ 그야말로 사르르 녹아드는 장어 맛이 일품이데요.
비릿한 맛이나 느끼한 감이 전혀 안 들어서 사실 생강 채나 부추겉절이 없이도 얼마든지 먹겠더라고요.
반주로 따라놓은 복분자술은 워낙 장어 맛이 담백해 굳이 입가심용으로 삼을 필요조차 없었어요.
그보다는 고혹적으로 홀리는 색감 눈으로 맛보기도 전, 입안에서 향을 음미해 보기도 전에요.
술은 목을 타고 스리슬쩍 잘도 넘어가버리데요.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묵은지와 부추겉절이 그리고 풍천장어와 찐한 맛 복분자술, 캬아~
3인분 장어구이는 셋이서 포식할만한 양이었기에 굳이 밥 생각은 안 났지만요.
장어탕에 끓여낸 우거짓국 구수한 맛에 쉽사리 수저 놓을 수가 없었네요.
식당은 첫째가 음식 맛, 둘째가 분위기와 청결, 셋째가 친절을 꼽는데요.
첫째는 군말이 필요 없는 최상이고요.
둘째는 바로 뒤란 창밖으로 선운사 냇물이 바닷물과 합류되는 지점이 펼쳐져 있으니 분위기 최고이고요.
셋째로 쥔장 내외 더 필요한 거 없냐며 번갈아 정스럽게 물으니 친절 역시 별 다섯 마땅하지요.
아 참! 미당 시에 나오는 고갯길 질마재가 강 건너 바로 앞산에 있다 하니까요.
풍류를 아는 분이라면 질마재 건너다보며 한 잔, 그 아니 좋으리까.
붐비는 주말 막 지난 월요일이라 손님이 뜸해서도 더 융숭한 대접받았겠지만요.
푸근한 인상으로 미루어 들리는 모든 이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싶은 서해안 식당이더군요.
언니 내외분도 그렇고 저 역시도 아주 기분 좋게 모처럼 맛있는 한 끼 잘 먹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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