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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2. 2024

차이나타운 ㅡ 물전쟁과 탐욕

고전영화

지난 1월 말 뉴스에서였다. 폴란드 검찰은 미국에서 성추행 사건을 저질러 도피 중인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를 미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다음 소식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후속 조치는 글쎄? 폴란스키 감독은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으나 불구속 상태에서 프랑스로 도피한 후 지금은 미국 외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2009년 취리히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고자 공항에 도착한 이후 스위스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가택연금으로 종결되며 화제에 오른 로만 폴란스키 감독. 2003년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나 미국 땅에 발을 디딜 수가 없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수십 년 전의 죄로 인해 여전히 수배를 받으며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한 그의 행적을 보며 한국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대비되었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외적 조건을 갖춘 교수이나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시니컬한 여자다. 어릴 적에 사촌 오빠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한국적 관념의 희생자다. 무서운 일을 겪은 딸의 눈물에 그녀 엄마의 질책은 모질고 가혹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쯧쯧, 기집애가 어찌 꼬리를 쳤기에..." 교양, 교양하는 상류층 부인인 엄마의 그 말에 완전히 절망하고 망가져 가는 소녀. 아직도 여전히 피해자가 오히려 죄인이 되다시피 하며 쉬쉬, 숨기기 바쁜 한국이다. (폴란스키가 만든 또 다른 영화 '테스'가 살던 시대인 1880년대처럼)



얘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는데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얘기를 하고자 한다. 비가 내렸고 동쪽 하늘에 무지개까지 걸렸던 토요일 저녁이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이다. 유대계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어려서 게토에서 지낸 어두운 기억 외에 부인 샤론 테이트가 무참스레 살해당하는 불행을 겪기도 한다. 그 뒤 13세 모델 추행 사건으로 낙인이 찍히며 미국을 뒤로하였다. 그후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을 전전하며 영화를 찍는 그. 70년대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차이나타운>은 로만 폴란스키가 연출을 맡고 잭 니컬슨, 페이 더너웨이, 존 휴스턴이 출연하였다. 남편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의뢰를 맡은 사립탐정이 조사 과정에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번 오웬호수에 얽힌 물 전쟁 포스트를 올리며 알게 된 영화다. 오웬댐을 다룬 내용도 내용이지만 감독의 유명세가 더욱 구미를 끌어 꼭 보고 싶었다. 어렵사리 만나본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답게 팜므파탈이 등장하며 생생한 폭력묘사가 이어지고 비극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음습한 음모와 부패한 악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영화였다. 누아르는 프랑스어로 검은색을 뜻하듯 암울함이 가득한 영화다. 한글 자막도 없는 영화인데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가며 누가 왜 죽였는지 제대로 파악하려면 한 번 봐서는 잘 모를 정도다. 줄거리를 따라 가는데도 바쁠 판이라 미리 대강 흐름을 리서치하고 보았기에 그나마 길을 잃지 않았다. 감독은 어둡고 추하고 냉소적인 인간 내면에 도사린 부도덕과 부조리를 영화를 통해 고발하며 악한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을 폭로한다.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 영화 속 기본적인 배경이 되는 사건은 댐 건설을 둘러 썬 이익집단 간의 대립과 암투다. 댐을 건설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건설업자들과 댐이 들어서게 되면 생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기존의 농축 업게 종사하는 집단과의 갈등 속에 영화 속 주된 등장인물인 사립탐정 기티스, 수자원부 장관 멀레이, 그의 부인 에벌린, 멀레이의 파트너이자 에벌린의 양아버지인 크로스, 멀레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캐서린, 이렇게 다섯 명의 인간관계가 미스터리하게 얽혀있다. 보통인이 살고 있는 일반 세상 저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들, 우리가 듣고 아는 소식/뉴스들이란 게 재가공되거나 포장된 진실들은 아닐까? 힘센 국가든 정치권력이든 막강한 부든, 힘이 대단한 세력의 압력으로 인해 세상에는 보도되지 않고 묻히는 일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라 했듯이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고부터 15분 안에 관객을 사로잡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시간 배분 원칙. 그리고 ‘누군가가 무엇을 간절히 이루려 하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줄거리 구성의 원칙. 그 모든 게 적절히 녹아있으면서 기-승-전-결 구도가 완벽하게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많은 영화학과에서 각본 교재로 널리 쓰이고 있을 만큼 탁월했다. 감독 로만 폴란스키/각본 로버트 타운/출연 잭 니컬슨, 페이 다나 웨이/배급 파라마운트 영화/개봉 1974년 6월 20일이니 사십 수년 전 영화다. 그럼에도 러닝 타임 131분 내내 완전히 몰입하게 하는 영화의 놀라운 힘. 세 번을 보았는데도 지루하긴커녕 번번 새롭게 땡기는 영화다. 블로그 덕에 <차이나타운>을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거장 감독을 만나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명작을 즐기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2015

https://youtu.be/Z70axRwP74Q?si=QQxpwsh2Wcowtl82

https://youtu.be/TqblVWWvY-A?si=xTpSoc_6GT6Kj0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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